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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실상을 사실대로 보고

 

.. 존재의 실상을 사실대로 보고, 그 진리에 맞게 제대로 실천하는가 하지 않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  《도법-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불광출판사,2008) 51쪽

 

 “존재(存在)의 실상(實相)”은 “우리 참모습”이나 “사람과 사물과 세상이 어떤 모습인가”로 다듬어 봅니다. ‘진리(眞理)’는 ‘참’이나 ‘참된 길’로 손질해 줍니다. ‘실천(實踐)하는가’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몸으로 옮기는가’나 ‘펼쳐 보이는가’로 손보면 한결 낫습니다.

 

 ┌ 사실(史實) : 역사에 실제로 있는 사실(事實)

 │   - 유물보다도 귀중한 사실의 단서가 되어 줄 수 있었다

 ├ 사실(邪實) : [한방] 사기(邪氣)가 실함. 곧 병의 기운이 셈을 이른다

 ├ 사실(私室) : 개인의 방

 │   - 노부인은 사무실을 지나쳐 거기 붙은 사실로 그를 인도했다

 ├ 사실(事實)

 │  (1)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

 │   - 사실을 밝히다 / 사실로 나타나다 / 이 작품은 특정 사실과 관련 없다 /

 │     그는 피해자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  (2) [법] 일정한 법률 효과를 발생, 변경, 소멸시키는 원인이 되는 사물의 관계

 │  (3) [철학] 시간과 공간 안에서 볼 수 있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나 현상

 │  (4) [부사] = 사실상

 │   - 사실 나는 그를 사랑한다 / 사실 그 사건은 비참한 것이었지만

 ├ 사실(査實) : 사실을 조사하여 알아봄

 ├ 사실(寫實) :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려 냄

 │   - 사실 묘사

 │

 ├ 사실대로 보고

 │→ 있는 대로 보고

 │→ 있는 그대로 보고

 │→ 그 모습 그대로 보고

 │→ 그 모습대로 보고

 │→ 그대로 보고

 │→ 꾸밈없이 보고

 │→ 오롯이 보고

 └ …

 

 국어사전에 여섯 가지로 실려 있는 한자말 ‘사실’인데, 첫 번째 낱말인 ‘史實’은 “역사에 실제로 있는 사실(事實)”이라고 풀이가 달립니다. 그런데 ‘사실(事實)’ 풀이를 보면,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되면, 한자말 ‘史實’ 풀이는 “역사에 실제로 있는 실제로 있었던 일”인 소리가 되어 버립니다.

 

 제아무리 국어사전 낱말풀이가 돌림풀이(순환정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하지만, 이런 겹치기 풀이를 해 버리면 어찌 될까요. 국어사전에서 ‘史實’이라는 한자말을 찾아보는 사람은 이 낱말이 무슨 뜻인지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요.

 

 생각해 보면, 제대로 풀이를 할 수 없는 낱말은 우리가 쓸 만한 낱말이 아니곤 합니다. 입으로 말했을 때 누구나 곧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한편, 뜻풀이를 손쉽게 달 수 있는 낱말이 우리가 쓸 만한 낱말입니다. 지식인들이 머리를 굴려서 이래저래 갈래를 나누고 뜻을 가르는 낱말은 우리가 두루 쓰기에는 그다지 안 좋은 낱말이라 할 수 있어요.

 

 한의학에서 쓰는 ‘邪實’은 한의학사전으로 옮겨야 합니다. “개인의 방”을 가리킨다는 ‘私室’은, 소설을 쓰는 박완서 님 글에서 보기글을 따서 국어사전에 실어 놓습니다. 이 한자말은 소설에도 쓰일 만큼 사랑을 받는다고 할지 모릅니다만, 글쎄요, “내 방”이나 “자기 방”이나 “개인 방”이라고 하면 되지, 굳이 ‘私室’이라고 따로 한자로 말을 지어서 써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 사실을 밝히다 → 참을 밝히다

 ├ 사실로 나타나다 → 참으로 나타나다 / 눈앞에 나타나다

 ├ 특정 사실과 관련 없다 → 어떤 일하고도 얽히지 않는다

 └ 사실과 다르다 → 참과 다르다 / 거짓이다

 

 다음으로 ‘査實’이라는 한자말과 ‘寫實’이라는 한자말을 생각해 봅니다. ‘査實’ 말풀이에도 “사실을 조사하여 알아봄”이라고 되어 있어서 ‘사실’이 또 나옵니다. 역사를 이야기할 때 쓴다는 한자말 ‘史實’ 풀이를 달면서 “역사에 실제로 있는 사실(事實)”이라고 적더니, 왜 ‘査實’ 풀이에서는 ‘事實’을 한글로 ‘사실’이라고만 적었을까요. ‘史實’을 풀이할 때에는 ‘사실’이 어떤 한자로 되어 있는 낱말인지 헷갈리고, ‘査實’을 풀이할 때에는 헷갈리지 않기 때문일는지요.

 

 ┌ 사실(事實) (1)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

 └ 사실(寫實) :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려 냄

 

 마지막으로,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려 냄”을 가리키는 ‘寫實’을 생각합니다. 이 한자말을 풀이할 때에는 “사물을 사실대로 그려 냄”으로 적지 않습니다. 앞서 ‘史實’과 ‘査實’ 풀이를 할 때에는 ‘事實’이라는 한자말을 넣어서 풀이말을 달았는데, 이 ‘寫實’은 “있는 그대로”라는 말을 넣습니다.

 

 ┌[고쳐쓴 새 풀이]

 ├ 사실(事實) (1) 참말로 있었던 일이나 눈앞에 벌어지는 일

 ├ 사실(史實) : 역사에 참말로 있었던 일

 └ 사실(査實) :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있는 그대로 알아봄

 

 가만히 따져 보면, ‘事實’이든 ‘史實’이든 ‘査實’이든 그다지 쓸모가 없다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굳이 이런 한자말을 안 써도 넉넉하다고 느낍니다. 다만, 꼭 이 한자말들을 써야겠다면, 국어사전 낱말풀이를 올바르게 달아야지요. 올바르지 않게 뜻풀이를 달아 놓고서 이런 한자말을 쓰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써야 하는 낱말이면 제대로 쓸 수 있도록 제대로 낱말풀이를 해야 합니다. 쓸 만하지 않으나 굳이 집어넣어서 한자말 숫자를 불리려고 했다면, 이러한 낡은 생각은 조용히 접어 놓고, 참다운 우리 말과 글을 살리는 쪽으로 마음을 쏟고 힘을 기울여 주면 좋겠습니다.

 

 있는 그대로 우리 말을 생각해 주면 됩니다. 꾸밈없이 우리 말을 바라보아 주면 됩니다. 오롯이 우리 말을 껴안아 주면 됩니다. 그 모습 그대로 우리 말을 아끼면 됩니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닙니다. 참은 참대로 살리고 거짓은 거짓대로 떨쳐 내면서, 우리 삶을 북돋우고 우리 얼을 살찌우며 우리 넋을 다독일 수 있는 국어사전이 되고 국어학자가 되며 국어책이 되어야 합니다.

 

 

ㄴ. 없어 보이는 건 사실이다

 

.. 1동이 다소 멍청해 보이고 생각이 없어 보이는 건 사실이다 ..  《김려령-요란 요란 푸른아파트》(문학과지성사,2008) 10쪽

 

 ‘다소(多少)’는 ‘적잖이’나 ‘어느 만큼’으로 다듬고, ‘보이는 건’은 ‘보이기는’이나 ‘보이는 일은’으로 다듬습니다.

 

 ┌ 생각이 없어 보이는 건 사실이다

 │

 │→ 생각이 없어 보이기는 하다

 │→ 생각이 없어 보이곤 한다

 │→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말은 틀리지 않다

 │→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말은 맞다

 └ …

 

 어떤 일을 놓고 “그건 사실이야” 하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전부터 으레 써 오던 말투를 떠올려 보면, “그건 그래”라든지 “그건 그렇지”라든지 “그건 맞아”라든지 “그건 옳아”를 같은 자리에서 쓰곤 했습니다. “그건 그렇기는 해”라든지 “그건 그렇단 말이야”라 하고도 말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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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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