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조 아카리 원작&나가토모 켄지 그림의 <바텐더>, 현재 4권까지 출간.
조 아카리 원작&나가토모 켄지 그림의 <바텐더>, 현재 4권까지 출간. ⓒ 학산문화사
사실 와인과 칵테일은 대중문화 작품 전반에 걸쳐서 대단히 자주 다뤄지는 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주인공의 멋을 과시할 수 있는 액세서리로도 애용되지만, 그 자체가 인생을 이야기하고 대변하는 소재가 되는 경우도 많다.

그 사례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캐릭터는 당연히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가 될 것이다.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A Martini. Shaken, not stirred)"를 시리즈마다 반복하는 이 엉뚱한 첩보원은 즐겨 마시는 칵테일 종류만 9가지나 되는 마티니 광이다.

테크노 스릴러 작가 톰 클랜시도 그의 소설 <레인보우 식스>를 통해 "첩보원이라면 007처럼 마티니를 젓지 않고 흔들어서 먹을 줄 알아야 한다"면서 센스를 과시한 적이 있다.

그가 즐겨 마시는 '마티니'는 진과 베르무트를 3대1 비율로 혼합해 만들어지는 술이다. 그중에서도 '보드카 마티니'는 007 시리즈의 원작자인 이안 플레밍이 1930년대에 러시아에서 현역 첩보원으로 활동하던 시절에, 보드카에 맛을 들이면서 마티니에 섞어 마셨다는 사례에서 유래했다.

만화 마니아라면 많은 분들이 알고 있듯이, '진'과 '베르무트'는 <명탐정 코난>에서 '코난'이 쫓는 '검은 조직'의 핵심 맴버라는 묘한 상관관계가 있다. 개성이 강하면서도 만들기도 까다롭기에, 그래서 '치명적'일 수도 있는 칵테일일지도 모른다.

제임스 본드도 과거에는 정말 너무나도 치명적인 유혹이지 않았던가. 이안 플레밍은 그 치명적인 유혹과 자신만이 느꼈던 독특한 맛을 전세계적인 유행코드로 완성한 것이다.

@BRI@그렇듯 007 시리즈를 보며 한껏 폼을 잡고 싶었던 남성들이 바텐더를 향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를 외쳤다면, 여성들은 톰 크루즈가 바텐더로 출연해 여성들로부터 진한 눈빛을 받았던 영화 <칵테일>을 떠올린다. 영화 속에서 여성들이 그에게 주문한 칵테일은 그 유명한 '오르가슴'이다.

'오르가슴'은 달콤한 맛과 향이 일품인 가운데, 의외로 알코올 도수가 강력한 이질적인 맛이 동시에 스며들어 있기에, 특유의 자극적인 이름을 갖게 된 듯하다. 우리나라의 많은 여성들의 지지를 얻은 미국 드라마 시리즈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가 '코스모폴리스탄'이라는 칵테일을 마시는 장면이 나오면서, 그 칵테일 또한 여성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런 사례들은 칵테일 문화가 아직 정착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자신이 선호하는 맛보다는, 단순히 유명작품의 유명 캐릭터, 유명 배우가 마셨기에 '동질감'을 느껴보려는 차원에서 유행했던 사례들인 것이다.

칵테일 그 자체보다는 마신다는 자체에서 '특별한 멋'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것도 나쁘지 않은 취향이지만, 한 잔의 술에도 자신의 개성을 듬뿍 담아본다면, 그 맛은 더욱 특별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칵테일, 즐기는 자와 만드는 자의 이야기 <바텐더>

애니메이션 <바텐더>의 오프닝
애니메이션 <바텐더>의 오프닝 ⓒ 후지TV
만화 중에는 , <칵테일 25시>, <레몽레인> 등의 작품들이 '칵테일'을 소재로 삼았다. 특히 이케다 후미하루의 가 주목할 만 작품이다. '19세 미만 구독불가'라는 등급이 말해주듯이 성적인 장면이 다수 등장하는 가운데 칵테일 특유의 자극적인 맛이 다양한 삶의 판타지와 어우러져 꽤 특색있는 만화임을 과시했다.

최근에는 <바텐더>라는 작품이 출간돼, 칵테일의 짜릿한 맛을 원하는 만화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총 11편으로 완결된 애니메이션이 있으며, 단행본으로는 4권이 출간된 작품이기도 하다.

<바텐더>는 유럽에서 잘 나가다 일본에 귀국했다는 '천재'를 주인공으로 삼은 전형적인 지식형 만화로 보일 수도 있다. 짧은 에피소드들이 모였다는 점에서, 구성면에서도 특별히 이야기할 것이 없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예상 외의 쏠쏠한 재미를 안겨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칵테일'과 더불어 그것을 다루는 '바텐더'의 세계를 그리면서 다양한 인간군상의 이야기를 대입시켜 나간다. 한 잔의 술에 많은 이들의 인생이 숨어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게끔 잔잔하게 그렸다는 점이 쏠쏠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앞서 이야기한 우리 칵테일 문화의 경향과는 달리, 칵테일에 숨어있는 진솔한 아름다움을 그리려 한 것이다.

거기에는 일본만화에서 특히나 자주 등장하는 노장과 신진의 미묘한 신경전도 녹아있으며, '천재형 주인공'임에도, 특별히 튀려는 기색 없이 "경박하다"는 수군거림을 감수하면서도 늘 부드럽고 상냥한 이미지를 앞세우는 주인공 '사사쿠라 류'의 매력이 산뜻하게 와 닿는 면도 있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다. 바텐더야말로 본연의 실력과 함께 상냥한 서비스 정신이 겸비돼야 하는 만능맨이 돼야 하니까.

하지만 '사사쿠라 류'는 다소 특별하다. 그가 생각하는 바텐더, 그리고 '바'는 "잠시 쉬어가는 곳"이다. 누구라도 와서 잠시 쉬었다 가며, 한 잔의 술에 인생을 녹여 털어 마실 수 있는 곳이다. 거기에는 저마다 희로애락이 스며든 대화가 있으며, 웃음과 눈물, 그리고 화해가 있다.

"바텐더라는 말의 의미를 아십니까? 바는 막대기, 텐더는 부드럽다, 혹은 상냥하다, 즉 '상냥한 막대기'라는 뜻입니다. 이 나무를 '바'라고 한다면, 이것만으로는 술을 놓는 널빤지가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곳에 '바텐더'가 있기에 바에 텐더, 즉 상냥함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애니메이션에서의 '사사쿠라 류', 원작에서의 상냥하고 가벼운 분위기와는 달리, 꽤 진지하다.
애니메이션에서의 '사사쿠라 류', 원작에서의 상냥하고 가벼운 분위기와는 달리, 꽤 진지하다. ⓒ 후지TV
내 인생의 칵테일, 과연 어디에 있을까?

<바텐더>를 보면, 평소엔 즐기지도 않던 '칵테일'을 목구멍에 채우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 만화를 보면, 서서히 깨닫게 된다. '칵테일' 역시 우리가 자주 마시는 소주처럼 그 가지각색의 투명함에 다양한 이야기가 녹아들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칵테일'을 어려워할 이유도, 그렇다고 굳이 '폼 잡을 때만' 생각할 이유도 없다. 사실 그 점에 대해서는 애니메이션의 오프닝 곡 가사가 꽤 날카롭게 다가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잘난 척하지 말아요. 감추려 하지 말아요. 내 천리안에는 다 보이니까. 당신은 강하지만 부서질 것 같은 마음을 품고 있어요.

차라리 타버릴 것 같은 자극적인 맛은 어때요? 당신을 만족시킬 수 있는 열쇠는 발갛게 된 피부에 떠올라요.


어쩌면 인간이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순간 중의 하나는 '술'과 함께 하는 순간일 것이다. 술 앞에서는 역시 과도한 폼보다는 솔직한 것이 마음 편한 듯하다. 부서질 것 같은 마음도, 차라리 타버리고 싶은 슬픔도, 술 앞에서는 누구나 똑같다. 어쩌면 칵테일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를 만족시킬 수 있는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

'마음 울적한 날에 거리를 걸어보다가' 문득 마실 수 있는 것이 칵테일이며, 그냥 향에 취해 솔직해질 수 있는 것도 칵테일일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의 '바'는 양주와 와인 위주로 운영되면서 칵테일은 구색 맞추기 정도로 취급받는다고 한다. 칵테일의 재료가 되는 그 많은 주류 중에서 국내에서 취급되는 종류는 15% 정도밖에 안 되는 현실도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도 있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알코올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무알코올 칵테일을 가끔 즐기는 편이다. 그중에서도 파인애플, 오렌지, 레몬 등의 주스가 혼합돼 만들어지는, 트로피컬 형태의 '선샤인'을 선호하는 편이다. 독특한 맛을 자랑하는 각각의 과일이 혼합돼 다소 달지만 그래도 시원한 맛을 주기 때문에, 흐리멍덩한 두뇌에 자극을 주기에는 가장 좋은 칵테일이라 생각한다.

그렇듯, 필자 같은 사람도 용감하게 마실 수 있는 것이 '칵테일'이다. 종류도 다양하고 그만큼 맛과 스며든 의미도 다양한 만큼, 어떤 전문가의 말대로 '섞어 마시는 것'에 대한 거부감만 극복한다면 언제든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술이자 음료로 볼 수 있다.

그 안에 삶을 담아, '내 인생의 칵테일'이 된다면, 희로애락을 함께 할 소중한 친구를 얻었다고 볼 수도 있을 듯싶다. '강하지만 부서질 것 같은' 당신, 칵테일은 오직 빛깔만으로도 그런 당신을 언제든 환영해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겨레신문 필진네트워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