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요즘 갖다 파는 소쿠리에 담긴 오들개. 1kg에 5000원 정도로 팔리고 있음
요즘 갖다 파는 소쿠리에 담긴 오들개. 1kg에 5000원 정도로 팔리고 있음 ⓒ 정판수
오늘(4일) 출근길 내 차 트렁크에는 오디 23kg이 실렸다. 한창 오들개(오디) 철이라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주문에 맞춰 배달하여야 했기 때문이다. 저번 주 토요일(2일)에도 10kg 실었고, 아마 내일도 그 정도 싣고 가야 하리라.

눈치 챘겠지만 우리집에서 나는 오들개가 아니라 마을 어르신들이 애써 따 모은 오들개를 직장동료들이나 이전 아파트 사람들에게 갖다 판다. 이렇게 우리 달내마을에서 나는 농산물 등을 대신 팔아준 지도 2년쯤 되는데 그 종류도 가지가지다.

이른봄부터 헤아려보자. 눈과 얼음이 녹자마자 할머니들께서 온 산을 돌아다니며 채취한 산나물이 가장 먼저고, 요즈음은 앞서 이야기한 대로 오들개다. 그리고 한 보름쯤이면 양파, 그에 조금 더 있으면 감자….

그러나 역시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팔아줄 때는 가을이다. 지난해부터 수매 못하고 남은 쌀과 고구마, 고추, 그리고 우리 마을의 지명을 낳은 다래(달내마을이란 이름 외에도 예전에는 다래가 많이 나온다고 다랫골이란 이름으로 불림)도 판매 품목이다.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달내마을 농산물

이른봄 동료들에게 갖다 판 산나물. 모두 우리 마을에서 한 시간 더 깊은 산 속으로 걸어들어가 직접 뜯어온 산나물
이른봄 동료들에게 갖다 판 산나물. 모두 우리 마을에서 한 시간 더 깊은 산 속으로 걸어들어가 직접 뜯어온 산나물 ⓒ 정판수
이렇게 배달하면서 웃지못할 일도 생겼다. 가을날 하루는 마을 할머니 한 분이 우리집에 뭘 들고 와, "이것도 팔 수 있는가 모르겠네"하시며 넌지시 내미는데 보니 벼메뚜기 볶은 게 아닌가.

어릴 때야 나도 메뚜기를 많이 잡았고, 또 볶아먹기도 했지만 40년이 지난 지금 보니 사실 조금 징그러웠다. 내가 징그럽다면 다른 이들은? 그래도 그 할머니는 밭 조금 있고 논도 없어 그런 걸로 생활비를 마련하던 터라 들고 갔다.

잘 볶아 간장 넣고 조려 밥반찬이나 술안주로 적당할 것 같았지만 역시 팔리지 않았다. 가격은 한 되 3만원으로, 잡은 노력에 비하면 그리 비싼 편이 아니었는데도…. 결국은 도로 갖고 갈 수 없어 음식점 하는 누나 집에 내가 잡은 거라며 갖다 주고 내 돈을 대신 주었다.

지난해 가을 갖다 판 고구마. 우리 마을에는 고구마의 수확이 적어 파는 건 얼마 안 됨
지난해 가을 갖다 판 고구마. 우리 마을에는 고구마의 수확이 적어 파는 건 얼마 안 됨 ⓒ 정판수
요즘 사람들은 농산물을 마음 놓고 먹을 수 없다고 한다. 농약을 많이 치거나, 또 먹거리에 장난(?)을 많이 친다면서. 그 말이 어쩌면 사실일지 모른다. 때깔 좋은 농산물은 십중팔구 약을 떡칠했고, 또 산나물이라 하더라도 산지에서 난 것이 아닌 중국산이거나 재배한 나물이 대부분이니.

그러나 다행히 우리 달내마을 농산물은 짓고 만들고 얻는 과정을 바로 옆에서 내가 지켜보았으니 믿을 수 있다. 특히 우리집을 방문한 이들이 마을에서 어르신들께서 일하는 장면을 보고는 그렇게 말한다. 믿음이 간다고.

"할아버지·할머니의 따스한 정도 팝니다"

작년 달내마을의 가을걷이 모습
작년 달내마을의 가을걷이 모습 ⓒ 정판수
지난해 우리집에 들른 동료 한 사람이 아랫집 산음할머니께서 고추 하나하나를 마른 수건으로 곱게 닦는 걸 보고 그 즉시 사달라고 했다. 물론 이곳 고추밭에도 유기농이 아니기에 약을 친다. 해도 산골에 가까운 달내마을은 다른 마을과 떨어져 있어 병충해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니 다른 곳보다 농약을 훨씬 덜 친다.

지난해에는 특히 병충해가 들지 않아 우리 마을에서 논에 약을 한 번 친 집이 세 가구, 한 번도 치지 않은 집이 여섯 가구였다. 그래서 유기농이란 이름을 붙이진 않았지만 그에 다름없는 품질 좋은 결과물을 얻었다. 덕분에 벼메뚜기가 엄청 많아 과외의 소득도 올렸고.

지난해 우리 부부가 잡은 벼메뚜기. 판매한 벼메뚜기는 못 찍었음
지난해 우리 부부가 잡은 벼메뚜기. 판매한 벼메뚜기는 못 찍었음 ⓒ 정판수
그러다보니 이제 제법 단골도 생겼다. 그래서 내가 갖고 온 물건이라면 묻지 않고 사들이는 사람, 그리고 가끔씩 쌀이나 고추를 구할 수 없느냐고 문의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솔직히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한편으론 뿌듯한 생각도 든다. 요즘 달내마을 농산물을 도시 아는 이들에게 배달할 때마다 이런 말을 덧붙인다.

"제가 파는 건 농산물만이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땀과 더불어 그분들의 따스한 정도 팝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