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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퇴근하자마자 한때 다정한 이웃으로 살았던 지인의 딸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산기슭에 자리한 조그마한 교회당에 갔습니다. 교회당 앞뜰에서는 예식에 앞서 피로연을 먼저 열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거기서 네 명의 제자아이들이 만났습니다. 그들은 교복 위에 앞치마 같은 것을 두르고 손님들이 먹고 난 음식을 치우고 있었습니다. 저는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서 이렇게 말을 건넸습니다.

"너희들 지금 여기서 알바하는 거야?"
"아, 예."
"일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인다."
"고맙습니다."

아이들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한 말만은 아니었습니다.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평소 학교에서 보아오던 모습과는 사뭇 달라 보였습니다. 저를 대하는 그들의 공손한 태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워낙 장난을 좋아해서 그랬을 테지만, 가끔은 선생인 저를 친구인양 버릇없이 굴기도 했던 아이들이었지요.  

결혼 예식이 모두 끝나고 교회당을 나오는데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상하다 싶어 눈을 사방으로 돌려봐도 아이들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얼굴도 보지 못하고 가게 되나 싶었는데 다행히도 아이들은 교회당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울컥 반가운 마음이 솟구쳐 아이들에게 빨리 걸어갔습니다.  

"여기서 쉬고 있었구나?"
"예."
"식을 할 때 밥을 먹지 그랬니?"
"예. 저희들 밥 먹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여기서 일하게 되었니?"
"인터넷에서요.”
"아, 그랬구나. 그럼 학교에서 보자. 주말 잘 보내고."
"선생님도 주말 잘 보내세요."

이런 말들이 오고갈 때도 아이들은 사뭇 공손하고 진지한 표정이었습니다. 그것은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학교에서는 스치듯 가볍게만 여겼던 그들의 존재감이 한층 더 커 보인 까닭이었지요. 아무리 돈을 받고 하는 일이지만 맡은 일에 대하여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대견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철없는 아이들로만 생각했던 것에 대하여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문득 회한처럼 이런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그동안 난 아이들에게 얼마나 겸손하지 못한 교사였나?'

겸손이란 남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자기를 낮추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높은 곳에 있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높은 곳에 있다는 인식이 있어야 자신을 낮출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물론 이 말은 일종의 궤변일 수 있습니다. 진정 자기를 낮출 줄 아는 진정한 겸손함을 지닌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는 말이지요. 하지만 저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제 눈높이를 아이들에게 맞추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것이 겸손함이라면 저는 그런대로 겸손한 교사였습니다. 하지만 좀 더 따져볼 일입니다. 가령, 아이들에게 눈높이를 맞추려고 한 것은 제가 아이들보다 존재감이 크거나 높은 곳에 있다는 인식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결국 저는 아이들보다 조금은 더 나은 인간이라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자기를 남보다 높게 생각하는 사람을 겸손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저는 전문계(실업계) 학교에서 근무하다보니 비교적 인간적인 조건이나 생활환경이 열악한 아이들을 자주 만납니다. 그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자기를 가꿀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사로서의 제 임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제가 아이들보다 높은 곳에 있다는 인식에서 온 교만한 생각일 가능성이 큽니다. 

아이들이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지 그들의 존재를 귀히 여기는 것, 그것이 참된 교육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 지인의 딸 결혼식 덕분에, 그리고 그곳에서 뜻밖에 만난 멋진 제자녀석들 덕분에  교사로서 한 뼘 더 성장한 느낌입니다. 조금씩 자란다는 것은 참 고맙고 좋은 일입니다.


#교사#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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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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