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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공개 선언자 제4호 나동혁씨.
ⓒ 최유진
"병역 거부해 교도소 갔다 오면 평범한 사람처럼 살 수 없다. 취직도 안 될 것이고 사회적으로 왕따가 될 것이 뻔한데 왜 자꾸 험한 길을 가려고 하냐.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갈텐데…."

이런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한 20대 젊은이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택했다. 주인공은 "평소 시위에서 외치던 반전과 평화의 구호를 몸소 실천하기 위해 병역거부를 결심했다"는 나동혁((26·서울대 수학과 휴학중)씨.

지난해 12월 불교신자 오태양(28)씨가 최초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언한 이후 네번째다. 종교적 이유가 아닌 정치적 신념 때문에 병역을 거부한 것은 지난 7월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유호근(27)씨 이후 두 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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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2일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힐 나동혁씨를 미리 만나, 감옥행과 병역 거부 두 가지 선택지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한 20대의 젊은이가 겪어야 했던 일들과 그때 당시 떠올랐던 생각을 들어봤다.

나씨는 올해 초부터 군대문제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 학생운동을 계속하기 위해 군대 가는 것을 미뤄왔는데, 올해는 만 25세가 되는 해여서 더 이상 군대를 연기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나씨는 지난 6월에 '9월 12일 논산 훈련소 입소'라고 적힌 영장을 받아들었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군대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 나씨는 병역거부 운동이 국가주의적 사고방식을 개선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최유진
학과 선배들이 병역특례를 통해 군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보고 '병역 특례를 받아 군대 문제를 해결할까'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평소 시위 현장에서 외쳤던 반전·평화구호를 몸소 실천하기 위해 병역 거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병역 거부를 결심했다.

나씨의 결정은 쉽지 않았다. 부모의 반대가 심했기 때문이다. 나씨의 아버지는 "병역거부하면 다시는 볼 생각을 하지 말라"며 강한 반대의 뜻을 나타냈고, 어머니는 "니가 하는 일이니 말리지는 못하겠는데…"라며 나씨의 결정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왜 굳이 험한 길을 택해 어렵게 살아가려고 하냐. 니 주장이 아무리 옳다고 해도 국가가 시키면 어쩔 수 없이 해야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나씨는 부모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끝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길을 선택했다. 병역거부 운동이 반전과 평화의 문제를 넘어서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고 있는 "국가가 시키면 잘못된 일이라도 어쩔 수 없이 해야한다"는 국가주의적 사고방식을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가 국방의 의무라는 명분으로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게 침묵을 강요할 때, 사회적 소수자인 이들이 "병역 거부"를 외치며 국가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사회의 사회적 소수자인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씨가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대안으로 제시하고 나선 것은 대체복무제도. 종교적인 이유나 정치적인 신념에 따라 군복무를 거부한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들에게 비전투분야에서 군복무를 대신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 대체복무제도는 전세계적인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분단 상황에 처해 있고 반공·안보 논리가 사회 전체에 팽배하고 있기 때문에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나씨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위한 10만인 서명운동'에 참여했을 때 대체로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너처럼 이렇게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이름으로 군대를 안 가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 안보는 누가 책임지냐?"는 식이었다.

▲ 나씨를 만난 연세대학교 교정에는 한국사회의 평화와 인권을 실현하기 위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은 보장돼야 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 최유진
나씨는 오는 12일 공식적으로 병역거부 선언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병역거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나가는데 힘을 쏟을 계획이다.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한 독일의 경우, 대체복무가 서면제출로도 가능하기 때문에 쉽게 신청할 수 있음에도 독일 젊은이의 1/3만이 대체복무를 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대체복무제도가 실시되면 누가 군대를 가겠느냐"고 걱정하는 시민들을 설득해나갈 계획이다.

또한 나씨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지 않느냐"고 우려하는 시민들에게 "'양심적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에서 지난 3월에 만든 입법안 안에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선별기준이 매우 구체적이고 까다롭게 제시돼 있어 그럴 가능성은 적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시민들의 걱정을 덜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나씨는 "군제도가 불합리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병역거부 선언으로 입게 되는 피해가 너무 커 침묵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라면서 "이번 자신의 병역거부 선언으로 다른 젊은이들이 '양심적 병역 거부'를 선언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씨의 병역거부 공개 선언이 이뤄질 12일에는 아직 입영영장이 나오지 않았지만 앞으로 병역거부를 하겠다는 대학생 10여명이 '예비병역거부선언'을 할 예정이고, 이들과 함께 '양심을 나누는 사람들'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을 확대시켜나갈 계획이다.

"주민등록증에 빨간 줄 그어지고, 사회에 나가서 취직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결정"임을 알면서도 어려운 선택을 감행한 나씨가 앞으로 감옥으로 갈지, 민간 장애인 단체에서 대체복무를 할 수 있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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