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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유니'라는 가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세상과 작별을 했다. 젊은 여가수가 세상과 연을 끊은 이유가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자신에 대한 네티즌들의 '악플'도 그녀의 자살에 영향을 끼쳤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유니의 경우만은 아니다. 배우 문근영의 선행에 대해서도 어김없이 잘못된 글들이 올라온다. 국민여배우라는 소릴 듣고 있는 배우 문근영과 그녀의 어머니가 전남 해남군의 어린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짓도록 수억 원을 아무도 몰래 쾌척 했다는 훈훈한 미담 기사에도 색안경을 쓴 댓글들이 어김없이 올라왔다.

@BRI@주로 '기부, 선행 이것 모두 스타들의 홍보전략이다' '왼손도 모르게 한 선행 끝까지 모르게 해야지, 이게 뭐야' 등등 꼬투리를 잡는 글들이 뱀꼬리처럼 달려있음을 보며 우리 사회의 각박함과 말에 너무 무신경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언어의 울타리 안에서 지내게 된다. 어떤 언어 학자에 의하면 인간이 언어를 처음 인식한 것은 처음 말을 하는 때가 아니라 듣는 순간부터라고 한다. 그 들음의 순간부터 인간은 언어공동체에 참여하게 되고 자신의 삶의 문화적 위치와 정신적 위치가 결정된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일부 사람들은 사이버 공간의 익명성 아래 숨어서 숱한 말의 비수들을 타인에게 쏟아내고 있다. 아니 쏟아 붓고 있다. 자신이 장난삼아 던진 말꼬리들이 타인에게 어떤 상처가 되는지는 생각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에, 생각에 맞지 않으면 어김없이 비수들을 표창 던지듯 쓱쓱 던져댄다. 그리곤 뒤에서 깔깔댄다.

선행 행위, 아름다운 행위를 해도 말찌꺼기들이 우리의 머리를 아프게 한다. 왜 그럴까. 그만큼 우리 사회가 각박해지고 여유가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아름다움도 아름답게 보이지 않은 사회와 개인, 아니 보이지 않는 게 아니라 안 보려는 우리들의 의식구조가 무섭기까지 하다. 물론 잘못된 행동에 대한 비판이야 나쁘다고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좋은 것에는 칭찬하는 말의 문화가 조금은 아쉽다.

'말의 힘'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말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힘의 강도는 달라지겠지만 말의 중요성을 의미하고 있는 뜻일 게다.

그 생각과 말의 힘에 대해 노래하고 있는 시가 있다. 황인숙의 <말의 힘>이라는 시다. 가만히 읊조리기만 해도, 눈으로 보고만 있어도 생동감이 넘쳐난다. 기분을 좋게 한다.

기분 좋은 말을 생각해보자.
파랗다. 하얗다. 깨끗하다. 싱그럽다.
신선하다. 짜릿하다. 후련하다.
기분 좋은 말을 소리내보자.
시원하다. 달콤하다. 아늑하다. 아이스크림.
얼음. 바람. 아아아. 사랑하는. 소중한. 달린다.
비!
머릿속에 가득 기분 좋은
느낌표를 밟아보자
느낌표들을 밟아보자. 만져보자. 핥아보자.
깨물어보자. 맞아보자. 터뜨려보자!


말은 말을 하는 사람의 생각이다. 평소의 생각이 말로 나타나고 글로 나타난다. 어둡고 칙칙하고 부정적인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은 부정적이고 어두운 생각을 많이 한다. 반면에 밝고 맑고 긍정적인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은 밝고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한다. 생각이 말을 만들고, 말이 나중엔 행동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언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기분 좋은 말, 아름다운 말도 많지만 그런 말들보다는 아픔을 주는 말, 슬픔을 주는 말들이 더 난무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옛 사람들은 말의 중요성에 대한 말들을 만들어 그 중요성을 인식하게 했다.

예를 들어,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란 말이 있다. 말의 상호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자신은 상대방에게 아무렇게나 해대고 자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고운 말을 듣겠다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지금 사이버 공간에서 건전한 비판이 아니라 비난의 말찌꺼기들을 양산하고 있는 우리들이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할 속담이 아닌가 싶다.

또 말의 중요성을 의미하는 속담인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그렇지만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도 갚지만 말 한 마디로 사람을 절망에 빠지게도 하고, 죽게도 한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말은 야누스와 같은 성질을 가졌다. 선함도 있고 악함도 있다. 그런데 그 야누스의 말을 만들어 살아있게도 하고, 죽게도 하는 것은 말을 사용하는 사람이다. 무심코 내가 던진 말이 살게도 하고 죽게도 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오늘 나는 어떤 말을 했는가 생각해 본다. 내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했는가 생각해본다. 늘 말의 상처를 주고 살아온 것 같다. 조심하면서도 무심결에 던진 말로 상처를 주었던 것 같다.

시인의 시를 다시 읊조려본다.

"파랗다. 하얗다. 깨끗하다. 싱그럽다./ 신선하다. 짜릿하다. 후련하다."

시인의 살아있는 말들을 읊조리며 내 머릿속에, 마음속에 기분 좋은 느낌표를 만들어 밟아본다. 아니 밟아 보고 싶다. 그러면서 아름답고 시원하고 가슴을 환하게 하는 시인의 말처럼 너, 나, 우리 모두 상쾌하고 기분 좋은 말들을 만들어 사용했으면 하는 작은 마음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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