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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모습이 귀엽죠?
웃는 모습이 귀엽죠? ⓒ 김현
얼마 전에 퇴원하신 어머니 병간호하랴, 시골에 가서 모내기 일 도와주랴, 소나무 밭에 풀 뽑기로 감기에 몸살로 끙끙 앓았지만 아내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아니 병원 가는 걸 무척 싫어해서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 않았다. 그런 아내가 병원에 간다는 게 이상해 물었더니 딸아이가 태권도장에서 넘어져 팔에 이상이 있다는 소리를 한다. 그런데 아내는 '팔이 부러진 것 같아'하면서도 심드렁하게 말한다. 딸아이를 끔찍하게 예뻐하는 남편의 마음을 고려해서 하는 것 같았다.

사실 모든 아빠들도 그렇겠지만 딸아이에 대한 나의 마음은 유별나다. 그 유별남이 지금은 어느 정도 사그라졌지만 아직도 아들에 비해 딸이 우선시 되고 있는 것은 여전하다. 어쩌면 조금은 늦은 나이에 첫아이로 딸을 봐서인지 모른다.

감자탕 먹고 난 아이, CF모델도 하고

난 첫아이(딸)를 좀 늦은 나이에 봤다. 내 나이 서른다섯에 봤으니 이른 편은 아니었다. 딸아이는 해산날보다 열흘이나 늦게 태어났다. 병원에 갔을 때 의사는 태아가 엄마 뱃속에서 태변을 봤다며 위험할 수도 있다고 겁을 주었다. 태아가 태변을 먹으면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사이좋게 컸습니다
이렇게 사이좋게 컸습니다 ⓒ 김현
그러면서 의사는 빨리 아기를 낳아야 한다며 촉진제를 놔 주었다. 진통이 시작되면 곧바로 병원으로 오라는 소리를 듣고 아내와 난 송파구에 있는 처제 집으로 갔다. 그날 저녁 아내가 감자탕을 먹고 싶다며 감자탕을 사달라고 했다. 감자탕을 먹고 조금 있으려니 아내가 배가 살살 아프다고 한다. 처제 집에 가 잠깐 쉬려고 했지만, 아내는 배가 너무 아프다며 신음소릴 내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성남의 산부인과까지 가는 도중 아내는 몇 번이나 구토를 했다. 10시30분쯤 병원에 도착하고 분만실에 들어간 아내는 새벽 1시 21분에 해산을 했다.

아내의 신음소리만 흘러나오던 분만실에서 갑자기 흘러나오는 갓난아이의 울음소리, 그 울음소리에 대한 나의 첫 반응은 눈물이었다. 그때 처제 앞에서 눈물을 감추기 위해 난 밖에 나가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왜 그 순간 잘 피지도 않는 담배가 생각났는지 모른다. 몇 모금 빨다 말고 분만실 앞에 있으니 의사가 나오며 한 마디 한다.

"공주입니다. 서운하게 생각지 마세요."

광고의 한 장면. 갓난 아이가 다솔이
광고의 한 장면. 갓난 아이가 다솔이 ⓒ 김현
서운하다니. 아내와 딸이 건강한 것에 감사하고 눈물이 나는데 서운하다니. 그리고 그 의사는 내가 은근히 딸을 기다렸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리라. 아들만 사형제인 집에서 자란 내게 딸은 귀한 존재였다. 내게뿐만 아니라 우리집에서도 그랬다.

한 시간여가 지난 다음 딸아이와 산모가 분만실에 나와 병실에 나란히 누웠는데 그 모습이 너무 예뻤다. 저 녀석이 내 자식이라니. 그런데 녀석이 갑자기 '으앙~' 하고 우는데 굵은 눈물을 주렁주렁 흘린다. 그때 난 모든 신생아는 태어나자마자 그렇게 눈물을 흘리는 줄 알았다. 둘째를 보기 전까진.

그렇게 태어난 아이의 뒷바라진 다 내 차지였다. 목욕도 내가 시켰다. 기저귀도 집에 있을 땐 내 손으로 갈았다. 가끔 외출할 땐 내가 안고 나갔다. 주위에서 뭐라 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기회가 닿아 CF 촬영을 하게 됐다. 처음엔 갓난아이를 데리고 무슨 CF냐며 반대를 했지만 기념이 된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결국 CF를 찍게 됐다. 생후 21일쯤 되던 날이었다. CF는 017 핸드폰 광고였다. 그때 아이의 이름이 김다솔.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아이디도 그 이름에서 따온 거다.

첫 이별에 대한 그리움 한 편의 짧은 글로...

광고를 찍고 몇 달이 흐른 어느 날 딸아이와 아빠의 첫 이별이 있었다. 아이 외할아버지에게 일이 있어 엄마와 아이가 시골에 내려갈 일이 생긴 것이다. 그날이 97년 7월 3일.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왔을 때 텅 빈집에 있으려니 왜 그리 아이 생각이 많이 나는지. 아내에 대한 생각보다는 오직 막 방긋방긋 웃기 시작한 아이 생각뿐이었다. 결국 잠을 이루지 못하고 컴퓨터에 앉아 있다가 아이에 대한 마음을 한 편으로 글로 표현했다.

♡ 사랑하는 아가에게 ♡

바람 속에서도 햇살 지으며
해맑은 눈빛으로 밝게 미소 짓는
사랑하는 아가야
이 세상의 꽃이 아름다운들
네 미소보다 아름다우랴
저 하늘이 푸르른들
네 순결한 마음보다 푸르르랴
이 세상 그 무엇보다
고결한 모습으로
엄마 품에 잠든 아가야
아침에 눈을 뜨면
넌 언제나 아침 햇살보다 투명한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생글거리며
아빠 엄마에게 행복의 샘을 주었고,
네 토실토실한 볼에 입 맞추면
넌 까르르 방글거리며
생활을 짐 진 아빠의 어깨를
새털처럼 가볍게 해주었단다.
아가야, 사랑하는 아가야
넌 우주 속의 한 떨기 빛이란다.
저기 서있는 모두에게
기쁨과 희망의 생명이란다.
건강하고 아름답게 가꾸어야 할
참 생명이란다.
아가야
쌔근거리며 꿈속을 여행하는
사랑하는 아가야
아빤 너의 고른 숨소릴 들으며
매일매일 기도 한단다
감사의 기도를… - 1997. 7. 4. 01. 30 아빠가


아기 때의 모습
아기 때의 모습 ⓒ 김현
이 글은 지금 액자에 넣어져 아이 방 한쪽 벽에 걸려 있다. 딸아이도 한 번 정도 읽었는데 반응은 무덤덤했다. 아직 어린 나이인 딸이 그때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이 글을 액자에 넣어 걸어둔 것은 아빠의 마음이 당시 이랬음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그리고 나 또한 그때의 마음을 생각하며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놓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가끔 아내는 아들딸만 좋아하지 말고 각시도 좋아해주라고 말한다. 자식들이야 나중에 떠나면 그만이지만 자기는 옆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란다. 일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난 이렇게 대답한다.

"아이들을 예뻐하는 것도 잠시야. 사랑을 주는 마음도 그때그때 다르고. 좀 더 커봐. 안아주고 뽀뽀하고 싶어도 못해. 그래서 할 수 있을 때 많이 해두는 거야."

차 안에서 아빠와 딸
차 안에서 아빠와 딸 ⓒ 김현
그런 생각 때문에 난 출근할 때마다 아이들을 현관문 앞으로 불러 입맞춤을 한다. 입맞춤 할 때마다 아들 녀석은 귀엽고 조그만 입술을 제비새끼마냥 뾰로록 내민다. 부러 볼에 뽀뽀를 하면 꼭 입술에 해달라고 한다. 딸아이도 입술을 내민다. 하지만 딸아이에겐 입술 대신 볼에 입맞춤한다. 그리고 나와 십년 넘게 산 내 짝꿍, 그녀는 아이들 보는 앞에서 내 입술에 두 번 세 번 입맞춤을 한다. 내가 안 하니까 자기가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깔깔대며 웃는다.

딸아이는 지금 깁스를 하고 있다. 3주 정도 하면 된다고 한다. 그 3주 동안 태권도장에 가 운동을 못하는 게 아쉬운지 놀러간다며 가곤 한다. 도장에 갔다 오면 "아빠, 나도 빨리 운동하고 싶어. 심심해"하며 투정을 부리곤 한다. 그런 딸아이를 보면서 난 그저 빙긋이 웃는다.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준 모습을 보면서.
#아빠#딸#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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