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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용량큰첨부 파일

 

 아침에 인터넷포털 네이버로 편지를 하나 띄우면서 ‘부피가 큰’ 파일을 하나 붙였습니다. 이와 같은 파일을 보낼 때에는 으레 ‘대용량파일 첨부’ 기능을 쓰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은 화면에 다른 말이 뜹니다.

 

 ┌ 용량큰첨부 파일 (o)

 └ 대용량첨부 파일 (x)

 

 언제부터 ‘용량큰첨부’로 이름을 고쳤는지는 모릅니다. 잠깐만 이러한 낱말을 쓸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주 잠깐만 이 이름을 쓴다고 해도, 또 시늉으로만 이 이름을 써 보았다고 해도, 여러모로 반갑습니다.

 

 누구나 조금씩 생각을 기울여 보면 얼마든지 한결 걸맞고 알맞고 살갑게 낱말 하나 엮어낼 수 있습니다. 말투나 말씨도 더욱 부드럽고 아름다이 여밀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생각을 기울이지 않으니 좀더 낫다고 여겨지는 낱말이나 말투나 말씨를 못 찾고 못 느끼고 못 쓰고 있을 뿐입니다.

 

 ┌ 용량큰파일 붙이기

 ├ 부피큰파일 붙이기

 └ 큰파일 붙이기

 

 ‘대용량첨부’에서 ‘용량큰첨부’로 한 걸음 내딛어 보았다면, 앞으로는 ‘용량큰파일 붙이기’로 한 걸음 더 내딛을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다시 한 걸음 내딛으면서 ‘부피큰파일 붙이기’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뒤에는 ‘큰파일 붙이기’로 나아갈 수 있어요.

 

 한 걸음씩입니다. 꼭 한 걸음씩입니다. 아주 더디다고 할지라도 한 걸음씩입니다. 좀 느린 듯 보일지라도 한 걸음씩입니다. 아직 모자라거나 엉설할지라도 한 걸음씩입니다. 앞으로 갈 길이 멀다지만 한 걸음씩입니다.

 

 차근차근 추스르면 됩니다. 찬찬히 다독이면 됩니다. 알알이 다스리면 됩니다. 말이며 글이며, 또 넋이며 얼이며, 또 마음이며 생각이며, 우리 삶을 바탕으로 이웃 모두와 어깨동무할 만한 사랑스럽고 믿음직한 틀거리를 찾아나서면 됩니다.

 

 

ㄴ. 넣는곳

 

.. ‘差入口’는 日語 그대로인 ‘사시이레구찌’인즉 이런 것 하나 整理 못하고 있는 當務者의 無誠意를 責하지 않을 수 없다 ..  《국어정화교본》(한미문화사,1956) 82쪽

 

 1956년에 나온 ‘국어정화’교본에 적힌 글을 읽습니다. ‘차입구’라는 일본 한자말을 고쳐쓰지 못하는 우리 말씀씀이를 꼬집는데, ‘차입구’ 하나를 꼭 걸러내야 한다고 하면서도 ‘日語’, ‘整理’, ‘當務者’, ‘無誠意’, ‘責’ 같은 대목은 그대로 두는 모습이 아쉽습니다. 그러나, 1950년대와 1960년대까지는 이런 ‘국어정화’가 제법 많았습니다.

 

 ┌ 차입구 : x

 ├ 차입(差入) : 교도소나 구치소에 갇힌 사람에게 음식, 의복, 돈 따위를

 │      들여 보냄. 또는 그 물건. ‘넣어 줌’, ‘옥바라지’로 순화

 └ 투입구(投入口) : 물건 따위를 넣는 구멍

 

 2009년 오늘날 국어사전을 뒤적여 봅니다. ‘차입구’라는 일본 한자말은 실려 있지 않습니다. 언제부터 이 낱말이 국어사전에서 떨려 나갔을까 궁금한데, ‘차입구’는 떨려 나갔어도 ‘차입’은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다만, ‘차입’을 실어 놓으면서도 고쳐쓸 말이라고 꼬리표를 붙입니다. 그러면, ‘차입구’뿐 아니라 ‘차입’도 일본 한자말이라는 소리가 되겠군요.

 

 ┌ 차입구 → 넣는곳 / 넣는구멍 / 넣는데

 └ 차입 → 넣음 / 들임 / 넣어 줌 / 들여 보냄

 

 국어사전을 다시 뒤적입니다. ‘차입구’나 ‘차입’ 같은 일본 한자말을 갈음할 만한 토박이말이 얼마나 있는가 싶어 살펴보는데, ‘넣는곳’이나 ‘넣는구멍’ 또는 ‘넣음’이나 ‘들임’ 같은 낱말은 실리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뜯는곳’이나 ‘먹는곳’이나 ‘쉬는곳’ 같은 낱말도 국어사전에는 안 실립니다. ‘타는곳’과 ‘타는문’이라든지, ‘내리는곳’과 ‘내리는문’도 국어사전에는 안 실립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쓸 돈’을 주는데, 쓰라고 주니 ‘쓸돈’이지만, 오로지 ‘용돈(用-)’이라는 낱말만 국어사전에 실릴 뿐이에요.

 

(통째로 손질)→ ‘차입구’는 일본말 그대로인 ‘사시이레구찌’인즉 이런 낱말 하나 털어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 마음씀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차입구’를 털어내거나 씻어내듯 ‘일어’를 털어내고 ‘정리’를 싯어내며 ‘당무자’와 ‘무성의’를 솎아내는 가운데 ‘책하다’를 쫓아냈다면, 지금 우리들 말과 글은 사뭇 다르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불꽃튀는 세계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자면 한자도 배우고 영어도 배워야 한다고들 이야기하는데, 한자도 배우고 영어도 배워야 한다고 외칠지라도, 우리는 우리가 쓸 말을 알맞고 올바르고 살갑고 아름다이 익히고 가다듬고 보듬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우리 사는 이 땅에서, 우리 어깨동무하고 어우러지는 이 삶터에서.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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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살려쓰기, #한글, #우리말, #우리 말,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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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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