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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밭마을 이 사장댁에서 자유롭게 자라고 있는 닭들.
ⓒ 정판수
유정란을 구하려고 달내마을 옆동네인 늘밭마을에서 닭을 키우는 이 사장댁을 찾았다. 이 사장님은 나보다 전원생활 선배라 평소에 시골생활에 관해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에 폐계가 화제에 올랐다.

폐계(廢鷄)는 알을 낳지 못하고 암탉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닭을 일컫는 말이다. 이 말의 상대어를 영계(嬰鷄)라 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폐계와 영계는 완연히 차이가 있다. 당장 가격 면에서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영계보다 폐계가 헐해도 사람들은 영계를 살지언정 폐계를 잘 사지 않는다.

이런 폐계에게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폐계는 생산력이 없다. 알을 낳지 못하기 때문에 한 켠에 나앉아 있어 폐계라 불리니 당연히 생산력이 없다. 아니 동물의 세계에서 늙어도 생산력이 왕성한 게 있을까?

둘째, 폐계는 그 고기가 무척 질기다. 어느 동물이나 그렇지만 늙은 가축의 고기는 원래 질기다. 예부터 질기다는 걸 관용적으로 표현할 때 ‘고래 심줄(힘줄) 같다’는 말을 쓰는데, 그때의 고래 심줄도 늙은 고래의 힘줄에서 왔다 하니….

셋째, 폐계는 질투심이 많다. 폐계가 질투심이 많다는 말은 키워보지 않은 이라면 잘 이해가 안 가리라. 그러나 닭을 전문적으로 키워본 사람에게 물어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영계가 알을 낳으면 ‘꼬꼬댁’ 하고 소리를 내는데, 그럴 때마다 폐계가 달려들어 벼슬을 마구 쪼아댄다는 것이다.

성년이 돼 어느 직장이나 단체에서 일한 지 20년이 넘을 때, 닭으로 치자면 영락없는 폐계다. 그리고 명퇴의 철퇴를 의식하게 되는 때가 바로 이때다. 그런 점에서 나도 폐계다. 나이 들었다 하여 폐계 취급받는다면 기분 나쁜 이들이 많을 테지만 폐계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단지(?) 나이 많다고 폐계 취급을 받으면 항변을 할 이가 많을 것이다. 몸은 늙었지만 마음은 청춘이라고 자부하는 이들과 늘 웃으며 즐겁게 사는 이들이라면 그렇게 말해도 무방하리라. 그렇지만 역시 나이 많은 이들 가운데서 폐계를 많이 본다.

위에 언급한 특징 세 가지를 갖고 판별해 보자.

먼저 폐계 인간에게 생산력이 없다는 건 자식 생산력이 없다는 게 아니라 새로운 걸 만들어내려 하지 않는다는 즉 지식 생산력이 없다는 점에서 통한다. 첨단정보기기가 나오면 배우려 들기보다 두려움을 느껴 접근을 포기할 때가 더 많다.

다음으로, 질기다는 건 고집이 세다는 걸로 풀이할 수 있다. 사람에게 고집은 물론 필요하다.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한 인물들은 모두 다 그 나름의 고집이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폐계들에게 고집은 그런 고집이 아니라 소위 똥고집이다.

셋째로, 질투심이 강하다는 데는 다른 설명이 필요 없으리라. 우선 남이 잘 되는 걸 못 봐준다. 동료가 잘 되거나 좋은 일이 있거나 칭찬 들을 만한 일이 있을 때면 어느새 끼어들어 험담을 늘어놓는다. 특히 진급에 있어서 경쟁하는 상대라면 더 말할 게 있을까?

그러면 폐계는 폐계로서 끝을 맺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역시 방법은 있다. 외부의 충격으로 바뀔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의 경우는 이와 다를 것이다. 외부의 충격보다는 스스로의 의지가 더 중요하기에.

먼저 생산력이 없는 닭에게 며칠 먹이를 주지 않으면 처음에는 털이 뭉실뭉실 빠지면서 비실비실하다가 죽음 직전에 이른다고 한다. 거의 아사 직전에 이르면 그때부터 서서히 먹이를 먹이는데, 그러면 털이 새로 나면서 알도 낳는 경우가 있다 한다.

폐계 인간이 영계 인간이 되는 비법은 사람을 닭처럼 굶긴다고 하여 바뀔 게 아니니 역시 스스로의 의지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지식의 습득에 두려움이 있을수록 다시 새로 배워야 한다. 경우에 따라선 젊은이보다 더 배워야 한다. 이해력이 뒤떨어지는 이가 새로 태어나기 위해선 그 방법밖에 없다.

다음으로 폐계의 질긴 고기를 부드럽게 만들려면 그것에도 방법이 있다. 영계보다 좀더 오랜 시간 삶으면 된다. 제대로 시간을 들여 푹 삶은 폐계의 질긴 고기는 영계 못지않은 부드러움을 얻을 수 있다.

폐계 인간은 대부분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질긴 고집을 갖고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가 없어도 다 잘 돌아간다. 오히려 어떤 경우는 없는 게 더 나을 경우가 있다. 내 의견보다 남의 의견을 경청하는 자세가 더욱 필요할 때가 바로 이때다.

마지막으로 질투심 강한 폐계는 우리에 같은 폐계들만 놓아두면 질투심이 없어지지만 대신에 오히려 수명이 단축된다고 한다. 긴장감이 없으니까 생동감도 떨어진다는 것. 그래선지 미꾸라지를 키우는 데서는 일부러 그것들을 잡아먹는 가물치를 한두 마리 넣어둔다고 한다. 그러면 살기 위하여 몸부림치게 되어 훨씬 토실토실한 미꾸라지가 된다는 것.

직장에서 늙은이(?)들은 늙은이끼리만 어울릴게 아니라 팽팽한 젊은이와 함께 어울려야 한다. 아니면 젊은 사람이 많은 모임에 일부러라도 들어가 활동해야 한다. 내가 줄 것도 있겠지만 얻을 게 더 많다.

이제 우리가 폐계가 되지 않고 다시 부활할 때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 ‘달내마을 이야기’에 나오는 ‘달내마을’은 경주시 양남면 월천마을을 달 ‘月’과 내 ‘川’으로 우리말로 풀어 썼습니다. 예전에는 이곳이 ‘다래골(다래가 많이 나오는 마을)’ 또는 ‘달내골’로 불리어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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