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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회(靑春會)라는 모임이 있다. '청와대(靑瓦臺) 춘추관(春秋館) 모임'이라는 본래의 뜻과 '젊게 사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도 덤으로 담겨 있다고 한다.

청춘회는 김대중 정부 후반기에 춘추관(청와대 기자실)을 출입한 기자들과, 그 기자들과 '미운 정 고운 정'이 든 공보수석실을 중심으로 한 대통령비서실 '관계자'들이 만든 친목회이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모여도 모임이 잘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 모임에 들어가지 못한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 청와대를 출입한 기자들이 '청초회(靑初會)'라는 별도의 모임을 만들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해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새배 가는 '청춘회' 회원들

▲ 지난해 2월 24일 오후 5시15분경 5년만에 청와대에서 나와 동교동 사저 입구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이 환영나온 주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답례하고 있다.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기자들은 대개 출입처를 자주 옮겨 다닌다. 따라서 옮겨다닐 때마다 출입처 '관계자'들과 친목모임을 만들면, 연조 있는 차장급 기자들에게는 십수개의 모임도 부족할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그런 친목모임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청춘회는 예외적이다.

지난 12월 10일 김대중 정부에서 장·차관을 지낸 인사 100여명이 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를 서울시내 한 호텔로 초청해 만찬을 한 적이 있다. 100여명이 십시일반으로 10만원씩 걷어서 만든 노벨평화상 수상 4주년 축하행사였다.

이날 청춘회는 회비를 모아 김 전 대통령에게 그의 햇볕정책을 상징하는 해바라기꽃으로 장식된 커다란 화분을 선물로 증정했다. 4년 전 노르웨이에서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때도 당시 출입기자들은 '청와대 출입기자단'의 이름으로 같은 화분을 선물했었다. 지금은 '현직'이 아니지만 변함없이 그때의 '미풍양속'을 계승한 것이다. 현재 청춘회 회장은 김민배 <주간조선> 편집장이다.

청춘회 회원들은 오는 1월 1일에도 서울 동교동 자택을 방문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새배를 할 예정이다. 오전 11시30분에 방문해 김 전 대통령과 점심을 할 예정이다. 당 대표와 장·차관, 국회의원들도 차 한잔 마시고 나와야 하는 것에 견주면 '특혜'다.

평소에는 손님을 잘 안받지만 정초가 되면 동교동 현관은 발 디딜 데가 없을 만큼 빽빽하다. 아무리 현실정치를 떠난 전직 대통령이라고 해도, 신년하례가 있는 연초에는 30분 단위로 방문객 일정을 쪼갤 만큼 빈틈이 없다.

청춘회가 이런 '특혜'를 누리는 배경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정운영 철학이 깔려 있다.

김대중 정부의 언론회견에 적용된 창간기념일과 '5의 배수 원칙'

김 전 대통령은 재임중 '언론은 국정의 동반자'라는 확고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 국정운영 책임자는 국민보다 '반보(半步) 앞서' 가되 언론과는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런 인식과 지론은 관계 장관들과 수석들에게는 물론 청와대 비서관·행정관들에게까지도 심어졌다.

그래서 김대중 정부 공보수석실(현재의 홍보수석실) 직원들에게는 청와대 근무하는 동안에는 가족·친지·동창들과 저녁 먹을 생각은 버리라는 '지침'이 생활화되었다. 그 대신에 기자들과 저녁을 함께 하며 '최일선의 국민 여론 전달자'로부터 생생한 여론을 '청취'하거나, 아니면 그들을 설득하고 국민의 정부 국정운영 철학을 '전파'하라는 것이었다.

대통령의 언론회견은 국정운영 철학을 국민에게 알리는 중요한 수단이다. 언론에게도 대통령 회견은 매체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대중에게 인식시키는 중요한 수단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모든 언론이 대통령 회견을 원한다. 그러나 문화관광부에 등록된 수백 개 매체의 요청을 들어주다 보면 단 하루도 국정을 챙길 시간이 없다.

그래서 대통령의 언론회견에 '원칙'을 세울 수밖에 없다. 김대중 정부는 중앙의 신문·방송·통신에는 창간(창사) 기념일에 맞춰 년 1회씩, 지방 언론에는 '5의 배수 원칙'이 적용되었다. 즉 5년 혹은 10년으로 꺾어지는 해의 창간(창사) 기념일에만 한다는 방침이다.

그런데 5배수 원칙을 적용하다 보면 대통령 임기 5년 안에 창간 기념일이 돌아오지 않는 지방 언론사도 있었다. 그럴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정부에서 대국민 메시지를 전파할 필요가 있는 적절한 시점에 해당 언론과 회견을 했다. 이런 원칙이 평등하게 적용되었기에 적어도 대통령 회견에는 불만이 없었다.

그럼에도 국민의 정부 5년을 돌이켜보면 정부와 언론의 관계는 애증과 반목의 관계였다. 이른바 '옷 로비' 의혹에서부터 '정보기관의 도청' 의혹에 이르기까지 초기 6개월을 제외하곤 5년 내내 언론의 '물어뜯기' 연속이었다. 그러나 대개는 도청 의혹처럼 사실무근이거나, 옷 로비 의혹처럼 무죄로 종결되었다. 보수·수구언론을 '조폭'에 빗대어 일반화된 이른바 조·중·동이라는 용어도 그때 만들어졌다.

국민의 정부 5년의 반추에서 시작한 참여정부 언론정책

▲ 올해 초 춘추관에서 열린 신년기자회견에서 기자들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 오마이뉴스 이종호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국정운영 철학과 언론정책은 그 애증과 반목의 5년에 대한 반추(反芻)에서 시작되었다. 참여정부 출범 초기에 노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설파한 '지침'은 "국민의 정부를 봐라, 기자들 밥 사주고 술 사주고 해도 물어뜯기는 계속되더라"라는 야유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심지어는 그런 경험칙에 따라 "기자들과 비싼 양주 마시지 말고 오십세주 마시라"는 세세한 '주종 지침'까지 내려졌다는 얘기까지 청와대에서 나왔다. 당사자인 조·중·동 기자뿐만 아니라 참여정부에 호의적인 다른 기자들에게마저 직업인으로서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발언이었다.

청와대 출입기자단을 개방형으로 바꾸는 대신에 기자들의 대통령비서실 출입도 폐쇄되었다. 폐쇄의 명분은 기자들에게 비서동을 개방하면 참모들이 일을 못하고 보안이 유지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래서 청와대 기자들이 출입하는 곳은 기자실이 있는 춘추관과, 잊을 만하면 기자들을 초청해 다과회를 갖는 녹지원(청와대 경내의 잔디정원)뿐이라는 자조 섞인 푸념이 일상화되었다.

참여정부의 국정운영 철학을 국민에게 알리는 중요한 수단이자 언론정책을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인 대통령 언론회견을 보면 '국정의 동반자'라는 인식은 물론 '나름대로의 원칙'마저 찾아보기 어렵다.

노 대통령은 취임 전 대통령당선자 시절에 예고 없이 <한겨레> 신문사를 방문해 화제가 되었다. 당시 참모들은 노 대통령이 정연주 논설위원 실장 등을 만나고 싶어해 불쑥 찾아왔다고 해명했고, 정 실장은 나중에 KBS 사장으로 기용되었다. 그리고 노 대통령은 취임 이틀 전에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했다.

노 대통령은 그후 지난 12월 27일자로 보도된 <경향신문>과의 송년 특별회견을 포함해 취임 이후 1년10개월 사이에 중앙일간지와 5차례 인터뷰를 했다. 방송과는 공중파 TV 3사인 KBS, MBC, SBS와 모두 인터뷰를 했다. 지방 언론사와는 합동회견의 형식을 빌려 16개 시·도를 거의 다 소화했다.

'창간기념일에 않겠다'는 것은 '엿장수 마음대로 하겠다'는 네거티브 원칙

▲ 지난해 말 노무현 대통령이 춘추관 기자실에서 열린 비공식 간담회를 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노 대통령이 인터뷰에 응한 전국지는 <문화일보>, <국민일보>, <중앙일보>, <매일경제>, <경향신문> 등 5개 신문뿐이다. 문화일보는 도올 김용옥 교수가 인터뷰어로 나섰고, 중앙일보와는 홍석현 회장과 특별대담이란 형식을 취했다. 홍 회장은 최근 주미대사로 내정되었다. 그리고 주간지로서는 <한겨레21>이 유일하게 노 대통령을 인터뷰했다.

노 대통령은 해외 언론과도 많은 회견을 했다. 특히 올해 하반기에 집중된 39일간의 해외순방 과정에서 러시아 <이타르타스통신>, 영국 < BBC >, 일본 <마이니치신문> 등 방문국의 유력 언론사들과 인터뷰를 가졌다. 기준은 대개 그 나라의 국민에게 가장 널리 한국을 알릴 수 있는지 여부, 즉 영향력이 주요한 선정 기준이었다.

그러나 국내 신문과의 회견에는 도대체 어떤 원칙이 적용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과거의 대통령 회견 관행은 따르지 않겠다'는 것이 원칙이라면 원칙이지만, 문화일보와는 취임 100일이 계기였고, 국민일보와는 창간기념일이 계기였다.

이런 '고무줄 원칙'이 적용되니 집권 2년 동안 인터뷰를 못한 언론사 기자들은 입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경향신문과의 특별회견이 이뤄진 지난 22일에는 급기야 일부 기자들이 특정신문하고만 인터뷰하는 경위와 원칙이 뭐냐고 따져 물었다. 김종민 청와대 대변인의 답변은 이랬다.

"대통령의 언론회견 원칙이나 기준은 참여정부 출범 초기에 밝힌 것처럼 '모든 언론사에 일률적으로 창간기념일에 맞춰 의례적으로 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언론사와 회견을 할 것인지는 회견 신청 시기와 컨셉트,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한다."

여러가지 조건을 달았지만, 사실상 '엿장수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그 조건들이라는 것은 결국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입맛'과 '코드'에 맞지 않는, 경상도 말로 함축하면 '간'이 안맞는 언론을 회피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새해는 '배제와 뺄셈의 정치'에서 '통합과 덧셈의 정치'로 올인하길

사실 '모든 언론사에 일률적으로 창간기념일에 맞춰 의례적으로 하지는 않겠다'는 것은 듣기에도 민망하고 궁색한 네거티브 원칙이다. 지금 당장은 불편하고 간이 안맞더라도, 뜻을 함께 하는 더 많은 동지를 얻고, 나아가 국정의 동반자로 함께 가려면 회견도 비서실 개방도 '오픈 숍'으로 가는 결단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사상 초유의 '탄핵'으로 얼룩지고 '배제와 뺄셈의 정치'로 규정된 올해를 매듭짓고, 노 대통령이 새해에 올인(all-in)하려는 '통합과 덧셈의 정치'로 가는 시금석일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이미 지난 20일 "앞으로 분권형 국정운영을 강화하고 대통령은 정치의 대립각에서 한발 물러서서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노 대통령은 오늘 저녁 청와대 영빈관에서 출입기자들과 송년만찬을 갖는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에는 출입기자들과 송년만찬을 갖지 않고 올해 2월 취임 2주년 기념 오찬으로 갈음했었다. 변화라면 변화다. 의례적인 만찬행사를 벗어나 사진기자단이 준비한 '2004년 10대 장면' 사진 전시와 기자단이 선정한 '재미 있는 장면'상영도 예정돼 있다.

이를 계기로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언론정책 관계자들이 새해부터는 '과거'에서 '현재'와 '미래'로 눈을 돌리기를 기대해본다. '과거'는 노 대통령이 퇴임한 뒤에 사저로 새배 오는 기자들과 떡국을 먹으면서 반추할 일이다. 정부혁신·지방분권·국가균형발전의 초석을 닦은 대통령으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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