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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연못. 고작 두 평도 채 되지 못하나 숱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준다.
 우리 집 연못. 고작 두 평도 채 되지 못하나 숱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준다.
ⓒ 정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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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찾아왔다. 울산의 아파트에서 아래윗집으로 살며 매우 가깝게 지낸 이웃인데, 그는 사실 나보다 훨씬 전부터 시골살이에 관심 많았다. 그래서 빨리 옮길 줄 알았는데 그의 아내가 하도 주저하는 바람에 아직껏 마음에만 넣어둘 뿐 실천을 못하고 있다. 그런 까닭인지 우리 집에 자주 들른다.

이번에는 오자마자 가장 먼저 연못으로 갔다. 자기가 시골에 집을 지으면 가장 공들여 가꿀 곳이 연못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기에 충분히 짐작할 일이었다. 아니 그 사람뿐만 아니라 시골에 집을 지으면 누구나 연못을 만들고 싶으리라. 연꽃, 부레옥잠, 붓꽃, 창포 등의 수생식물은 꽃이 피어 있는 기간은 짧으나 대신에 그 아름다움은 도드라져 그저 꽃만 봐도 편안해지기에.

그런데 저쪽에서 깜짝 놀라 지르는 외마디 소리가 들려왔다. 연못 쪽에서 들리는 외마디소리라면…. 짐작이 갔다. 역시 뱀이었다. 유혈목이 한 놈이 어슬렁거리며 산 위로 올라가는 게 보였다. 아마 놀라기는 손님보다 녀석이 더 놀랐을 게다. 편안한 휴식처(?)에서 쉬고 있는데 불청객이 찾아왔으니.

시골살이? 시골에 사는 사람에게는 낭만이 아니라 현실이 된다

시골살이는 꽤 낭만적이다.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 봄에는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여름에는 …, 가을에는…, 겨울에는…. 그리고 새소리를 들으며 잠을 깨고, 바람에 풀잎 스치는 소리를 들으며 논길을 걷고, 매미소리를 들으며 낮잠을 즐기며,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추억을 되살린다.

그뿐만 아니라 아침 산책길에 개울로 가 얼굴을 씻고 거기 입을 대고 물을 그냥 마신다. 그러면 내장마저 세척되는 느낌이다. 뿐이랴, 낮에는 온통 초록빛 자연 속에 눈을 담그고, 밤에는 또 어떤가. 사람의 수만큼 많은 별을 헤고, 우윳빛보다 더 하얀 은하수를 보며, 운 좋으면 반딧불이를 볼 수도 있다.

허나 실제로 시골에 사는 사람에게는 낭만이 아니라 현실이 된다. 연못의 예를 들어보자. 마당 한가운데 연못이 있어 거기에 물레방아가 돌아간다면 좋을 테고, 혹 조금 더 넓은 면적이 허락돼 가운데를 건너갈 수 있는 구름다리를 놓는다면 금상첨화.

테라스 위에 붙은 말벌들. 재작년 녀석들에게 쏘여 응급실에 가야 했다.
 테라스 위에 붙은 말벌들. 재작년 녀석들에게 쏘여 응급실에 가야 했다.
ⓒ 정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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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연못을 만들면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게 있으니 바로 뱀이다. 연못 속에 먹이인 개구리가 있고, 주변의 돌은 허물 벗을 때 유용하게 쓰이고, 언제든지 몸을 담글 물이 있으니 얼마나 좋은 놀이터인가.

개울물은 그냥 마셔도 된다. 일급수란 말을 하지 않아도 산 위에서 도라지나 더덕이 우려 나고, 노루와 고라니가 입을 헹군 흔적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여름에 도시인들이 몰려왔다간 뒤에는 다르다. 일급수 아닌 특급수가 흐르는 계곡도 온갖 쓰레기가 나뒹구는 오물처리장으로 바뀌니.

늘 마을을 지키는 까치와 박새, 반 년만 머물다 가는 제비도, 그 비상하는 모습과 지저귀는 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그러나 까치는 농산물을 작살내고, 박새와 제비는 오래된 초가나 기와집에는 몰라도 새로 지은 집에 보금자리를 꾸며 이내 헌집으로 만든다. 이뿐만 아니라 똥이 흐른 그곳은 구멍이 나거나 벌레가 꾀고….

마을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들.
 마을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들.
ⓒ 정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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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쇠똥구리와 하늘소와 반딧불이와 매미가 있는 반면 파리, 모기, 말벌, 풀쐐기도 많다. 풀밭에 가 잠시 들렀다 나오면 어느새 풀쐐기란 놈이 쏘고, 잠시라도 문을 열어놓으면 번개같이 들어와 벽에 새까맣게 앉는 파리, 낮에는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말벌, 해 질 녘 기회만 있으면 모기란 놈이 피 뽑으러 달려들고….

그리고 시골인심을 이야기한다. 예전에 비해 못하다지만 아직도 시골 인심은 도시에 비할 바 아니다. 그러나 가끔씩 이해 안 되는 부분에서 고집을 부릴 때도 있고, 배타적인 면도 남아 있어 그 속에 동화되기도 쉽지 않다.

귀농을 하든, 귀촌을 하든 시골살이 만만치 않다

그런데도 쉽게 이야기한다. 시골에 가 살고 싶다고. 형편만 되면 시골에 가고 싶다고. 그리고 은퇴 뒤에는 꼭 시골에 집 짓고 살겠다고. 다행한 건 그나마 요새는 '하다하다 안 되면 시골 가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음이다.

귀농(농사짓기 위해 시골로 돌아옴)을 하든, 귀촌(단지 시골에 살기 위해 들어옴)을 하든 시골살이는 만만치 않다. 나는 귀농이 아니라 귀촌이기에 귀농에 대한 조언을 해주지 못한다. 대신 귀촌을 택하는 이들에게는 제법 아는 체한다. 그래서 시골에 와 살고 싶다는 이들과 이렇게 대화한다.

달내마을 전경
 달내마을 전경
ⓒ 정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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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사는 재미 어떻습니까?"
"매우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정말입니까?"
"네."

"어떤 점이 그리도 행복합니까?"
"행복은 누가 주는 게 아니라 자기가 만들어가는 거라는 걸 인정한다면, 그런 점에서 그래도 만들어 갈 수 있는 희망이 아직은 많은 곳이 시골이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는요?"
"뱀을 보고도 대수롭지 않게 지나칠 수 있고, 도시인들이 놓고 간 오물을 거리낌없이 치울 수 있고, 제비똥을 향기롭게는 몰라도 더럽게 보지만 않고, 모기에게 물려도 한 번 쓱쓱 문지르는 걸로 끝낼 수 있고, 어른들에게 내가 먼저 고개를 숙여 다가갈 수 있다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저는 경주시 양북면에서 주말주택으로 10년 간, 양남면에서 3년째 살고 있습니다.



태그:#시골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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