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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시오. 부인."

아찬 김무력은 임지에서 오래간만에 서라벌로 돌아왔는데도 자신을 맞이하러 나오지도 않은 아내 화안공주에게 섭섭함을 드러내었다.

"내 부부의 연을 맺은 후 임지로 떠나 남편으로서 정을 쌓지 못했다고는 하나 마중조차 나오지 않음은 무엇이오?"

화안공주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김무력은 그런 화안공주를 잡고 이것저것을 따질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자리를 박차고 나온 김무력은 반나절이 지나 식사 때가 되어도 화안공주의 얼굴조차 보지 않았다. 어차피 신라와 남부여의 사이를 고려하여 맺은 정약결혼이 온전히 유지되리라 김무력은 생각도 하지 않은 터였다.

더구나 김무력의 신분을 왕의 셋째 아들로 속여 알린 것이 화안공주를 비롯해 그를 따라온 남부여 사람들의 심기를 묘하게 자극한 탓도 있었다. 김무력은 신라에 복속된 금관가야 구형왕의 셋째아들이었지만 신라에서는 당당히 왕족의 일원으로 대우받는 신분이었다. 그럼에도 남부여에서는 애초에 신라에서 신분에 대해 자세한 말이 없었다는 이유로 이를 탐탁찮게 여겼다. 이에 자존심이 상하기는 김무력도 마찬가지였다.

'괘씸한지고.'

김무력은 자신을 정략결혼의 희생양으로 만든 신라왕실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신라왕실의 대우가 결코 박하지는 않았기에 김무력은 마냥 불만에만 사로잡힐 수는 없었다. 아직 벼슬은 17관등 중에 여섯 번째인 아찬에 머무르고 있지만 새로이 취한 주(州)와 그곳에 주둔한 병사들을 김무력에게 맡겼다는 건 그만큼 그의 실력을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그곳에서 김무력보다 관직이 위에 있는 각간 우덕과 이찬 탐지는 김무력의 활약 여부에 따라 언제든지 넘어설 수 있는 이들이었다.

"장군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

김무력이 돌아보니 자신의 집을 돌보고 있는 하인 중 우두머리가 뒤를 따라와 조용한 목소리로 부른 후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마님에 대한 일이옵니다만…."

아무래도 주위에서 엿들을 수 있는 트인 공간인지라 하인이 눈치를 보고 있는 거라 여겨 김무력은 하인을 구석으로 불러 재차 물어보았다.

"무슨 일인지 어서 말해 보거라."

"남부여에서부터 마님을 따라온 고도란 자를 기억하시옵니까?"

"글쎄…."

"장군께서 자리를 비우신 사이 그 자가 마님과 정분을 통하고 있사옵니다."

김무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인은 김무력이 크게 화가 났다고 여겨 잠시 뜸을 들였다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서라벌 내에 소문이 좍 퍼졌습니다."

"알겠다. 그만 볼일이나 보거라."

하인이 간 뒤 김무력은 한숨을 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부부로서의 정이 없는 화안공주가 다른 사내와 정분이 통했다하더라도 김무력은 그리 아쉬울 것이 없었다. 다만 밖으로 이런 얘기가 퍼지면 남에게 위신이 서지 않는다는 것이 분할 따름이었다.

'까짓것 요즘 남부여와의 관계도 좋지 않은 판국에 혼인은 파기해 버리고 공주는 돌려보내면 그만 아닌가.'

그러나 김무력은 한편으로는 자신의 눈으로 화안공주와 고도와의 관계를 확인해 보고 싶었다. 김무력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화안공주는 그냥 내치더라도 고도는 그냥 두고 볼 수가 없는 터였다.

"이 보거라!"

김무력은 멀리 가던 하인을 불러 세웠다.

"그 고도라는 자가 여기 얼씬거리거든 내게 알리거라."

"그렇지 않아도 해가 질 녘이면 그 자가 일을 마치고 이리로 올 때입니다."

"이리로 온다니? 그 자의 거처는 여기가 아니지 않느냐 그리고 일이라니? 남부여에서 온 자에게 여기서 무슨 일을 맡겼단 건가?"

"남부여에서도 신분이 낮은 자라 아니라서 궁중의 말먹이들을 다스리는 낮은 관직이라도 준 것이라 합니다. 거처가 이곳이 아닌데도 항상 이리로 와 마님을 뵈니 제가 어려운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결전#남부여#노래#연재소설#최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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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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