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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공서열 위주의 법관인사를 비판한 '인터넷 연판장'을 돌려 주목을 받았던 서울지법 북부지원 이용구(사시33회) 판사는 18일 '전국 판사와의 대화'에 참석하기에 앞서 미리 준비한 토론 자료를 통해 사법개혁을 거듭 촉구했다.

이 판사는 '법원행정처장님의 법관과의 대화에 관한 저의 입장'이란 제목의 A4용지 4쪽 분량의 글을 통해 1>사법의 실패가 없었는지? 2>보수와 진보의 대결이라는 시각에 관하여 3>대법관 임명제청 과정의 문제점에 관하여 4>사법의 독립에 관하여 5>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구성에 관하여 6>대법원의 사건처리 부담과 인적구성 방식에 관하여 등 6가지 항목을 열거하면서 조목조목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이 판사는 우선 "법원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의 측면에서 소극적이었다. 행정, 입법에 대한 견제의 부족, 즉 과소사법을 의미한다"고 규정한 뒤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은 데에서 찾았다.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하여, 다음단계에서 대법관 승진을 기다리는 법원장님들이 계시고, 그 밑에 고등부장으로 승진을 하여야 하는 부장판사님, 그리고 부장님과 배석판사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자유롭기는 하지만 그래도 윗분들을 의식하여야 하는 위치에 있는 단독판사들, 마지막으로 부장판사님들을 '모셔야' 하는 배석판사들이 피라미드 구조하에서 재판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단계에 속해 있건 거의 대부분의 법관들은 현재의 인사구조에서 갑갑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는 이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대법관 승진을 기존의 법관 승진 구조에서 떼어내는 것은 하급 심의 인사구조를 바꾸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라고 제안했다.

이 판사는 또 "이전의 과소사법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 보수가 진보를 압도하는 정치, 사회적 상황에서 발생했다"고 지적한 뒤 "과소사법을 시정하고 적정사법을 구현하자는 요구는 어떤 측면에서 그 주장 자체가 진보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진보가 보수를 압도하는 상황에서도 과소사법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일부 언론이 이번 사건을 '보수' 대 '진보' 충돌이라고 이분법적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다.

이 판사는 "어떤 경우에도 사법권 독립이 훼손되어서는 안된다"고 전제한 뒤 "현재 사법권의 독립 문제는 정치권력 등 외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중요시되었던 과거와는 달리 사법부 내부의 관료성과 법관 개인의 독립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갖게됐다. 그 관료성을 심화시키고 있는 첫 번째 고리는 대법관 승진단계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이번 대법관 인사제도 개선과 관련하여 대법원은 헌법재판과 무관하므로 인적구성의 다양화는 불필요하거나, 덜 필요하다는 식의 주장은 지금까지 대법원이 최고법원이라고 생각해 온 대부분의 법관들을 실망시키는 자기 비하식 주장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이날 이 판사가 '전국 판사와의 대화' 이전에 밝힌 토론 자료 전문이다.

법원행정처장님의 법관과의 대화에 관한 저의 입장(2)

1. 사법의 실패가 없었는지?


이전 사태를 보는 법원 안팎의 시각은 다양한 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 문제를 보는 출발점을 지금까지 법원이 제 역할을 다하여 왔는지에 관한 평가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 법원은 지난 10년간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특히 윤관 대법원장 님 시대의 구속실질심사제의 도입과 불구속 원칙의 확립, 그리고 현 대법원장님의 새로운 형사재판운영방안의 시행 등은 과거 수 십 년간 지속되어 온 잘못된 형사재판관행을 탈피하려는 획기적인 업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법원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의 측면에서 소극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행정, 입법에 대한 견제의 부족, 즉 과소사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저는 과소사법, 다시 말해서, 법원이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소홀히 하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 있겠지만 큰 부분은 인사제도의 구조와 운영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하여, 다음 단계에서 대법관 승진을 기다리는 법원장님들이 계시고, 그 밑에 고등부장으로 승진을 하여야 하는 부장판사 님, 그리고 부장님과 배석판사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자유롭기는 하지만, 그래도 윗 분들을 의식하여야 하는 위치에 있는 단독판사들, 마지막으로 부장판사 님들을 '모셔야'하는 배석판사들이 피라미드 구조하에서 재판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단계에 속해 있건 거의 대부분의 법관들은 현재의 인사구조에서 갑갑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법관 승진을 기존의 법관 승진구조에서 떼어내는 것은 하급심의 인사구조를 바꾸는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법원 안팎의 요구는 적정사법을 구현할 수 있는 인사구조와 운영을 실현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2.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라는 시각에 관하여

이전의 과소사법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 보수가 진보를 압도하는 정치, 사회적 상황에서 발생하였습니다. 따라서 과소사법을 시정하고 적정사법을 구현하자는 요구는, 어떤 측면에서는 그 주장 자체가 진보라고 생각될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의 요구는 무조건 진보인사를 받아들이자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진보가 보수를 압도하는 상황에서도 과소사법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대법관 인사제도의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보수가 진보를 압도하는 상황에서든, 진보가 보수를 압도하는 상황에서든 적정사법을 구현할 수 있는 그릇, 시스템을 도입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3. 대법관 임명제청 과정의 문제에 관하여

먼저 저희들이 특정인을 반대하거나, 특정인을 지지하고자 하는 것은 아님은 대부분의 법관들이 이해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문제는 이번 제청과정에서 저희들은 그 동안 법원 안팎에서 법원 인사시스템의 개선을 요구해 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의 확고한 반대의사가 표현된 것이라고 보고, 이를 지적하고 우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와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조치를 이 기회에 취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4. 사법의 독립에 관하여

저희들은 어느 경우에도 사법권 독립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재 사법권 독립의 문제는, 정치권력 등 외부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중요시되었던 과거와는 달리 사법부 내부의 관료성으로부터 법관 개인의 독립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관료성을 심화시키고 있는 첫 번째 고리는 대법관 승진 단계에서 나타나고 있고, 이를 재고해 주십사 하고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5.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구성에 관하여

현재 보도에 의하면, 우리 헌법상 헌법재판을 헌법재판소가 담당하기 때문에 대법원은 정책법원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필요성이 덜 하고, 대법원은 실무법원으로서 기능하여야 하며, 따라서 대법관을 경력법관 중에서 업무처리능력을 최대의 덕목으로 가진 법관 중에서 선발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우선, 우리 헌법상 헌법재판을 헌법재판소만이 담당한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는 판단임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우리 헌법상 헌법재판권은 헌법재판소와 법원이 나누어 갖고 있습니다. 법원은 주요하게는 법률에 관하여 합헌적 법률해석을 통하여, 그리고 합헌적 법률해석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위헌제청을 통하여 헌법재판을 하고 있고, 법률 이외의 명령, 규칙, 조례 등에 관하여는 위헌 판단을 포함하여 모든 측면의 헌법재판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대법원도 합헌적 법률해석의 권한이 대법원에 있음을 누차 강조해왔고, 헌법재판소의 변형위헌결정에 관하여 이의를 제기하면서 헌법재판소와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헌법기관 세 분이 헌법재판관 세 분을 나누어 지명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헌법재판관의 인선구조는 다양성과 개방성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헌법재판소 내부의 논의도 상당히 수평적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나아가, 헌법적 쟁점이 없는 사건의 경우에도 대법원은 정책판단을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 대법관 인사제도 개선과 관련하여 대법원은 헌법재판과 무관하므로 인적구성의 다양화는 불필요하거나, 덜 필요하다는 식의 주장은 지금까지 대법원이 최고법원이라고 생각해 온 대부분의 법관들을 실망시키는 자기 비하식 주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6. 대법원의 사건 처리 부담과 인적구성 방식에 관하여

또한, 대법원의 사건 수가 많기 때문에 업무처리능력을 우선시해서 대법관을 선출하여야 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도 대법원은 많은 사건을 신속하게 효율적으로 처리하여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대법원이 지금까지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한 것은 사건 처리를 늦게 해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대법원의 전통적인 역할, 즉 행정, 입법부에 대한 견제를 제대로 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대법원이 아무리 더 많은 사건을 더 효율적으로 처리하여도 그것이 사법부의 신뢰성 제고로 연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사법부의 신뢰성 제고를 위해서는 적정사법을 실현하여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대법관 인사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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