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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논쟁이 한창이다. 반가운 현상이다. 이번 논쟁이 감정 이입이 배제된 상태에서 생산적으로 진행됨으로써 수구세력에 의해 ‘진보=좌파=악(惡)’으로 등식화 돼 있는 잔영이 말끔히 거두어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좌파정권’이란 얼토당토않은 정치 공세도 사라지기를 바란다.

그런데, 도대체 ‘진보’란 무엇일까? 정대화 교수는 “진보 아닌 노무현, 논쟁에서 빠져라”고 일갈했고, 손석춘 박사 역시 MBC 100분 토론에서 “진보 아닌 노무현 대통령은 제발 진보 얘기 좀 하지 말라”고 하소연했다. 그리고, 유연한 진보는 무엇이고, 교조적 진보는 무엇인가?

@BRI@간단한 문제부터 해결하고 넘어가자. 진보는 본래 유연한 것이다.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방법은 유연해야 하는 것이다. 혁명도 그렇고, 개혁도 그렇다. 반면에 조건과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관념적으로 원칙만 고집하는 게 ‘교조’다. 그건 이미 진보가 아니다. 그러니 유연한 진보니, 교조적 진보니 하는 건 레토릭에 불과하다. 정태인 전 비서관은 “유연한 진보는 없다”고 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러면 진보는 무엇인가? 상대적 개념이 있고, 이념적 개념이 있다. 상대적 개념으로 보면, 수구나 보수에 대비되는 게 진보다. 유신정권에 저항했던 친미적 자유주의 지식인들도 그때는 진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떠오르는 인물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념적 진보는 진보적 이론으로 무장돼 있는 경우를 말한다. 따라서 어느 누가 진보냐 아니냐를 논할 때는 무엇을 기준으로 했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러면, 과녁이 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은 진보인가, 아닌가? 나는 진보 맞다고 생각한다. 이 땅에 진보만 사는 게 아니라고 했던 문제의 글에서 알 수 있듯이 대통령은 이념적으로도 진보고, 상대적 개념으로도 진보가 맞다. 이라크 파병과 비정규직법 처리, 한미FTA 추진을 기준으로 해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니 진보 아니라고 주장하는 건 어폐가 있다.

정부가 취하는 정책이 그런 것만 있는 게 아니다. 수구세력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6자 회담을 성공적으로 유인하고, 한반도 평화의 주춧돌을 쌓으며 민족경제의 부흥을 꾀하는 정부가 수구인가? ‘유연한 진보’니 ‘교조적 진보’니 하는 구분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인데, 진보 아닌 노무현은 논쟁에서 빠지라고 하는 것은 진보의 자세가 아니다.

한나라당의 집권을 아무렇지 않게 거론하는 이들이야말로 진보의 자격이 없다. 손호철 교수는 "한나라당이 집권해 한나라당 식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해 사회적 양극화와 생존의 파탄을 경험하고 문제의 핵심이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있다는 것을 민중이 직접 체험해야 한다"고 했다. 정치학자들에겐 대한민국과 국민이 실험대상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민주정부가 쌓아올린 모든 것이 무너질 것이다. 그 정권은 무엇보다도 조중동의 꼭두각시 정권이 돼서 진보가 숨 쉴 수 있는 공간마저 좁아질 것이다. 어느 정도 균형추 역할을 하는 KBS와 MBC는 다시 조중동의 확성기로 돌아설 것이다. KBS와 MBC를 삼성 등 자본에게 헌사할 가능성도 농후하다. 그래도 무방한가?

나는 우리 시대의 진보는 조중동에 결연히 맞서고 저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중동에 저항하는 진보라야 진짜 진보다. <한겨레>는 23일자 4~5면을 할애해서 ‘진보논쟁’을 주제로 노회찬 의원, 조희연 교수,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의 좌담기사를 실었다. 사회자인 김이택 기자가 물었다. “김동민 교수는 ‘조중동을 제어하지 못하면 민주주의가 작동될 수 없다’고 했다. 어떻게 보나?”

조희연 교수는 정부의 비타협적 자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조중동의 비판은 상수이고, 정부가 이를 뛰어넘는 정책집행 전략을 구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최 교수의 주장을 수용한다”고 했고, 노회찬 의원은 “가장 큰 문제는 정치세력화 돼 있는 일부 언론이다. ···이 부분에 너무 과도하고 민감하게 대응했다. 그러다보니 결국 그 언론에 휘말리게 됐다”고 했다. 동의하지 않은 것이다.

정부가 조중동을 뛰어넘는 전략을 구사하지 못했고, 과도하고 민감하게 대응하다 휘말렸다는 말은 맞다고 치자. 그러나 그걸로 끝일까? 참여정부와 조중동 사이의 문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진보진영이 조중동에 대해 반응하는 방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말만 그럴듯하게 하는 건 아무 소용도 없다.

진보논쟁에 참여하고 있는 진보적 지식인들에게 묻는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구사하고 있는 정부와 신자유주의 철학으로 무장돼 있는 조중동 중에서 누가 더 문제인가? 문제의 본질인 조중동을 성역으로 모셔두고 참여정부 실패론을 역설하며 대통령이 진보니 아니니 씨름하는 게 올바른 자세인가? 조중동을 실천적으로 제어하는 행동을 취하지 않고도 진보의 구현과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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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 한일장신대 교수, 전북민언련 공동대표, 민언련 공동대표,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 등 역임, 리영희기념사업회 운영위원. 리버럴아츠 미디어연구회 회장, MBC 저널리즘스쿨 강사,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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