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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램프의 <쵸비츠>(전 8권) 책표지
클램프의 <쵸비츠>(전 8권) 책표지 ⓒ 서울문화사
<매트릭스>에서의 '컴퓨터'는 3명의 인간 형상의 '요원'을 이용해 네오 일행의 저항에 맞선다. 하지만 <쵸비츠>는 그 형상에서 한걸음 더 나아갔으며, 오히려 보편화까지 시켜놨다. <쵸비츠>가 제시하는 미래의 컴퓨터는 놀라울 정도로 구별이 어려운 '인간형 컴퓨터'다. 게다가 작품 초반에 전시되는 '인간형 컴퓨터'는 대개 미소녀의 형상이다.

<쵸비츠>는 클램프의 작품답게 전반적인 이야기와 그 흐름은 '무국적'에 가깝다. 하지만 재수생으로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며 '야동'도 즐겨보는 주인공 '모토스와 히데키'와, 눈이 다 휘둥그레질 정도로 아름답게 생긴 미소녀형 컴퓨터에 맥을 못 추는 그의 모습을 통해 흥미로운 일본의 현실을 드러낸다.

<쵸비츠>의 독자라면 쉽게 눈치챘을 것이다. 히데키를 비롯해 이 작품의 전반적인 캐릭터들은 오타쿠에 가깝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오타쿠들의 그리 밝지만은 않은 현실을 대변하는 듯한 '히데키', 컴퓨터에 정통한 중학생 '미노루' 등, 오타쿠의 전형적인 이미지들이 발견된다.

미소년형 컴퓨터는 등장하지 않지만 미소녀형 컴퓨터는 곳곳에서 등장한다. 거기에 충실하게 말도 잘 듣는 데다 이렇다 할 반항 한 번 하지 않고, 열녀문을 세워도 좋을 정도의 정절을 과시한다.

<쵸비츠>는 그림의 전반적인 감각이나 색채가 여성 작가들이 그린 그림답게 선이 가늘면서, 완벽한 미소녀의 형태를 구현하려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남성 캐릭터도 머리만 짧지, 전반적인 얼굴형은 여성에 가깝다.

하지만 이야기는 지극히 남성 중심적이다. 길거리에 버려진 미소녀형 컴퓨터 '치이'를 가져와 애지중지하며 사랑을 느끼는 '히데키', 과거에 '컴퓨터'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결혼까지 했던 30대 후반(그런데 외모는 '히데키'의 친구뻘이다)의 빵가게 주인 '우에다' 등, 그림은 여성적인 감각을 따르되, 이야기 구도는 남성 오타쿠의 취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후반부에 갈등과 고뇌가 증폭되면서 암울한 분위기를 띠는 것은, 클램프 특유의 개성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려던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만족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판타지로 충족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젊은 여성은 미니홈피 교류나 아이돌 스타 팬클럽 교류 등 자기 과시나 사교로 대리 만족을 느낀다. 예쁘게 포장된 미니홈피와 수많은 댓글과 리플은 자신이 '주목받고 있다'는 환상을 주며, 선호하는 아이돌 스타가 같은 사람들끼리 만나 집단적인 움직임과 환호성으로 불만을 해소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남성의 판타지는 폐쇄적인 경향이 많다. 온라인 게임에 매진하거나, 진정한 오타쿠들은 온갖 미소녀 관련 게임을 두루 섭렵하는 사람들도 있다. 옛날 옛적에, 나무를 깎아 '피노키오' 인형을 만들어 아들로 삼으려 했던 독거노인이나, 우렁이를 데려왔더니 다음날 어여쁜 색시로 변해 있더라는 경험담이 있던 어느 노총각의 이야기는 이 경향들의 원조 격에 속한다.

'인간'과 '사랑'. 과연 무엇인가

미소녀형 컴퓨터를 등장시켜 남성 오타쿠들과 사랑까지 빠지게 했으니, 그 다음에는 당연히 고민이 등장할 차례다. <쵸비츠>가 던져놓는 고민은 '과연 이 사랑을 사랑으로 인정해야 할 것인가', 혹은 '그들도 인간으로 인정할 것인가'에 가깝다.

이 부분은 < A.I >의 주제의식과도 겹친다. 차이가 있다면, <쵸비츠>는 그 고민을 기득권자 입장인 '인간'에게 맡기는 착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미노루'는 컴퓨터에게 자신의 죽은 누나 역할을 맡기며, '그녀'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현실을 괴로워한다.

'히데키'는 '치이'의 주체성과 '그녀'에 대한 사랑을 인정하는 여정을 걷고 있으며, 나이에 맞는 경험과 연륜이 있는 '우에다'는 이미 컴퓨터와 결혼까지 했던 전력도 있다.

<쵸비츠>는 궁극적으로 해피엔딩을 추구한다. 그런데 이게 정말 해피엔딩인지는 모르겠다. <쵸비츠>의 엔딩은 일면 교과서적이지만 따지고 보면 오타쿠들의 환상과 욕망을 극대화시킨 장면으로도 볼 수 있다. 우리의 상식대로라면, 오타쿠들은 하루빨리 현실로 복귀시켜야 한다. 그런데 <쵸비츠>에서는 그 상식이 새드엔딩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해지는 배역은 그들을 바라보는 여성 캐릭터들이다. '히데키'가 다니는 재수학원의 강사 '시미즈'와, '히데키'의 후배 '유미'를 주목해야 한다. 그녀들은 문제의 '미소녀형 컴퓨터'로 인해 큰 상처를 입거나 콤플렉스가 생긴 사람들이다.

사실 현실에서는 오타쿠들의 취향으로 인해 여성들이 상처를 입는 경우는 흔치 않다. '오덕후'라고 비난하거나 무시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녀들은 '상처'를 입는다. <쵸비츠> 특유의 남성적 판타지의 영향이다. 그녀들은, '미소녀형 컴퓨터'들을 바라보며 누가 남성의 사랑을 얻을 것인지 은근한 대결을 펼친다.

그렇기 때문에, <쵸비츠>의 '해피엔딩'은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 오타쿠와 미소녀형 컴퓨터의 관계와 고민을 비중있게 본 독자라면, <쵸비츠>의 판단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하지만 상식의 판단대로라면, 그녀들의 행보가 결정적인 영향을 준 남성 캐릭터들이 정말로 '행복해진' 것이다. 그런데 누가 정말 '행복한지'에 대해서는 쉽게 이야기하기 어렵다. 행복이란 만족의 주관적인 표현이니까.

미래사회, 판타지는 영원하다

발전하고 진보하는 문명은 '판타지'에도 영향을 준다. '판타지'를 간접적으로 실현시킬 수단도 나날이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피노키오>나 '우렁각시 설화'처럼 동화나 민담으로 만족하던 일부 남성의 판타지는 컴퓨터라는 수단을 만나 '미소녀 게임'으로 발전했으며, <쵸비츠>의 이야기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일부 여성의 판타지도 마찬가지다. 그녀들의 판타지는 텔레비전을 만나 연속극으로 충족되거나, 인터넷을 만나 팬클럽 문화의 집대성으로 충족된다. 인간의 현실은 고단하다. 판타지가 없으면 낙이 없다. 문명은 그들에게 판타지를 충족시킬 수단도 보장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단점도 있다.

<쵸비츠>는 오타쿠들의 판타지를 적나라하게 그린 작품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적나라함이 담담하게 현실을 그린 것인지, 아니면 비판을 가한 것인지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놓은 민감한 문제이기에 관점의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재미있는 작품인 것만은 분명하다. 현실을 매개로, 만화 장르 특유의 장점과 다양하게 보장되는 장점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클램프의 인기가 심상치 않은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난 셈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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