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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1년 전두환 군사정권에 의해 강제로 서울시 강남구 포이동 266번지(당시 200-1번지) 일대로 이주해와 22년간 집단 촌락을 이루며 살아온 도시빈민들이 서울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도심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 포이동 주민 등 100여 명은 8일 오후(12시~4시) 서울시 을지로 국가인권위 앞에서 포이동 주민의 주거권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서울시청 진입을 시도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 석희열
당시 전두환 군사정부는 도시환경을 재정비한다는 이름으로 거리를 떠도는 부랑자와 전쟁 고아 등 서울에서만 1000여명을 모아 강제로 이주시켜 한 곳에 정착케 했다. 살인사건 등 강력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자 군사정부는 이들을 다시 10개 지역으로 나누어 분산 이주시켰다.

이들 가운데 150여명은 지난 81년 12월 21일 당시 포이동 200-1번지 일대의 하천부지 3800평의 허허벌판으로 강제 수용됐다. 이후 이들은 서울올림픽이 열리기 직전인 87년까지 군대식 내무생활을 하며 강남경찰서 보안과 형사들의 통제와 관리 속에 살아왔다.

빈민해방철거민연대 소속 포이동철대위 주민 등 100여명은 8일 오후 서울 을지로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집회를 열고 △포이동 주민의 점유권 인정 △원주민에게 우선 분할 매각 △장기 미집행 도서관시설 지정 해제 △학교용지 선정계획 철회 △주거용지로의 용도 변경 등을 서울시에 강력히 촉구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움푹 패인 웅덩이를 메꿔가며 지난 22년간 피땀 흘려 일구어온 삶의 터전을 서울시와 강남구청이 서로 공모하여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학교용지로 선정하기 위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면서 "서울시는 당장 음모를 중단하고 학교용지 선정 계획 철회를 공문으로 주민들 앞에 내 놓으라"고 요구했다.

▲ 집회장 주위에 서울시장에게 주거권을 요구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 석희열
지난 81년부터 포이동에서 살고 있다는 오성만(45)씨는 "서울시에서는 '너희들이 살기 싫으면 나가면 되지 누가 억지로 들어가라고 했느냐'고 한다"면서 "당시 시퍼런 군사독재의 칼날 앞에서 들어가라면 들어가는 것이지 누가 끽소리라도 할 수 있었느냐. 걸음걸이만 이상해도 삼청교육대로 끌려가는 시절이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포이동 200-1번지가 90년대 중반 이후 도시계획이 변경되면서 266번지로 바뀌었는데도 정작 포이동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겐 266번지로 주소 등재를 안 해주고 있다"며 "결혼을 하여 부인과 자식이 생겼지만 포이동으로 주소 등록을 할 수 없어 주민등록상으로는 가족들이 모두 뿔뿔히 분산되어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그는 "주민들에게 제대로 된 주소에 주민등록도 못하게 하고 자식과 부인에게는 아버지와 남편 밑으로 이름조차 올리지 못하게 하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그러고도 서울시는 각종 세금과 주민세, 적십자회비 같은 것은 꼬박꼬박 받아간다"고 비난했다.

▲ 서울시장과의 면담이 거절되자 집회 참가자들이 도로를 가로질러 서울시청으로 향하고 있다
ⓒ 석희열
한편, 이명박 서울시장을 만나기 위해 서울시청을 방문한 주민대표 등이 서울시로부터 면담 요구가 거절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흥분한 주민들은 6차선 차도를 건너 서울시청 앞으로 몰려가 시청 진입을 시도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서울시는 시위대의 시청 진입에 대비해 정문과 후문으로 통하는 모든 출입구를 안에서 걸어 잠근 채 경찰 수개 중대를 배치하여 모든 민원인의 출입을 막았다. 시청으로 통하는 모든 문이 봉쇄되자 시위대는 "이명박 시장 나와", "시민이 시청을 방문하려는데 왜 막느냐", "폭력경찰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경찰과 심한 몸싸움을 벌였다.

▲ 시위대가 몰려오자 서울시는 문을 안에서 걸어 잠근 채 경찰을 배치하여 정문을 막고 있다
ⓒ 석희열
이날 주민들의 시위를 현장에서 지켜보고 있던 서울시 도시관리과 김동호 팀장은 "추운 겨울에 당장 나가라고 쫓아내려는 것도 아니고 모든 법 집행에는 절차가 있는 것인데, 주민들이 이렇게 몰려와서 떼를 쓰니까 안타깝다"면서 "좋은 방향으로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에서도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주민들의 서울시장과의 면담 요구에 대해 "국장부터 만나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가면서 해결 방안을 찾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래도 안되면 그때 가서 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해야지 마음에 안 든다고 무작정 시장부터 만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주민들의 시위가 점점 격렬해지자 서울시 도시관리과 관계자는 포이동철대위 조철순 부녀회장 등 주민대표와 만나 서울시장과의 면담을 주선할 것과 주민들의 요구사항에 대해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대답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 시청 진입을 시도하는 시위대와 이를 막는 경찰 사이에 심한 몸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 석희열
조철순 부녀회장은 "포이동 266번지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도시관리과의 답변을 들었다"면서 "내일 오전 10시에서 11시 사이에 김동호 팀장 등 도시관리과 직원이 포이동을 방문하여 주민들과 대화를 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조 부녀회장은 "지금까지의 태도와는 달리 서울시에서도 당시 군사정권에 의해 주민들이 강제로 이주 당한 것과 몇 년 동안 경찰의 감시 감독 하에 생활했다는 것을 대체로 인정하는 눈치였다"면서 "내일 서울시 직원이 포이동을 방문할 때 구체적인 대안을 가지고 올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의 긍정적인 대답을 전해들은 시위대는 오후 4시 국가인권위 앞에서의 집회를 마무리하고 버스 등으로 이동하여 강남구청 앞에서 간단한 규탄집회를 가진 뒤 자진 해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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