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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지배 문화인 아버지(남성)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 음주, 도박, 권위주의, 불륜, 부패, 폭력, 가부장주의 등으로 오염된 아버지 문화에 대한 이같은 변화 요청은 남성 자신들에 의해 더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다. 왜곡된 아버지 문화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버지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딸사랑아버지모임'(이하 딸사모)은 오는 19일부터 4일간 하얀리본운동을 전개한다.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남성 및 아버지의 반(反)폭력선언'을 하고 가두행진과 거리 캠페인을 벌인다.

딸사모 정채기(강원관광대학 교수) 회장은 "가정폭력 등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운동"이라며 "1차적으로는 여성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버지들에 의한 아버지의 구제, 구원을 위해 준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아버지가 바로 서야 세상이 바로 선다는 것이 변화를 바라는 아버지들의 생각이다. 21세기문화광장 탁계석 대표는 "아버지 스스로 가정문화 바깥에 서고 있다"며 "가족과 문화를 공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아버지의 소외는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탁 대표는 아버지 문화의 재정립을 위해 '아버지합창단 문화운동'을 준비중이다.

㈔색동회(이사장 배동익)와 한국가정경영연구소(소장 강학중)도 동요부르기, 동시낭송, 가족꽁트, 동화듣기, 이웃칭찬 등 가족장기자랑 발표회를 한강 유람선을 타고 선유놀이와 함께 경연형식으로 진행하는 행사를 통해 아버지들의 '가정 복귀'를 꾀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의 핵심은 '블랙 컬처'가 되어버린 아버지 문화를 가족과 함께 하는 밝은 문화로 바꾸기 위한 것이다. 이 사회의 현실적 주류이자 기둥인 아버지들이 가부장적 사고에서 기인한 부정적인 문화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더 이상의 사회발전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를 취재하여 앞으로 8회에 걸쳐 '아버지 문화를 바꿉시다'를 연재한다...<편집자주>


아버지는 변화가 두렵다

이 시대의 아버지는 어디에 서 있는가. 회사와 가정에서 소외당한 아버지들은 유흥업소에서 휘청거리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아버지들의 취한 발걸음처럼 이 시대 가정도 흔들리고 있다.

지난 15일 자정 무렵 서울 북창동 일대는 흔들리는 아버지들로 가득했다. 경제난의 영향으로 예년보다 거리가 붐비지는 않았지만 술에 취한 30∼40대 남성들이 룸살롱을 나와 술집 여성 종업원들과 2차를 가기 위해 택시를 잡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휘청거리며 무단횡단을 하는 남성도 있었고 길모퉁이에 주저앉아 토악질을 하는 남성도 있었다.

자본논리에 봉사하는 노예같아

ⓒ 김상진
인근 고깃집에서 만난 회사원 강모(36)씨는 "부자 아빠만 대접받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끊임없이 '돈줄'을 대야 하는데… 나라꼴이 영 말이 아니다"며 소주잔을 꺾었다. 호프집에서 회식 후 2차를 즐기던 모 증권회사 직원 이모(41)씨는 "회사에서 눈치보고, 집에서도 눈치보고 쇠사슬에 묶여 사는 것 같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그렇듯 한국 기혼 남성들이 위기에 빠져 있다. 개발독재 뒤 곧바로 밀려온 신자유주의의 격랑 속에서 자본의 논리에 철저하게 봉사하는 아버지들의 발걸음은 무겁다. 더욱이 아버지의 '위상'마저 흔들리고 있다. 밤거리의 아버지들은 "'헛기침' 한 번이면 해결된 일들도 가족과 시시콜콜 나눠 풀어야만 한다"며 불평했다. 가부장문화의 해체에 대한 위기의식을 노출하고 있는 것.

신자유주의의 투사가 되어 고군분투하고 있건만 가정은 또 다른 아버지의 모습을 기대한다. 아버지들은 혜택은 없고 상실만 큰 변화를 두려워한다. 그 결과 가정에 등을 돌리고 남자들만의 향수가 유효한 그들만의 세계에 심취한다. 유흥업소를 전전하며 그릇된 음주문화에 빠지거나 가정을 '한방에' 일으켜 세우기 위해 '대박'의 꿈을 꾸며 도박에 매달린다.

그토록 암울한 현실에서 방황하고 있는 아버지들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 가정문제 전문가들은 다른 가족구성원들의 도움도 필요하지만, 아버지들이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구하기 위해 투신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쉽게 말해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것.

탈권위 가정문화 동참은 필수

10년 넘게 '아버지 운동'을 펼치고 있는 정송 한국유아영재교육연구소장은 "가족해체 위기의 해결책은 새로운 가족문화를 정립하는 것밖에 없고 그 핵심엔 아버지 문화의 변화가 있다"면서 "경제논리에만 집중된 가치관을 버리고 가족구성원 모두가 가정경제의 책임자라는 인식을 나누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하지만 지금껏 살아온 방식을 하루 아침에 바꾸기는 쉽지 않다. 아버지의 위치를 다시 세우고 새로운 문화를 정립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 없다면 많은 아버지들이 도로 등을 돌릴지도 모른다. 정 소장은 '함께 하는 생활문화'를 권유한다. 여행·요리·영화 등의 취미를 가족끼리 공유하는 작은 습관이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

'아버지합창단'을 운영 중인 탁계석 21세기문화광장 대표는 "시대의 흐름은 아버지들에게 탈권위와 가정문화의 동참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아버지와 가족구성원들의 인식 변화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사회가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꾸준히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부장제의 높은 자리에서 밑을 내려다보고 호령하던 아버지가 아닌, 아내와 자녀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교류하는 새 시대 아버지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아버지에게 보내는 낮은 속삭임으로 아버지 문화를 바꾸기 위한 첫 단추를 꿰어보자. "당신만이 가족의 유일한 희망이 아니라 당신 '또한' 가족의 희망"이라고.

아버지들이여! 가정경영 CEO를 욕심냅시다

마흔 살의 제 친구들 중에는 별별 녀석들이 다 있습니다만 대부분은 ‘좋은 아버지’이길 원하며 자신이 ‘좋은 아버지’라고 자부합니다. 아내나 아이들도 대체적으로 녀석들의 ‘좋은 아버지’라는 자평(自評)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좋은 아버지’란 ‘좋은 가장’이라는 말에 더 가깝습니다. 먹고살 만큼 돈을 벌어다줄 줄 아는 경제력 있는 가장이 곧 ‘좋은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좋은 가장은 좋은 아버지일까요? 일단 ‘가장〓아버지’의 등식부터 문제가 있습니다. 이혼가정의 가장이라든가, 정년 퇴직한 아버지를 모시는 가정에서 가장이란 아버지를 뜻하지 않습니다.

가장은 가족을 통솔하고 대표하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습니다. 따라서 가장에 성별은 존재하지 않지요. 그러나 가부장 사회인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히 호주, 아버지가 가장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1990년대 후반, IMF 사태는 가부장적 가장들에게 일대 혼란을 일으켰습니다. 양육과 교육, 가사는 아내의 일이고 자신들은 돈만 벌어오면 된다고 믿었던 가장들은 ‘황퇴’ ‘명퇴’ 등을 겪으며 ‘고개 숙인 남자’로 전락했습니다. 가장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들이 혼란스러웠던 것은 누군가가 가장 역할을 빼앗았기 때문이 아니라 더 이상 과거의 가장이 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기실 가장의 정체성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산업화의 영향으로 핵가족화가 확산되면서부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아버지’ 공식이 유효했던 것은 경제력과 사회적 민주성의 부족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혼율이 급증하고 만혼이 확산되었으며 아내들의 권리 찾기가 본격화된 21세기의 새로운 가정 형태는 아버지에게 새로운 역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요?

부끄러운 얘기지만 저 역시 남성중심의 접대문화에 10년 가량은 푹 빠져 있었습니다. 술을 얻어먹고, 심지어 룸살롱에서 접대를 받아본 적도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제 동료들 중에는 월급으로 포커판을 벌이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많은 분들의 유일한 여가가 고스톱입니다.

가족과의 주말여행이라고 해봐야 환경은 관심도 없이 자연을 훼손하고 먹고 마시고 놀다 오는 게 전부인 분들이 대다수입니다. 한 주의 피로를 낮잠과 TV 시청만으로 해소하려고 합니다. 그 한편에서 원정출산, 조기유학, 이민 붐이 일고 있습니다.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는 나라라는 거지요.

이제는 아버지들이 나서야 합니다. 술자리에서 세상을 비판하고 ‘상사 씹기’를 즐기는 대신 아내와 아이들의 불만이 무엇인지 귀기울여야 합니다. 가족과의 의사소통이 얼마나 부족한가를 절감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비판하는 세상을 바꾸는 일이니까요.

어떻게 하냐고요? 바로 문화입니다. 함께 노래 부르고, 그림 그리고, 연주회와 전시회와 박물관을 찾는 겁니다. 거기에서부터 대화를 시작하는 겁니다.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배우는 자세로 문화를 접하는 겁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요? 공짜로 알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 과정이 다 문화요, 가족과의 커뮤니케이션이니까요. 아이들과 배를 깔고 누워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를 상의하는 것에서부터 아버지의 변화는 시작될 테니까요.

문화체험을 통해 민주적 가정 운영에 나서는 겁니다. 지금까지 가정을 이끌어온다고 생각하며 지켜온 가부장적 가장의 짐은 팽개치고 가정 전문경영인으로 나서는 겁니다. 평등가정이 추천한 자랑스러운 전문경영인, CEO 욕심나지 않습니까? / 우먼타임스 김상진기자

“가족 사랑은 유람선을 타고…”
색동회-가정경영연구소 ‘한강가족유람선’

‘아버지 문화, 이대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가운데 자체적으로 가족의 건전한 여가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건전한 가족 여가문화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지한 실정이다. 자녀의 눈높이에 맞는 여가문화를 찾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부모와 자녀가 함께 어울릴 만한 프로그램도 드물기 때문이다.

이에 일부단체들은 가족간의 정서를 함양하고 가족의 본 의미를 되살리려는 취지에서 가족이 함께 하는 가족문화 만들기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사단법인 색동회는 한국가정경영연구소와 함께 ‘한강가족유람선’을 매달 세 번째 금요일에 정기 운항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강가족유람선’은 동요 부르기, 동시 낭송, 가족 콩트, 동화 듣기, 이웃 칭찬 등 가족 장기자랑 발표회 등을 선상에서 펼치기 위해 마련된 이색적인 유람선 이벤트이다.

‘탈가족 문화’에 익숙한 아버지들에게 ‘가족과 함께 합창하기’ ‘가족 장기자랑 대회’ 등은 어색한 행사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는 것이 현재 비뚤어진 아버지 문화를 바로잡는 길이므로 가족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은 그동안 자녀에게 무심했던, 자녀의 양육은 멀리 밀어두었던 아버지들에게 낯설지만 의미 있는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이번 행사를 담당한 조희래 색동회 사무처장은 “가정의 해체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고자 하는 취지에서 마련된 것”이라면서 “오는 21일 제2운항에는 30명의 가족과 관람객 200여명이 승선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행복한 가족 대회 한강가족유람선에 참가한 가족들 중 우수 가족은 12월 연말 결선대회를 통해 후원단체장의 표창을 받게 되며, 화목한 가정과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모델가족으로 선정될 예정이다.

문의 : www.saekdong.or.kr, 02-3141-4744
/ 우먼타임스 이재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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