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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이용해 글을 쓰는 사람의 입장에선 인터넷에서 필요한 정보를 얻을 경우가 많은데, 간혹 그 정보가 잘못돼 낭패를 볼 경우가 있다. 이런 잘못된 정보는 글을 올리는 이들에게 갖추어야 할 양식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것보다 검증 안 된 정보를 여기저기 옮기다 보니 그런 일이 일어난다.

사람에게는 각자 나름의 자신 있는 분야가 있을 것이다. 전공한 분야든지 어떤 이유로 해서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됐다든지 하여 얻은 정보를 올리면 분명 많은 이에게 도움을 준다. 그런데 그 지식이 참인 줄 알고 믿고 그에 따라 실천했다가 쓰라린 실패를 했을 때 그 당사자는 굉장히 마음이 아프다.

어쩌면 인터넷에 지식 정보를 올리는 이들은 대단히 인심 좋은 이들일 게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으로 그치지 않고 남을 도와주려는 마음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이 앞서다 보니 제대로 검증 안 된 잘못된 지식을 올려놓는다면 그 엉터리 지식이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 나가는 것 또한 큰 문제를 안게 된다.

▲ 약(식초 희석액)을 뿌리기 전 잘 자라던 고추
ⓒ 정판수
시골에서 본격적으로 농사지으려는 사람은 물론 조그만 텃밭이라도 가꾸려는 사람이라면 농약을 안 치고 농사짓고 싶으리라. 약을 치지 않고도 수확이 괜찮고 품질도 좋다면 그걸 마다할 사람이 뉘 있으랴.

약을 전혀 칠 필요가 없는 상추와 오이, 감자, 고구마 등은 걱정할 필요가 없으나 다른 건 심각하다. 배추와 무, 토마토, 고추 등 텃밭에 많이 심는 작물은 약 치지 않으면 수확이 반도 되지 않고 알차지도 않다. 작년 바로 우리 집에서 그랬다.

고추를 심어 붉은 고추 될 때까지 키워 고춧가루를 얻을 생각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쉬엄쉬엄 풋고추만 따다 먹어도 된다고 싶어 백 그루 가까이 심었다. 그런데 … 처음 일군 밭에는 병충해가 잘 달려들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게 잘못이었다. 며칠 간 잘 따먹었다 싶었는데 잎이 누렇게 변하는 병이 들면서 나중엔 하나도 못 먹게 돼 버려야 했다.

올해 고추를 심느냐 마느냐 갈등하다가 한 번만 더 약을 치지 않고 키워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유기농 하는 이들에는 분명 병충해가 오더라도 일반 농약을 치진 않는 다른 방법이 있으리라 여겨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몇 가지 방법이 나와 있었다.

▲ 약(식초 희석액)을 뿌린 다음날 모습
ⓒ 정판수
전문적으로 유기농을 하시는 분들은 사람에게 해롭지 않은 약을 나름대로 만들어 쓰고 있고, 또 비싸기는 하지만 유기농 농약이란 이름의 약도 나와 있었고, 목초액을 이용하여 만든다든지 하는 다양한 방법이 소개돼 있었다. 그 중에서 나의 눈을 사로잡은 건 바로 식초 요법이었다.

황토로 지장수를 만든 뒤 100% 빙초산을 사서 섞으면 된다는 것. 그리고 지장수와 빙초산의 비율은 10:1로 하라는 것. 가장 돈 안 들면서 쉬 만들 수 있는 이 방법이 눈에 들어왔다. 황토야 전에 구해 둔 것이 있고 지장수도 만든 경험이 있으니 빙초산만 사서 섞으면 되니 얼마나 간단한가.

며칠 전 고추에 병이 생기지 않는다는 비장의 약(?)을 만든 뒤 그대로 실천에 옮기기 전에 두 그루에 먼저 실험을 했다. 내일 아침까지 아무렇지 않으면 다 뿌리려고. 그런데 곁에서 풀 뽑고 있던 아내가 "식초를 묽게 한 건데 무슨 일 있을라고" 하는 말에 그렇다 싶어 다시 모든 고추에 뿌렸다. 그리고 기왕 뿌릴 바에야 대충 주는 것보다 듬뿍 주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그렇게 했다. 그런데….

▲ 약(식초 희석액)을 뿌린 사흘째 되던 날 모습
ⓒ 정판수
다음날 아침, 밭에 들렀다가 눈을 의심해야 했다. 이미 잎이 타 버려 누렇게 뜬 것부터 꺾어지기 직전에 이른 것까지 하여 대부분의 고추가 원래의 빛깔을 잃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아침에는 더욱 비참했다. 완전히 꺾어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 절반쯤 되었다.

절로 입에서 욕이 나왔다. 엉터리 정보를 올린 이가 누군지 탓하면서. 그런데 날이 지나면서 그 정보를 올린 이의 잘못을 탓하기 전에 검증하지 않은 내게 더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농사는 요령이 통하지 않는다. 꾸준한 노력과 정성만이 알찬 수확을 보장할 뿐이다. 그래서 뿌린 만큼 거둔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는가. 그런데 나는 편한 것만 찾다가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만약 병충해를 그런 쉬운 방법으로 일거에 물리칠 수 있다면 왜 다들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진지한 고민 없이 쉬운 길을 찾으려 했다가 낭패를 본 것이다. '세상에 쉬운 길은 없다'란 말이 오늘따라 유난히 가슴 깊이 와 박힌다.

태그:#고추, #달내일기, #농사,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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