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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올 한해는 노무현 대통령으로 말미암아 생긴 일이 많았다. 노 대통령도 직접 그 점을 언급했다.

노 대통령은 28일 저녁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송년 만찬을 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임기에 대해 언급하며 "중간결산을 할 때인데 '왜 한 게 없을까' 하면 참 미안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나로 비롯된 일이 너무 많았고 나로 말미암아 생긴 변화가 많았다"고 지난 1년을 회고했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세상일이란 게 그렇고 그렇게 함께 가는 것"이라고도 했다.

"나로 비롯된 일이 너무 많았고, 나로 말미암아 생긴 변화가 많았다"

노 대통령은 새해 내외신 기자회견(1. 14)에서 '변화'라는 키워드를 제시하며 개혁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변화의 과정을 혼란과 분열로만 보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변화를 통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이런 변화의 흐름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대세가 됐다. 지난 수십 년 간 끊어내지 못했던 정치와 권력, 언론, 재계간의 특권적 유착구조는 완전히 해체될 것이며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로 성큼 다가설 것이다."

변화 대세론을 설파한 노 대통령 자신조차 예상치 못했던 '극적인 변화'는 '작용과 반작용'의 결과로 예상보다 훨씬 더 빨리 왔다. 3월 12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노 대통령이 예고한 변화의 흐름은 일단 현상을 유지하려는 수구(守舊)의 덫에 갇히는 듯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전동차를 생산하는 경남 창원시 소재 (주)로템을 방문하는 길에 탄핵안 가결 소식을 들었다. 노 대통령은 근로자들과 점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간략하게 소회를 내비쳤다.

"새로운 발전과 도약을 위한 진통이라고 생각하며, 그저 괴롭기만 한 소모적인 진통이 아닐 것이다. 모두의 노력을 통해 내일의 도약을 다지는 밑거름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힘이 들지만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그러나 어쩌면 노 대통령은 이미 그 전날에 그와 같은 사태를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노 대통령은 그 전날 가진 특별기자회견에서 몸을 던져온 자신의 정치 역정을 거론하며 이렇게 말했다.

"항상 새로운 길을 가려고 노력했다. 새로운 길이 무조건 좋아서가 아니다. 우리가 지금 걷고, 걸어가고 있는 길이 이대로 계속 가서는 안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를 고쳐보자고 새로운 길을 가려고 노력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극복해보고자 몸을 던져 노력했다."

일찍 닥쳐온 작용과 반작용... 노 대통령의 화려한 부활

탄핵에 대한 민심의 거센 반작용으로 노 대통령의 '정치적 유배'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4월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과반 의석 확보라는 압도적 지지를 바탕으로 정치적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만에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기각결정으로 '법률적 유배'의 족쇄마저 벗어 던졌다.

이후 의회의 안정 의석을 토대로 노 대통령의 국정개혁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노 대통령은 6월 4일 여당 지도부 회동에서 '당정분리 4원칙'을 천명했다. 이어 8월 10일 국무회의와 16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분권형 국정운영, 책임총리제' 방침을 밝혔다. 앞으로 큰 틀에서 일상적 국정운영은 총리가 총괄하고, 대통령은 장기적 국가전략과제와 주요 혁신과제를 추진하는 데 집중해 나가겠다는 것이 요체였다.

그리고 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 연세대 리더십 특강(5. 27)에서 언뜻언뜻 그 속내를 비쳐온 과거 청산 의지를 제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보고(7. 30)를 받는 자리에서 털어놓더니 마침내 8·15 경축사를 통해 구체적인 생각을 밝혔다.

"국가권력에 의한 국민의 인권 침해행위는 철저히 견제되고 방지돼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지난 과거의 잘못을 밝혀 교훈으로 삼으려 하는 것이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존재 의미도 여기에 있다. 과거사 문제를 단편적으로 다루는 방식이 아니라 지난 역사에서 쟁점이 됐던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국가적 사업이 필요하다. 이 부분도 국회에서 방향을 잘 잡아줄 것으로 기대한다." (7월 30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보고)

노 대통령은 과거사 진상규명이 '국가의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과거를 정리하고 새로운 결단을 할 때 새로운 신뢰가 싹튼다"면서 "과거를 능동적으로 결단한 독일과 그렇지 못한 일본의 차이를 우리는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마침내 9월 5일 MBC <시사매거진 2580>과의 인터뷰에서 "위헌이든 아니든 악법은 악법일 수 있고, 국가보안법 문제를 너무 법리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역사의 결단으로 봐야 한다"면서 50여년 묵은 '헌 칼'인 국가보안법을 칼집에 넣어 폐지하는 결단을 내릴 것을 정치권에 촉구했다.

"국민이 주인이 되는 국민주권시대, 인권존중의 시대로 간다고 하면 (독재시대에 있던) 낡은 유물인 국가보안법을 폐기하는 것이 좋겠다. 국가를 보위하기 위해 필요한 조항이 있다면 형법 몇 조항을 고쳐 형법으로 (보완)하고, 국가보안법은 없애야 대한민국이 문명의 국가로 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보안법 폐기는) 그런 상징성을 갖고 있다."

둘(과거사·신문법)을 얻은 대신에 둘(국보·사립학교법)을 잃은 '2+2' 합의문

노 대통령이 언급한 과거사 진상규명 및 보안법 폐지 주장은 역사인식을 바로잡는 것뿐만 아니라 과거 국가기관이 저지른 인권침해와 불법행위에 대한 고해(告解)와 문명 국가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기 위한 정치적 결단을 담고 있었다.

지난 12월 6일 우여곡절 끝에 최재천 열린우리당 법사위 간사가 국가보안법 폐지안을 국회 법사위에 상정했을 때만 해도 그 결단은 이행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천 대표는 곧 바로 그 다음날 국가보안법 폐지안의 연내 처리 방침을 철회하는 조건으로 한나라당에 임시국회 소집을 요구했다.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우리당은 어제(6일) 법사위에서 상정된 국가보안법 폐지안의 연내 처리를 유보하겠다"며 "현실적으로 남은 3일간의 정기국회 동안 800여개의 산적한 민생·개혁법안을 처리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에 한나라당에게 임시국회 소집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해서 어렵게 국회 문은 열었으나 한나라당의 막무가내 앞에서 끌려다닌 협상전략 부재의 열린우리당은 막판 초읽기에 몰려 마침내 12월 30일 밤에 과거사규명법과 신문법은 이날부터 31일까지 차수를 변경한 본회의에서 처리하고, 국가보안법 폐지안과 사립학교법 개정안은 내년 2월에 다루기로 한 이른바 '2+2 방식'에 최종 합의함으로써 국보법 연내 처리는 일단 무산되었다.

열린우리당은 일단 한나라당의 대체입법안을 거부한 채 '국가보안법 폐지 후 형법보완'이라는 당론을 고수했다. 특히 원내대표 회담에서 '3+1'까지로 접근했던 회담 결과는 열린우리당 의원총회에서 격론 끝에 뒤집혔고, 천정배 원내대표는 "당론은 국보법 폐지와 동시에 형법을 보완한다는 것"이라며 "연내처리는 당론이 아니다"고 연내 처리에 한계를 그었다.

이후 천정배 원내대표는 이날 밤 다시 김원기 국회의장 주재로 재개된 원내대표 회담에서 김덕룡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함께 '2+2' 방식의 합의문에 서명함으로써 당내 강경파 의원 및 시민단체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게 되었다.

이로써 열린우리당은 이날 본회의에서 과거사법과 신문법 그리고 새해 예산안, 이라크 파병 연장동의안, 투자활성화를 위한 기금관리법과 민간투자법을 처리하기로 합의하는 성과를 거두는 대신에, 나머지 '둘'(국보법 폐지안과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잃었다.

열린우리당은 특히 그 '둘'과 국민연금법, 방송법 등을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 다룬다'고만 합의해, 정작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 국보법 폐지안이 처리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확실성으로 남게 되었다.

코너에 몰린 천정배 원내대표를 기사회생시켜준 한나라당 의원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코너에 몰린 천 대표를 기사회생시켜준 것은 열린우리당이 아니라 한나라당 의원들이었다. 지난 3월 무리한 탄핵으로 노 대통령의 지지도를 한껏 올려줬던 것처럼.

여야 대표의 합의문 서명 이후에 열린 의원총회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김덕룡 원내대표가 서명한 '2+2' 방식의 합의문을 비토해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러고는 한나라당 의원들은 곧 바로 열린우리당이 직권상정으로 법안을 단독처리할 가능성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31일 새벽 0시 35분경부터 본회의장의 의장석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한나라당은 2005년 정부 예산안은 물론 자당의 정체성과 직결된 이라크 파병기간 연장동의안까지도 다른 법안처리와 연계해 발목을 잡는 수구적 철면피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렇고 그렇게 함께 가자'는 노 대통령과 천 대표의 타협안마저도 수용하지 못하는 유아(幼兒)적 사고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251회 임시국회 회기 마지막날인 12월 31일 새벽 현재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면 노무현 대통령으로 말미암아 생긴 일이 많았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그 변화의 단초를 제공했을 뿐, 화룡점정(畵龍點睛)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한나라당 의원들의 당랑거철(螳螂拒轍) 같은 몸부림이었다. 거기에 올해의 마지막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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