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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존중되는 권리를 출생하면서부터 갖고 있다. 장애인은 그 장애의 원인 또는 정도에 관계없이 같은 나이의 시민과 똑같은 권리를 갖는다."
-장애인의 권리선언 제 3 항(1975년 12월 9일 제 30 차 UN 총회에서 결의)

올해 4월 20일, 장애인 날은 장애인날을 정한 지 꼭 20년째 되는 해이다. 4월달이 되면 신문, TV할 것 없이 온통 장애인 이야기들이지만 정작 장애인날의 역사적 유래나 정치적 의미를 되짚어 보는 일은 거의 없다.

4월 20일이 장애인날 된 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하고 명료하다. 국가가 정했기 때문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전두환 정권이 정했기 때문이었다. 특별히 기억해야 할 장애인에 대한 사건이나 역사적 상황이 있었던 것은 더욱 아니었다. 다만 신군부가 장애인 복지법을 이날 공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이유이다.

'81년의 장애인날'이 만들어진 것은 그나마 나름대로 명분이 있었다. 1981년은 바로 UN이 정한 '세계장애인의 해(IYCP, International Year of Disabled Persons 1981)'이기 때문이었다. 1979년을 세계 아동의 해로 정했던 바로 다음 주제로, 1976년 12월 16일 제 31차 총회에서 1981년을 완전한 참여와 평등이란 가치를 천명하고 세계 장애인의 해로 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UN에서조차도 이것을 끌어내기까지는 8년간의 기나긴 투쟁과 설득이 있었다.

그 긴 시간을 이끈 사람은 뜻밖에도 리비아 UN주재 대사였다. 리비아 대사는 73년 첫 제안 이후, 8년 동안이나 각국의 대사들에게 끈질기게 호소, 결국 모두의 동의를 끌어냈다.

이에 앞서 국제적인 장애인 단체인 세계재활협회는 지난 70년대를 재활의 10년이란 모토를 내걸고 장애인운동을 국제적으로 전개한 것도 큰 힘이 됐다.

그러면 당시 신군부는 왜 4월 20일을 굳이 장애인 날로 정했을까? 그것은 신군부를 둘러싼 시대적 정치적 상황을 살펴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81년은 제 5 공화국이 3월에 전두환의 취임으로 시작된 해이다. 그리고 바로 4월 11일 국회가 출범했다. 그리고 장애인날이 선포된 것은 12.12가 마무리된 다음 달 1월 5일 당시 국무총리였던 남덕우 총리가 발표한 특별 담화문을 통해서였다.

'장애인의 재활·자립·밝아오는 복지사회'란 표어로 발표된 담화문은 전두환 정권이 내건 '개방과 자율', '복지 국가 건설'이라는 정치 슬로건을 그대로 대변해 주고 있었다. 실제로 '장애인 날'은 군사 쿠데타 정권의 정당성을 획득시키는 최고의 악세사리였던 것이다.

장애인날 제정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던 '심신장애자복지법(이하 장애인복지법)은 장애인에 대한 최초의 종합 법률이었다. 그러나 법적 강제력이나 처벌 조항은 빠진 채 캠페인성 선언문에 그쳐, UN의 세계 장애인의 해 선포의 구색 맞추기에 불과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80년 3월에 입법 예고되었다.

그리고 그 해 80년 8월 21일 보건사회부(지금의 보건 복지부)에 의해 국무회의에 넘겨졌고 81년 4월 20일, 공포, 그 해 6월 5일 법률 3452호로 제정되었다.

국무총리의 특별 담화 이후 보사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세계장애인의 해 한국사업추진위원회를 설치되고 이틀 뒤 보사부에서 그에 따르는 예산을 발표했으며 서울시가 그 해 장애인 10대 사업 구성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발표는 채 두 달을 못가 6월 초 모두 백지화되거나 흐지부지되었다.

예산 발표가 있기 전 겨우 두 달 전에는 보사부는 처음으로 한 달 동안 실태조사를 실시, 부랴부랴 우리나라 전체 장애인 수를 90만1800명으로 발표하는 웃지못할 일도 벌였다. 이에 앞서 UN은 세계장애인실태보고서를 공개 발표했는데 세계인구의 10%가 장애인이며 이중 80%가 저개발국가나 개발도상국가에 분포되어 있음을 밝혔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장애인의 공식 통계는 100만을 약간 웃도는 정도이다. UN의 말 한마디에 법까지 만들고 국가차원에서 난리법석을 떨었건만 정작 중요한 잣대에서는 왜 UN을 따르지 않았을까?

4월 20일 장애인날 제정이 한낱 정치적 쇼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은 그 날을 전후해서 연속적으로 일어났던 장애인들의 비관 자살이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3월 15일 지체장애인 전용호(당시 24세) 씨가 처지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4월 28일에는 중학생 남구현(뇌성마비,당시 17세) 군이 목을 매 자살했던 사건은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천병전(지체 장애 18세) 군이 그 뒤를 이었다.

장애인들의 비관자살은 거기서 멈추지 않아, 4월 30일 당시 중학교 1학년이던 조만수(정신지체 15세) 군 역시 나무에 목을 맸고, 5월 13일 지체장애인 진식열(지체장애, 19세) 군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 세상을 등졌다.

역설적에게도 군사정권의 정치적 도구에 불과했던 장애인 날을 장애인들은 스스로 죽음이란 절규로 4월 20일이 진정한 장애인날로 자리매김하도록 했다.

그리고 2001년 4월 20일, 20년이 흘렀다. 올초부터 뉴스의 한 귀퉁이를 차지한 친족에 의한 장애인 살인은, 20주년 장애인 날에 장애인들은 죽임을 당함으로써 오늘날 우리에게 장애인날의 진실을 일깨우려는 하나의 울부짖음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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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eduable.jinbo.net) 사무국장을 맡아 장애인들의 고등교육기회확대와 무장애배움터 실현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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