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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력이 하인을 따라 화안공주의 처소로 가니 이미 나지막하게 고도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지리산 반야봉 돌아가 하여 / 내 님을 두고 가고자 하여 / 위러셩 다링공 하여 / 저 님이 나를 불러 엇뎌 하여...

김무력은 크게 기침소리를 내었고 노랫소리는 뚝 끊어졌다. 화안공주의 앞에는 고도가 앉아 있었으며 간소한 다과가 차려져 있었다.

“노랫소리가 마치 계집 같구나.”

김무력은 고도를 흘겨보며 자리에 앉았다. 고도는 당황해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처소로 가보겠나이다.”

“앉아라.”

김무력은 고도에게 짤막하게 명력조로 얘기하고서는 화안공주를 노려보았다. 화안공주는 당황스러워 하는 고도와는 달리 자신의 여흥을 깨버린 김무력이 못마땅한지 입술을 실룩거렸다. 고도는 엉거주춤 자세를 잡은 후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부인, 이런 행동으로 인해 무슨 소문이 돌고 있는지 알고나 있는 것이오?”

김무력은 결코 눈앞의 일에 대해 가슴속에 묻어두고 피해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고도는 가시방석과 같은 그 자리를 당장 피해가고 싶어 화안공주의 눈치를 살폈지만 화안공주는 고도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김무력에게 쏘아 붙였다.

“남들의 소문 따위에 뭘 그리 귀를 기울입니까? 난 결코 남부끄러운 행동을 한 적이 없으니 이러실 것 까지는 없습니다. 내가 먼 고향을 떠나왔건만 남편의 얼굴도 볼 수 없을 지경이라 외로움을 달래려 고도를 불러 가끔 고향에서 즐겨 불리던 노래를 청해 듣는 것이 그리도 마음에 걸린 단 말입니까?”

화안공주의 말은 정연했지만 불같은 성격의 김무력을 설득할 수는 없었다.

“네가 나를 이리 업신여기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김무력은 허리춤에 찬 짧은 칼을 꺼내어 화안공주의 목에 겨누었다. 옆에 앉아 있던 고도가 놀라 김무력의 허벅지를 껴안으며 소리쳤다.

“장군! 이러시면 아니 됩니다! 차라리 저를 벌하소서!”

그러나 고도의 행위는 김무력을 더욱 화나게 할 뿐이었다.

“오냐! 내 이 년을 쳐 죽인 다음에 너도 죽여주마!”

보다 못한 주위의 하인들과 시녀들이 그 앞을 막아서며 김무력을 말렸다. 특히 시녀들은 화안공주의 말을 적극 옹호하고 나섰다.

“장군님! 마나님의 말씀이 맞사옵니다. 마나님은 오직 저 자를 불러 노래를 청해 들었을 뿐이지 결코 장군님을 욕되는 행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장군, 노여움을 거두소서!”

김무력은 불같은 성격을 지니기는 했으나 체면을 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하인들 앞에서 자신의 체면을 구길 수는 없다고 여긴 김무력은 뽑아든 칼을 다시 칼집에 넣어 두고서는 휙 뒤돌아서서 중얼거렸다.

“이것으로 당신과 부부로서의 정은 끝이오!”

김무력의 말은 그러하였지만 남부여와 맺은 정약 결혼을 그 스스로 내칠 수 없다는 사실은 김무력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김무력은 분한 마음을 더욱 주체할 길이 없어 하늘을 향해 크게 소리를 지른 뒤 화안공주의 처소에서 떠나갔다.

“공주마마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경황이 없는 와중에서도 고도는 깍듯하게 화안공주에게 자신의 경솔함을 사과했다. 사실 김무력이 서라벌에 돌아왔다는 사실을 고도가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일같이 찾아가던 화안공주의 처소에 발을 끊는다는 건 고도로서는 참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발길을 되돌리지 않은 것이었다.

“아니다.”

화안 공주는 차갑게 대답했지만 어느덧 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고도는 그런 화안공주를 꼭 안아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한 채 아려오는 가슴을 마음속으로 부여잡으며 조용히 그 앞에서 물러서 나갔다.

덧붙이는 글 |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최항기#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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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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