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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의 최소한의 자기표현이자 비명이라고 생각한다.”

<월간중앙> 기자들의 항변이다. 월간중앙 기자 13명은 6월20일 ‘독자와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성명서로 냈다. “자크 로게-청와대-김운용 위험한 3각 빅딜 있었다”는 기사를 외압으로 싣지 못해서다. 기자들은 비단 이 기사만이 아니라고 ‘고발’한다. 최근 두 달 동안 “NSC·청와대·거대자본 등의 외부 압력과 중앙일보 고위관계자의 내부 압력” 모두를 받았단다.

월간중앙 기자들의 용기에 먼저 갈채를 보낸다. 한국 저널리즘이 결코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온 몸으로 증언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다. 이 참에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짚을 필요가 있다. 삭제된 기사는 김운용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의 자진사퇴를 전제로 자케 로게 IOC 위원장과 청와대가 극비협상을 통해 3가지 약속을 했다는 내용이다. 세 약속은 2014년 동계올림픽의 평창유치, 태권도의 정식종목 유지, IOC 위원의 한국인 승계를 이른다.

기자들의 항변과 한국 저널리즘의 희망

청와대는 국익을 내세워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를 뺄 수 없다면 IOC 총회가 열리는 7월 이후에 써줄 수 없느냐”고 ‘읍소’했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기사의 내용과 IOC 7월총회를 감안하면 국익론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청와대 협조요구를 월간중앙의 대표이사와 편집장은 분명하게 거부했다.

명토박아둔다. 이 지점까지 문제는 없다. 정부로서도 국익이라는 판단이 선다면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 압력이 아닌 협조 요청은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물론, 그 판단이 언론 고유의 몫임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실제로 월간중앙은 요청을 단연 거부하지 않았던가.

문제는 그 다음이다. 월간중앙 대표이사가 갑자기 태도를 바꿨기 때문이다. 월간중앙의 기자들은 “실명을 적시할 수 없지만 ‘거대자본’의 압력에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말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말끔하게 실명을 밝히자. ‘거대자본’은 삼성이다. 실제로 기자들에 따르면 삼성그룹 상무가 월간중앙을 방문했고 그 직전에는 <중앙일보> 고위관계자가 월간중앙 대표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렇다면 문제의 핵심은 다시 삼성이다. 왜 삼성이 나섰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청와대의 협조요청인지 아니면 IOC위원인 이건희 회장의 독자적 판단인지 규명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청와대의 협조를 거절했던 월간중앙의 편집정책이 삼성그룹 상무의 방문 뒤 바뀐 사실이다.

기실 중앙일보조차 자신이 삼성과 무관하다고 공언해오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자회사인 월간중앙까지 삼성의 권력이 결정적이란 사실이 폭로됐다. 그렇다. 바로 그것이 자본의 편집권 유린이다. 일찍이 1991년 동아사태 당시 김중배 국장이 갈파했듯이 언론자유를 위협하는 최대 권력은 자본임이 재확인되었다.

언론자유를 위협하는 삼성과 신문법

그래서다. 문제는 다시 누더기 신문법이다. 월간중앙 사태는 신문사 소유구조와 저널리즘의 발전이 무관하다는 주장이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여실히 입증해주었다. 튼튼한 자본이 오히려 저널리즘의 독립을 보장한다는 논리가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있는가를 명쾌하게 보여주었다. 누더기 신문법마저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신문사들 내부에서 젊은 기자들 사이에 일고 있는 새로운 바람이 아름다운 까닭이다.

월간중앙 기자들의 비명이 비명으로 그쳐서는 안 될 이유도 여기 있다. 자본의 언론통제 아래 언론자유를 유린당하고 있는 기자들의 비명, 그것이 민주언론의 합창으로 우렁차게 울릴 날은 언제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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