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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경장은 희디흰 공백 상태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눈을 뜨며 어조를 높였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 밖에 없어요. 공안에게 발각되는 한이 있더라도 이 모든 피라미드를 다 뒤져야만 합니다."

둘은 일단 무순 시내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직 해가 지려면 한참동안 기다려야만 했다. 그동안 무순 시내에서 끼니를 때우고, 피라미드를 뒤질 장비도 구입할 필요가 있었다.

시내로 들어간 둘은 중심가의 식당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는 노동공원을 찾았다. 사람이 많은 곳 보다는 한적한 이곳 공원에서 저녁이 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노동 공원 안에는 녹음이 짙은 뙈기의 구릉이 남아 있고, 그 앞에 인공호수가 펼쳐져 있는 게 보였다. 호숫가에는 빈 보트가 줄을 지어 떠있었지만, 그걸 타는 사람은 많아 보이지 않았다. 햇빛이 워낙 강하게 쏟아져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무 아래 그늘에 앉아 있었다. 김 경장과 채유정도 그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채유정은 멀리 공원 입구를 건너다보며 말했다.

"예전에 이곳에 와 본적이 있어요. 유적을 탐사하기 위해서 말예요."

"여기가 유적지였다 말씀이세요?"

"여기 공원 앞에 옛 고구려의 성터가 있거든요."

"그래요? 별로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아 보이던데……."

"광복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 성터가 남아 있었나 봐요. 높은 강 언덕은 천연성벽이고 남쪽 성벽은 지금은 찾아볼 수가 없어요."

"여기 곳곳에 우리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군요."

"예전에 우리 땅이었으니 당연하지 않겠어요."

둘은 한참동안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해가 서쪽으로 저물기 시작할 무렵 공원 밖으로 나왔다. 무순시의 재래시장에 들어선 둘은 먼저 철물점부터 들렀다. 거기서 작은 삽과 괭이, 그리고 랜턴을 구입했다. 만약을 위해 비상용 건전지까지 갖추고는 그걸 배낭에 넣었다.

근처 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나오자 이미 해는 기울어져 어스름이 내리고 있었다. 주위가 적당하게 어두워져 갔다. 배낭에서 준비한 물건을 챙기면서 채유정이 물었다.

"이것으로 발굴 준비는 끝난 건가요?"

"아뇨. 한 군데 더 가야할 곳이 있어요."

그러면서 김 경장이 시장의 한 골목길로 들어섰다. 그가 찾은 곳은 붉은 등이 걸린 식육점이었다. 거기서 붉은 피가 흐르는 고기 몇 점을 사서 비닐에 담았다.

"그걸 어디에 사용하려고요?"

김 경장은 대답대신 검지를 입에 갖다 대며 웃어 보였다. 그러자 채유정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차를 타고 다시 화력 발전소 쪽으로 몰아갔다. 화력발전소로 향하는 도로 한쪽 구석에 차를 대어놓고 피라미드 쪽으로 다시 향했다. 둘은 그쪽으로 향하는 길을 택하지 않고 옆을 돌아 비교적 높은 언덕으로 올라갔다. 마침 그믐날이라 주위는 칠흑같이 어두웠다. 바로 앞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어두웠고, 다만 둘이 걸을 때마다 풀잎을 스치는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그들은 언덕을 통해 오른쪽으로 끼고 돌아 왼쪽으로 피라미드가 솟아나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고, 어둠에 눈이 익숙해서도 잘 분간이 되지 않았다. 채유정이 낮게 속삭이듯 말했다.

"어딜 먼저 살펴봐야 하죠?"

"글쎄요. 설마 맨 입구에 있는 피라미드는 아니겠죠?"

"그렇다면 중간부터 살펴봐야 할 것 같네요."

"표시를 잘 해둬야 할겁니다."

김 경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언덕을 내려섰다. 채유정도 천천히 그 뒤를 따랐다. 피라미드에 가까이 가면서 둘은 숨소리도 줄일 정도로 천천히 움직였다. 뾰족한 언덕처럼 생긴 피라미드가 일정한 간격으로 흩어져 있는 게 보였다. 그 피라미드마다 공안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한 명씩 맡아 주위를 돌고 있었다. 피라미드의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공안 혼자서 동시에 지키기엔 무리였다.

둘은 공안의 동선을 잘 살폈다가, 그가 앞으로 가는 사이 얼른 피라미드 위에 올라섰다. 피라미드 위에는 마침 작은 바위가 나무가 자라 있어 알맞게 몸을 숨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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