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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문밖으로 나가자 채유정은 벽에 기대어 선 채 이마를 손등으로 닦고 있었다. 목소리가 떨리고 식은땀이 나려는 걸 겨우 참아왔던 것이다. 저절로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확실히 그들은 추측만 가지고 채유정을 찾았던 것이다.

그녀가 밤새 김 경장을 만나고 온 사실을 모르는 듯 했다. 자신이 밤새 집을 비운 사실도 추궁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말처럼 단지 추측만 가지고 찾아왔을 가능성이 많았다. 미행이 붙을지 모르겠으나, 확실한 물증을 잡고 따라다니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은 마음이 놓이는 듯 했다.

그녀는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창가로 스며들어온 햇살이 그녀의 무릎 언저리에 머물고 있었다. 길고 숨 가쁘게 보낸 밤이 지나고 다시 아침이 된 것이다. 그녀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눈이 충혈 되었고, 얼굴도 푸석푸석한 채 부어 있었다.

잠을 청하기 위해 다시 침대에 눕던 그녀가 다시 벌떡 일어났다. 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이번에는 너무 작게 들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채유정은 양미간을 찌푸리며 문을 벌컥 열었다.

"또 무슨 일이시죠?"
라고 말하는 순간 그녀의 동공이 커지며 뒤로 움찔 물러서고 말았다. 문 앞엔 공안 대신 김 경장이 서 있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여기에…."

그 말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김 경장이 얼른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면서 창가로 달려가 바깥을 살폈다. 채유정이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방금 공안이 다녀갔어요."
"나도 방금 보았어요."

"그런데도 찾아오셨다 말예요? 지금도 여길 감시하고 있을지 몰라요."
"그들이 가는 걸 확인하고 곧바로 들어온 겁니다."

김 경장은 급히 뛰어 들어 왔는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는 핏발 선 눈을 동그랗게 뜨며 채유정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서 떠날 채비를 하세요."
"떠나다니요? 어딜…."

"안 박사님이 유물을 숨겨두신 곳을 알아냈어요."

채유정은 믿어지지 않는 다는 표정이었다. 눈주름을 파르르 떨며 얼굴이 홍시 빛으로 달아올랐다.

"그게 정말이에요?"

김 경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은 흥분으로 가벼운 경련이 일고 있었다.

"그게 어디예요?"
"지금은 말하기가 곤란합니다. 우선 저랑 같이 나가시죠."

채유정은 재빨리 옷을 입고는 작은 손가방을 챙겨 들었다. 그녀는 일부러 집안에 불을 켜놓고 텔레비전까지 켜놓은 채 밖으로 나섰다. 둘은 정문으로 나오지 않고, 뒤쪽 좁은 골목과 연결된 창문으로 나왔다. 그 골목을 한참동안 돌아 시내 쪽으로 향했다.

아침이 되면서 거리는 출근하는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도로에도 차들이 가득 들어차 정체를 이루고 있었다. 둘은 큰길에서 조금 물러선 좁은 골목길 입구에 서 있었다. 채유정이 주변을 살피며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가면 되죠?"
"우선 차를 빌려야 합니다."

"그 유물이 먼 곳에 있다 말입니까?"

김 경장이 낮게 고개를 끄덕이자, 채유정이 잠시 생각을 가다듬다가 휴대폰을 꺼내어 들었다. 그리고는 한쪽 구석으로 자리를 피하는 것이다. 잠시 뒤 그녀가 걸어오면서 말했다.

"친구가 차를 빌려준다고 하더군요."

둘은 큰 도로로 나가 지나가는 택시에 몸을 실었다. 택시가 향한 곳은 요녕 대학교였다. 차는 대학 교정 안의 주차장에 있었다. 하얀색의 포드 승용차인데, 문이 열려 있고 차 열쇠도 꼽혀 있었다. 그녀의 친구가 미리 준비해놓은 듯 했다.

차를 출발시키며 채유정이 물었다.
"어디로 가면 되는 거죠?"
"미행이 붙을 지도 모릅니다. 우선 근처를 몇 바퀴 돌며 주위를 살필 필요가 있어요."

요녕 대학교를 나온 차는 근처 오애시장(五愛市場)부근을 빙 돌아갔다. 이곳은 패션도매 위주의 시장으로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의류시장이기도 했다. 때문에 상점 수만큼이나 차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그 복잡한 도로를 요령 있게 빠져나오며 혹시 있을지 모르는 미행을 살폈다. 다행히 뒤를 따라오는 차는 없는 것 같았다.

연신 룸미러로 뒤를 살피던 채유정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 말해주시죠. 박사님이 숨겨두신 유물이 어디에 있다는 거죠?"

김 경장은 한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일순 심각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난 돌아가신 박사님의 입장이 되어 보았소."

"박사님의 입장이라…."

"그분은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는지 몰라요. 그래서 쉽게 발각되지 않는 곳에 유물을 숨겨 두었을 거라 말이오."

채유정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 경장의 말이 이어졌다.
"그 유물을 숨겨두려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추어야 합니다."

"두 가지 조건이라뇨?"

"한 가지는 절대 다른 사람에게 발각되지 않는 장소여야 합니다. 일반 사람의 접근이 용이한 곳은 곤란하겠죠. 또 한 가지는 앞의 것과 반대로 너무 깊숙이 숨겨두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는 당신이 죽음을 당하면 다른 사람이 그걸 발견할 수 없게 되는 거죠."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접근이 쉽지 않으면서, 또한 언젠가 발견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말씀인가요?"

"그래요. 난 그 장소를 찾기 위해 며칠동안 고민을 했소이다."

김 경장의 이마에 고여 있던 땀이 관자놀이를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그는 눈빛은 변하지 않고 입술만 움직여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어제 요녕대학교 박물관에 가서 어떤 강한 암시를 받았어요. 난 처음에 그 암시가 무얼 말하는지 몰랐죠. 그래서 답답해 생각을 굴리다가 마침내 그 암시의 뜻을 알아낸 겁니다."

"그 박물관이 방금 말씀하신 두 가지 요건과 어떤 관련이 있다 말씀이신 가요?"

"평소 내 머릿속에서 그 두 가지 요건을 가지고 고민하다가 박물관의 유물을 발견하면서 스파크가 일어난 것이죠. 그 스파크가 너무 순식간이라 미처 의식을 하지 못하다가 오늘 새벽에서야 겨우 알아낸 겁니다."

채유정의 눈가에 스치는 기묘함 빛이 번득였다. 그녀는 탐색하는 눈으로 조용히 김 경장의 얼굴에 시선을 박고 있었다. 일순 정적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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