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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순 정적이 감돌았다. 차창 사이로 엔진 소리만이 가늘게 들려올 뿐이었다. 김 경장은 말은 채 잇지 못하고 침을 꿀꺽 삼키고 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곳은 바로 우리가 찾아낸 그 녹색 피라미드 속입니다."

순간 채유정의 눈동자가 크게 벌어졌다. 그리고는 머리를 휘휘 내저으며 헛기침을 했다. 그녀의 모습은 구겨진 종이를 다시 펴놓았을 때처럼 여기저기에 비일상적인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어떻게 그 유물을 중국 공안이 지키고 있는 그곳에 놔두실 생각을 했겠어요?"

"잘 한번 생각을 해봅시다. 발상을 뒤집어 보자 말입니다. 그곳은 지금 중국 공안들이 지키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출입이 쉽지 않아요. 때문에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갈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게다가 발굴까지 중단되어 있으니 중국 측에서도 그걸 발견할 리 없죠."

"하지만 언젠가 발굴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면 중국 측에서 그 유물을 발견하게 되잖아요."

"당분간은 그곳을 다시 발굴할 가능성이 적다고 본 겁니다. 그 전에 다시 그곳에 가서 유물을 가져올 생각을 하셨겠죠."

김 경장은 형언할 수 없는 기묘한 빛깔의 그림자가 언뜻언뜻 그녀의 얼굴에 드러났다가 사리지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운전을 위해 정면을 응시했지만, 크게 놀란 충격에 제대로 앞으로 보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핸들을 꽉 쥔 채 앞으로만 나아가는 것이다. 그녀는 턱을 앞으로 내밀며 옆을 돌아보았다.

"확신할 수 있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그 귀한 유물을 박사님 집이나 쉽게 발견할 곳에 둘 리는 절대 없어요. 자주 찾았으면서 절대 발견되지 않는 곳이라면 그 피라미드 속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차는 장당으로 가야 할 것 같군요."

"물론입니다."

차는 심양시를 빠져나와 곧장 장당으로 향했다. 채유정이 속도를 높인 덕분에 한시간도 채 되지 않아 무순을 지나 장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장당 입구에는 전에 보았던 화력 발전소가 넓은 벌판 한가운데 솟아 있는 게 보였다. 그 발전소의 큰 굴뚝에서 하얀 연기를 내뿜고 있는데 주위의 야트막한 산들과 높이가 거의 같아 보였다.

둘은 발전소 부근에 차를 대놓고 피라미드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아무래도 공안의 경비를 피할 필요가 있었다. 발전소에서 30분 정도 걸어가자 전에 왔던 피라미드가 서 있는 언덕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둘은 곧장 걸어가지 못했다. 근처에 공안이 지키고 있는데다, 마을 주민들 또한 경계할 필요가 있었다. 전에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한 노인의 차 대접을 받고는 납치 당한 적이 있지 않았던가?

둘은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어 길에서 비켜선 야트막한 언덕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주변을 다시 살폈다. 역시 예전과 다름없이 공안으로 보이는 사내들과 경비견들이 주위를 지키고 있는 게 보였다. 채유정이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입술을 감쳐 물었다.

"지금 저곳에 가기엔 무리예요."

"아무래도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려야 되겠죠?"

"그래야 되겠죠. 하지만 문제는……."

채유정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끝을 흐리고 있었다.

"문제라뇨?"

"설령 저기에 유물이 있다고 해도 저 많은 피라미드를 다 뒤지긴 힘들 겁니다."

"저기 피라미드가 몇 개나 될까요?"

"족히 서른 개는 넘을 겁니다. 중국 공안의 감시를 피하면서 저길 다 뒤질 순 없을 겁니다."

김 경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피라미드가 워낙 크기 때문에 한 명의 공안으로 그걸 다 지켜내진 못할 겁니다."

"물론 피라미드에 접근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예요. 문제는 그 큰 피라미드를 어떻게 다 살피느냐는 겁니다. 한 개도 아니고 서른 개가 넘는 것들을 샅샅이 뒤지려면 일 년은 족히 걸릴 겁니다."

김 경장의 얼굴에 짧은 순간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의 미간 사이로 오래도록 주름이 패어 있는 게 보였다. 채유정은 팔짱을 낀 채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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