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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개혁국민정당 의원. 그가 민주당의 '법통'을 거부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개혁적인 이유인가 반개혁적인 이유인가?
유시민 개혁국민정당 의원. 그가 민주당의 '법통'을 거부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개혁적인 이유인가 반개혁적인 이유인가? ⓒ 오마이뉴스 이종호
개혁신당의 선봉에 서 있는 유시민 의원은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김근태 의원을 비판하면서 개혁신당을 추진하고 있는 자신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이하 <오마이뉴스>, 5월 16일자 참조) 그는 "개혁신당은 양김이 만든 지역주의 정치지형을 허무는 동시에 그분들이 남긴 낡고 부패한 정당구조와 정치문화를 혁신하는 정당개혁을 겨냥합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누가 봐도 빛이 아주 좋다. 그러나 이것이 다인가? 이것이 그가 상상하고 있는 역사인식의 전부인가? 그렇다면 개살구일 수도 있다.

유 의원은 이 땅의 지역주의의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양김이 만들"었는가? '양김'이라는 자연인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경상도와 전라도가 나뉘어 싸우다 보니 지역주의가 생겼는가? 그렇다면 묻겠다. 김영삼과 김대중을 지지하는 지지자들은, 아니 더 체계적으로 말하자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역사적 가치평가라는 측면에서 완전히 동일한가? 그래서 유 의원은 한나라당을 거부하는 이유와 '완전히 똑같 은 이유(!)'에서 민주당을 거부하고 있는가?

유 의원은 틀림없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는 "민주당에서 가져가야 할 것은 '법통'이나 국고보조금이 아니라 민주당의 자유주의적 정치개혁 노선과 대북평화 정책, 그리고 참여형 정당에 공감하는 민주당 소속의 정치인과 당원들이라고 저의 확신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한마디로 민주당의 역사적 이력에는 관심이 없고 민주당의 자산만 내놓으라는 것이다.

이것이 유시민이 말하는 자유주의적 개혁신당의 역사인식이다. 그에게 전두환의 민정당을 계승하는 한나라당과 전두환 파시즘의 반테제로 유지되어온 민주당의 역사적 법통 차이를 구분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말하자면 그에게는 김영삼과 김대중의 차이도 없듯이 전두환과 김대중의 차이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민주당의 모든 것을 원하지만 민주당의 법통만은 한사코 사양하는 이유다.

아니 어쩌면 '법통'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지만 혹 다른 이유에서 그 법통을 거절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법통으로는 영남에서 표를 얻을 수가 없다는 정치공학적 계산이 깔려있는지도 모른다. "개혁신당행 기차에 몸을 실음으로써 얻을지도 모를 새로운 지지층은 '약속어음'이지만 떨어져나가는 '호남표'는 현찰이 아니겠습니까"라며 김 의원의 정치공학을 의심하는 유 의원에게 정치공학적 음모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반격이 충격적이겠지만 그는 알고 있을 것이다.

유 의원은 "(김 의원은) 쉽게 말해서 선거 때마다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들을 그대로 안고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또 반문합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죽어라고 한나라당만 찍어온 대중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정권재창출을 이룬 대중은 소중하고 거기 협조하지 않은 대중은 그냥 버려 두어도 좋다는 말입니까?"라고 말하고 있다. 말하자면 '협조하지 않은 대중'을 위해 '정권재창출을 이룬 대중'을 버리라는 것이다.

이쯤에서 독자들도 생각나는 사건이 있을 것이다. 1990년의 3당합당이다. 3당합당의 정신이 뭔가? 배반의 정신이다. 반독재투쟁에 앞장서라고 지지해준 유권자들을 배반하고 단지 권력을 위해 독재자들과 야합한 '가치맹목'의 정신이다. 지금 유 의원이 이 가치맹목적인 배반의 정신을 부르짖고 있다. 자신의 주장대로 민주당의 법통을 무시해야만 '한나라당만 찍어온 대중'들이 움직이므로 호남을 떨어내라는 것이다. 좋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 대의민주주의의 정신을 부정하면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유시민의 개혁신당이 추구하고 있는 이런 식의 정치공학에 어떤 역사적 가치판단이 존재하고 있는가? "호남 소외론이 더 확산되고, 구주류가 신주류를 더 공격해야 한다. 호남쪽이 흔들흔들해야 영남 유권자들로부터 표를 달라고 할 수 있다"(<오마이뉴스>, 5월 13일자)는 신기남 의원의 논리에 정치공학 말고 어떤 정신과 철학이 존재하는가? 전국적으로 표만 얻을 수 있으면 그것이 곧 개혁이라는 것을 증명하는가? 전국적으로 표를 얻기 위해 치욕의 역사를 덮어버리고 이제 그만하자고 하면 그것이 곧 개혁인가?

유 의원은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또다른 지역주의를 만들어내고 있다. 변증법적으로 말하자면 '반지역주의=지역주의'다. 그는 지역주의의 자기동일성의 한계를 결코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그의 반지역주의엔 지역주의를 지양할 역사적 가치판단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개혁신당의 그림자가 호남소외로 나타나고 있는 이유다. 유 의원은 이런 분석이 결코 믿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계속해보자.

유 의원은 전국적인 득표가 가능한 정당만 만들어지면 지역주의가 사라질 것이라고 보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가치판단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유 의원이야 지역주의의 원인이 양김이고 모든 것을 단절시킨 채 새출발(?)만 하면 지역주의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최근사의 지역주의의 핵심은 5·18이고 우리들 마음속에서 이 5·18에 대한 평가가 우리를 분열시키고 있는 한 지역주의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전두환을 지도자로 생각하고 전두환의 한나라당이 독야청청하는데 지역주의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보다 큰 오산은 없을 것이다. 90%가 넘는 호남인들이 상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을 이 땅의 지성인이라는 사람들은 뜬구름잡기식 지역주의로 폄훼하며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지금 개혁신당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들은 아마도 중부권의 20-30대, 그리고 부산을 중심으로 하는 신세력일 것이다. 기자는 그들도 똑같은 함정(반지역주의=지역주의)에 빠져 있다고 생각한다. 전자는 '5·18은 이제 그만'을 외치고 있으며, 후자는 노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뒤 누군가가 호남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때려줄수록 신이나 개혁신당의 지지도를 높여가고 있다. 이것이 건전한 개혁세력인가? 이 세상에 이런 식의 개혁세력은 없다.

김근태 민주당 의원. 그는 민주당의 '법통 지키기'가 '밥통 지키기'의 무기로 사용될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김근태 민주당 의원. 그는 민주당의 '법통 지키기'가 '밥통 지키기'의 무기로 사용될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유 의원은 "개혁신당론의 배후에 숨어있을지도 모를 정치적 타산과 정치공학을 눈 여겨 살피는 것은 현명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는 정치적 명분과 시대의 흐름을 먼저 살펴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고 김 의원에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깨우쳐야 할 사람은 유 의원은 자신이다. 자신은 반지역주의를 주장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내용은 새로운 지역주의에 목매달고 있을 뿐이다. 자신은 새로운 시대를 역설하고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내용은 구태의 3당합당 정신일 뿐이다.

만약 이 주장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눈을 감아보라. 그리고 역사를 생각해보라. 왜 민주당의 법통을 거부하고 있는지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라. 김대중의 민주당으로는 장사가 안되는가? 그래서 민주당의 김대중과 3당합당의 김영삼은 똑같은 사람이라고 가치맹목적 시각으로 합리화시키는가? 그래서 광주의 김대중과 대구의 전두환도 똑같은 지역주의 인물이라고까지 나갈 생각인가? 역사적인 시각에서 "분열적 지역주의를 고착시킬 위험이 있다"는 김근태 의원의 고언이 정치공학으로만 들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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