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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농사짓는 후배에게서 전화 한 통화를 받았다. 유기농법으로 배추 2000평을 심었는데 판로가 없어 걱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운영하는 인터넷 직거래장터에서 팔아보면 어떻겠느냐고 해서 함께 팔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인터넷 직거래 장터가 아주 잘 되는 것도 아니어서 판매 수량은 100상자에도 미치지 않고 있었다.

▲ 2000평의 배추밭이 그대로 남아있다.
ⓒ 조태용
그 일이 있은 후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그리고 오늘(19일) 그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결국에 배추를 다 팔지도 못하고 남은 배추를 모두 갈아엎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작물을 심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 봄이 왔으니 그 자리에 호박을 심을 예정이라고 했다. 요즘 종잣값이라도 벌 요량으로 공업사에서 용접 일을 하고 있다는 그의 목소리는 풀이 죽어 있었다.

@BRI@내가 그를 알게 된 것은 3년 전이었다. 내가 도시에서 지리산으로 내려온 것도 그때였다. 그때 그는 29살이었다. 그는 내가 만나본 가장 젊은 농부였다. 지금 그의 나이는 32살이다.

지금 역시 요즘 시골에서 찾아보기 힘든 젊은 농부다. 내가 태어나 고향 시골마을에는 50살의 농부가 제일 젊은 농부다. 그는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가 가장 젊은 농부였는데 20년이 다 되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마을에서 가장 젊은 농부다. 그러니 32살의 그것도 유기농업 10년 차의 젊은 농부는 찾아보기 힘든 '국보급' 청년이다.

그는 고등학교 때 가톨릭농민회 회원이었던 아버지에게 농사를 배웠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80년대부터 유기농업을 했다. 그때만 해도 유기농업을 한다면서 비료 안주고 농약 안주면 간첩소리 듣던 시대였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대파를 심었는데 3년 동안이나 유기농업 경험 부족으로 실패를 거듭했다고 한다. 그 여파로 그는 대학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우직하게 유기농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배추 2000평을 심었다. 그가 2000평의 배추 농사를 위해 투자한 돈은 트랙터를 이용한 작업비용 60만원에 종잣값 30만원 인건비 40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물론 자기 가족에 노동력과 친환경 자재비용과 퇴비 비용을 포함하지 않은 금액이다.

▲ 그의 배추는 달콤하고 맛이 좋아 쌈배추로 좋다.
ⓒ 조태용
하지만 이번 농사로 그가 건진 수익은 달랑 100만원이었다. 들인 비용조차 되지 않는다. 하루하루 배추농사에 기울였던 그의 노력과 땀방울을 찾을 길도 없다. 더구나 그는 1년 전쯤 결혼을 했다. 그가 결혼했을 때 동네 형수는 15년만에 자기에게도 동생이 생겼다고 좋아했다고 한다. 아마 그도 어려운 결정을 하고 시골에서 농부의 아내로 살기로 한 아내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배추 2000평은 그가 결혼 후 처음 한 농사였다. 하지만 그의 희망은 너무 쉽게 무너지고 말았다.

"형님, 얼마 전 배추상인을 만났는데 6000평에 300만원을 줬대요. 그것도 많이 준 것이라는데요."

배추 2000평이면 5톤 트럭으로 10대 분량이 넘는 양이다. 그는 결국 배추밭을 갈아엎기로 했다고 한다. 쉽게 하는 말로 인건비도 안 되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며칠만이라도 더 팔아보자고 했다. 하지만 지금 시기가 지나면 다른 작물을 심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눈물 나지만 갈아엎어야 한다면서 농사짓고 사는 것은 너무 힘겹다고 한다.

나는 가끔 농민이 살지 않는 대한민국을 상상해 보곤 한다. 모든 농산물을 수입하거나 냉동식품으로 먹는 때 말이다.

'옛날에 농부라는 직업이 있어서 싱싱하게 먹을 수 있었는데 말이야' 하는 소비자의 입담에서, '예전에 농산물 도매시장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내가 거기서 일했지' 하고 말하는 경매사와 도매상인들의 추억에서나 회자 되는 때 말이다. 아마 그때쯤 가서야 농민들의 고단한 하루와 속 타는 마음이 해결되지 않을까 싶다.

그는 나에게 물었다.

"형님, 왜 다른 상품은 제조업체가 다 가격을 정하는데 농산물을 상인들이 다 결정하죠. 내가 힘들여 키운 농산물이 생산비도 건질 수 없는 가격에 팔려야 하죠. 왜 농민들은 항상 약자죠?"

나는 그의 질문에 답한 길이 없다.

"그냥 배추나 한 번 더 팔아보자. 내가 전체 메일이라도 보내줄 게, 미안하다."

나는 왜 그에게 미안하다고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미안하다.

유기농으로 키운 건강한 쌈배추로 이번 주 가족 식탁을 꾸려 보면 어떨까? 그에게 힘도 되어주고 입맛 안 좋은 봄철에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맛도 좋다.

덧붙이는 글 | 그의 배추는 3일간의 유예기간이 남아 있다. 얼마나 팔리겠냐만은 그래도 관심 있는 분들이 그가 인건비라도 건질 수 있도록 그의 배추를 구매해주기 부탁드린다. 그의 배추는 농민장터에서 한 상자(6개)에 7천원, 2상자에 1만1천원이다. 그것도 배송비 무료로 공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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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친환경 농산물 직거래 참거래농민장터(www.farmmate.com)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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