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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예쁘장한 아이가
손톱깎이로 벌을 토막 내면서

예쁜 웃음을 흘리고 있다.


화들짝 놀란 나는

죄 없는 벌에게 무슨 짓이냐고

너도 한 번 당해보라고

손등을 가볍게 꼬집어주었다.


그랬더니 

살벌한 아이 왈,

-내가 벌보다 못하단 말예요?


장난삼아 벌을 죽인 벌로  

손등을 가볍게 꼬집힌 것이

그렇게도 억울했을까?


아이는 분이 풀리지 않은 얼굴로 

수업시간 내내

나를 쏘아보고 또 쏘아보았다.


아이의 싸늘한 눈빛을 받으며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인간이 벌보다 나은 게 뭐지?

-자작시, ‘살벌한 아이’

 

며칠 전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을 그려본 것입니다. 이 시를 그 ‘살벌한 아이’에게 보여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합니다. 한 편 생각해보면 억울해 하는 아이의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아이는 벌을 토막 내어 죽였고, 저는 아이의 손등을 가볍게 꼬집어 주었을 뿐이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자기를 벌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했다고 오해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우리는 흔히 ‘벌레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말을 쓰곤 합니다. 인간성이 나쁘고 이웃에게 해가 되는 사람을 그렇게 부르고 있지요. 하지만 이것은 인간을 모욕하는 말이기 이전에 벌레를 모욕하는 말입니다. 땅 속을 기어 다니는 지렁이가 인간에게 이로운 존재라는 것은 다들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그런데도 ‘벌레’라는 말을 해롭고 가치 없는 인간에 대한 은유로 사용하고 있으니 벌레의 처지에서는 이보다 더 억울한 일도 없겠지요.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며,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특권을 지닌 선택받은 종이라는 일반의 상식도 인간 중심의 생각일 수 있습니다. 얼굴이 예쁘장한 아이가 예쁜 웃음을 흘리며 손톱깎이로 죄 없는 벌의 몸뚱이를 토막 낼 수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인간 중심의 사고 때문일 지도 모릅니다. 


지리산 주변 산기슭의 옛길을 묵언으로 걷는 생명평화결사에서 주관한 프로그램에 다녀온 한 시인이 인터넷 문학카페에 남긴 글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이런 내용이었지요.  

 

-묵언은 물론 말을 하지 않는 것인데 그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은 행위였다. 우선 말을 하는 행위는 나를 드러내는 것이며, 말하는 동안은 내가 중심에 있고 말을 듣는 타자는 나의 대상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말을 하지 않으면 주변의 모든 소리들이 중심이 되고 나는 주변에 놓이는 하나의 대상이 된다. 그러하니 말없이 숲길을 걷는 것은 내 스스로를 내려놓고 풀벌레며 새며 짐승들이며 바람이며 계곡물이며 모든 소리의 주인공인 자연을 중심에 놓아보자는 의도인 것이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동안 인간은 자연을 개발의 대상이나 착취의 대상으로만 생각했지 내 생명의 동반자라는 의식은 거의 무시해왔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면 자연은 생명의 동반자만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고 생명 그 자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로 하여금 이런 인간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자연에게 감사하고 함께 상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벌과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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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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