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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 오마이뉴스 이종호
"노무현 대통령의 태도에서 과거 80년대 운동권 사이에서 나타났던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본다. 상대방을 타격함으로써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식의 단점 말이다. 학문적으로 말하자면 헤게모니 정치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이 논쟁에 대통령이 왜 끼어드나. 원숙함은 미덕이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설 연휴에도 좀체 식지 않는 '진보 논쟁'에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기름을 붓자, 이참에 좀더 구체적이고 정치한 논쟁을 벌였으면 좋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최장집-조희연-손호철-노무현-조기숙으로 이어지는 이번 논쟁에 현직 대통령이 직접 가담했으니 좀더 생산적인 틀로 확대해보자는 뜻도 담긴 것 같다. 올 겨울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네 탓' 공방하지 말고 진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따져보자는 주문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 차베스에게 배워라"

조희연 교수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노무현정부와의 가혹한 단절'을 몇 차례 강조했다. 20일 전화로 만난 조 교수는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김대중정부를 밟고 섰던 것처럼 차기 정권이 노무현정부를 밟고 일어서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로 날을 세웠다.

이 말의 속뜻은 좀더 급진적인 좌파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정치세력의 등장이 필요하다는 말로 바꿔볼 수 있다. 노무현정부가 보수의 저항 때문에 불가피한 2차적 선택으로 신자유주의정책을 취한 면도 있지만 계급적 한계와 불철저성이 있었다는 점도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희연 교수는 "진보적 민중주의와 헤게모니 정치 차원에서 볼 때 노무현 대통령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에게 배울 점이 있다"며 "오히려 사회경제적 정책에서 이른바 포퓰리즘이라고 얘기하는 대중호소적인 정책을 취하지 못해서 더 큰 문제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조중동을 포함한 보수진영 전체가 여러 이슈를 사보타지 하더라도 이걸 어떻게 돌파할 것이냐를 고민해야지, 목표물로 가는 과정에서 장애물을 불평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런 점에서 최장집 고려대 교수가 노무현정부의 정책을 평가하면서 신자유주의 노선을 상쇄하는 적극적 정책을 펴지 못함으로써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노동이슈·소득분배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비판은 정당하다고 평가했다.

다음은 조희연 교수의 말이다.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은 강정구 동국대 교수가 아직도 강의를 못하고 있다.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을 아직도 허물지 못하고 있다. 국회에서 통과된 사학법을 사학들이 안 지켜버린다. 이런 보수적 저항을 넘어서지 않고 진보가 전진할 수는 없다.

다시 운동정치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중과 사회를 좀더 급진화해서 뚜렷한 계급의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 강남 사람들은 계급의식에 투철하고 자신의 계급정당과 계급언론을 분명히 알지만 강북 사람들은 계급의식이 불철저하다. 87년 6월항쟁 당시 온 국민이 반독재에 저항했다면 지금은 온 국민이 양극화 시대의 신계급사회에 맞서 저항해야 한다."


민주화 20년 동안 투명성과 민주성은 획기적으로 진전됐지만 이에 못지않게 계급적으로 매우 심각한 양극화 시대의 신계급사회가 초래됐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정부는 이에 대한 계급의식 없이 보수의 저항에 끌려 다니기만 하고,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20년 전 민주화운동에 나섰던 대중들조차 '사회경제적으로 가난해도 정치적으로 민주화 됐다면 나는 행복해!'라고 외치지 않을 것이라는 조 교수는 "노무현정부가 양극화시대의 신계급사회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 대중 설득에 나섰어야 했다"며 "그래야 제대로 된 '진보적 포퓰리즘'으로 성공했다고 평가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주지하듯 빈민이나 여성노동자 입장에서 보자면 옛날보다 훨씬 살기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라는 조 교수는 "노무현정부의 실패를 딛고 좀더 진보적 가치가 실현되는 사회로 가려면 신보수주의 반대노선을 가져야 한다"며 "신보수주의 정권이 등장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모든 이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포스트 노무현'이 누구냐

▲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 오마이뉴스 이종호
또한 조희연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이 전임 정권의 몫까지 내가 책임져야 하느냐고 항변한다면, 전두환 전 대통령도 중화학공업의 위기를 떠넘긴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책임을 전가해야 한다는 논리가 가능해진다"며 "누가 집권하든 전임 정부의 몫은 현직이 안고 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금 당장 아무리 긍정적 평가를 받으려고 애를 쓴다고 해도, 전임 정부들과 마찬가지로 비판을 받으면서 임기 말을 종료할 수밖에 없다고 못 박았다. 참여정부와 노 대통령은 밟힐 걸 각오하고 비판 받을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자꾸 자신의 업적을 옹호하려고 하지 말고 스스로 밟혀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샅바싸움이 한창 진행되는 게임 중에 자기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기분 나빠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DJ도 임기 내내 조중동한테 욕 얻어먹고 살았다는 걸 상기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지금 정말 필요한 것은 노무현정부를 딛고 올라설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이라는 조희연 교수는 "노 대통령이 국민의정부와 단절하고 독자적 정체성을 갖고 부상했듯이 지금 노무현을 비판하는 '포스트 노무현'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통합신당 논의와 관련해서도 조 교수는 "중도자유주의세력의 전열, 비전, 정책, 비전 등의 재정비가 필요하다"며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단순 통합은 새로운 중도 정치세력의 강화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α'로 제3지대의 건강성이 섞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이번 진보논쟁의 주전선이 노무현정부 평가를 시발로 촉발됐지만, 조희연 교수는 시민사회진영까지 논쟁의 영역을 확장하고, 진보진영 전반의 정책 비전과 담론 형성, 올 하반기 펼쳐질 대선과 '진보의 선택' 등을 놓고 다각적인 논쟁을 벌여갔으면 좋겠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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