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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내엔 소가 달구지를 끄는 모습과 연자방아를 돌리는 모습이 있다. 그중 연자방아를 돌리는 실물크기의 모형소와 인형.
낙안읍성내엔 소가 달구지를 끄는 모습과 연자방아를 돌리는 모습이 있다. 그중 연자방아를 돌리는 실물크기의 모형소와 인형. ⓒ 서정일
엄마 손을 놓고 후다닥 달려간다. 그리고 소리를 지른다. "이랴 가자 음메 한번 해봐." 하지만 아이의 바람과는 달리 소는 꿈적도 하지 않는다. "엄마, 소가 안 움직여 눈도 계속 뜨고 있어" 엄마는 만들어 놓은 소라고 설명을 하지만 아이는 소가 움직일 때까지 보고 가려는 듯 한참을 앉아 있다.

낙안읍성 민속마을, 살아있는 민속마을이라고 이리저리 광고하고 자랑이 대단하다. 하지만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놓은 소마냥 이곳도 별수 없이 포르말린 용액에 담가놓은 박제된 곳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때면 허탈하기 짝이 없다.

아직도 그대로 운영되고 있는 외래종이 대부분인 조류학습장
아직도 그대로 운영되고 있는 외래종이 대부분인 조류학습장 ⓒ 서정일
지난 1월 20일, '민속마을이야? 동물원이야?"라는 기사 하나를 작성했다. 외래종 투성이인 낙안읍성내 서문근처에 있는 조류학습장을 되짚어 보고자 하는 취지였다. 그러나 4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조류학습장은 건재하고 민속마을의 주인인양 외래종이 터줏대감 행세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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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마을이야, 동물원이야?


남문 성곽밖 넓게 펼쳐진 보리밭
남문 성곽밖 넓게 펼쳐진 보리밭 ⓒ 서정일
그럼 우리 조상들과 함께 살았던 소와 말, 개와 돼지 그리고 염소는 어디로 갔을까? 안타깝게도 그들은 지금 낙안읍성내 구석진 곳에서 죽은 듯 숨어 지내고 있다. 읍성을 돌아 본 관광객들에게 물어보니 '그런 동물이 있었던가?'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다. 왜 이렇듯 당당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면서 숨어 지낼 수밖에 없을까?

남문밖, 바람에 보리가 흩날리고 흑염소들이 뛰놀고 있다. 한가롭기 그지없는 목가적인 풍경이다. 성곽위에서 바라보면 가슴속까지 후련한 널찍한 또 다른 평야, 다른곳에서 쉽게 구경하지 못할 싱그러운 농촌의 풍경.

황금빛 노을이 서산을 타고 기울고 있다. 어디선가 소달구지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염소들이 떼 지어 성안으로 달려온다. 하지만 그건 영화의 한 장면이거나 그림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관광객들 오는데 냄새나고 지저분하지요." 관리사무소 직원의 말이다. "관광객들이 싫어합디다." 싫은 소리를 듣기 거북해 하는 일부 주민들의 동요. 그래서 소나 말이나 개와 돼지 그리고 염소의 숫자는 한두 마리로 줄고 읍성 내에서도 숨어 지내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소달구지를 읍성 내에서 운행할 생각입니다." 보존회 측의 얘기다. 가능하다면 마을밖 평야까지 달구지로 관람객들을 실어 구경시켜주고 싶다고 말한다. 새로운 시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풀밭에서 놀고 있는 흑염소의 모습은 목가적이다
풀밭에서 놀고 있는 흑염소의 모습은 목가적이다 ⓒ 서정일
한편에서는 박제되어 가고 있는 민속마을이 아쉽다면서 조류학습장을 없애고 그곳에서 토종 동물들을 키워 관람객들이 직접 먹이도 주고 만져 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관광이 그저 둘러보고 떠나는 것이 아닌 체험으로 변하고 있는 마당에 직접 먹이도 주면서 만져보고 냄새까지도 맡아보게 하는게 진정한 체험학습이 아니겠냐고 말한다.

하지만 서로 상반되게 주장하는 단어인 냄새,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볼 수 밖에 없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냄새를 기억해 본다. 안방에서 메주 뜨는 냄새를 기억해 보고 고구마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겨울 방안의 풍경과 그 냄새 또한 기억해 본다. 소똥 개똥 냄새도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 냄새들이 현대와 맞지 않는다고 고구마, 메주,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성밖으로 몰아내고 향수를 뿌리려는 계획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 지라우'하고 말하는 주민의 얼굴까지도 떠올려 본다.

낙안읍성 주민들 사이엔 지금 잔잔한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진정 우리 조상들의 삶을 이해하고 느껴보려는 사람들에게만 마음을 열어주려는 움직임이다. 그것은 박제된 민속마을이 아닌 냄새까지도 흙탕물까지도 포함한 꿈틀거리며 살아움직이는 민속마을을 만들기 위한 작은 변화로 보인다.

가족들이 낙안읍성을 찾아와 체험학습을 하고 있다. 한 어린이가 열심히 짚풀을 꼬고 있다.
가족들이 낙안읍성을 찾아와 체험학습을 하고 있다. 한 어린이가 열심히 짚풀을 꼬고 있다. ⓒ 서정일

덧붙이는 글 | 낙안읍성 민속마을 http://www.naga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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