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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는 시를 읽을 때 눈으로 읽습니다. 그러나 간혹 마음으로 읽는 시가 있습니다. 물론 눈으로 시를 읽어도 그 느낌이나 울림을 이미지화 하여 받아드립니다. 하지만 가슴을 울리지는 못합니다.

@BRI@가슴을 울린다는 것은 그 시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는 의미이고, 그 속에 빠져 함께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 공감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차원의 경험에서 일어나는 것일 수도 있고, 보편적인 차원의 경험에서 일어날 수도 있지만 그 공감의 정도엔 약간의 차이가 있겠지요.

타향살이를 하던 어느 겨울입니다. 허름한 자취방에 누워 읽었던 시 중에 내 마음을 울린 시가 있었습니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작은 창으로 송송거리며 몰아치는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외로운 소주잔이 방바닥을 뒹굴고 매캐한 연탄가스 냄새를 즐기며 무감각의 상태로 글을 읽다가 다가온 한 편의 시,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 노래'입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가난한 젊은인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왔지만 여전히 가난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여전히 그에게 남은 건 가난과 외로움뿐입니다. 너무 힘들고 외로워 '어머니, 보고 싶어요' 수없이 뇌이며 그리운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가까이 있으면 한 달음에 어머니 곁으로 달려가고 싶지만 마음뿐입니다. 달려가면 따스한 어머니의 품과 정이 듬뿍 들어 있는 된장찌개와 쌀밥이 기다리고 있지만 마음으로만 '어머니'를 불러봅니다.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던 사람들은 한 번쯤 느꼈을 감정들일 것입니다. 나 또한 그런 적이 있습니다. 타향살이에 몸과 마음이 지쳐 모처럼 고향에 가면 어머닌 제 얼굴을 쓰다듬으며 안쓰러워했습니다.

"어이구 내 자석, 얼마나 못 먹고 댕겼으면 얼굴이 요로코롬 까칠해져 뿌렸냐."
"까칠해지긴요. 잘 먹고 잘 지내요."
"혼자 밥 해먹고 사는디 뭐가 잘 먹것냐. 쪼매만 기둘리거라. 후딱 밥상 차려올 테니."

아들을 위해 밥상을 차리러 가는 어머니의 모습에 그만 울컥 목이 매였던 적이 한두 번 아닙니다. '혼자 밥 해먹고 사는디 뭐가 잘 먹것냐'하는 염려의 말엔 너도 어서 장가들어 색시가 해준 따스한 밥 먹고 살아야 할 텐데 하는 마음이 들어 있음을 압니다.

하지만 그 따순밥의 사랑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닐 것입니다. 사랑을 하고 싶어도 주어진 형편 때문에 사랑을 망설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사랑을 이용하여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의 사랑법이겠지요. 돈이 있으면 없는 사랑도 생기고, 돈이 없으면 있는 사랑도 물거품처럼 되어버리는 현실 속에 우리는 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린 간혹 화려하게 치장을 한 사람이나 사랑을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사람에게 사랑은 사치가 아닌가 하는 사고가 있습니다. 사랑하면 멋진 레스토랑이나 분위기 있는 찻집에서 남녀가 이야기하는 모습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알까요? 가끔은 가난 때문에 사랑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가난 때문에, 돈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때 그 마음이 어떨까요. 사랑하는데 왜 못 잡냐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삼자적 입장이고 개인의 마음은 아닙니다. 가난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만나 불행해진다면 그건 더 큰 아픔이 된다는 걸 알기에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속삭였던 사람을 눈물로 떠나보내야 하는 아픔은 그걸 경험했던 당사자만이 알 것입니다.

그러기에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이라고 노래한 시인의 말은 그저 단순한 옛날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지금도 가난하기 때문에 사랑도, 학업도,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도 버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음을 압니다.

사랑이 필요한 계절입니다. 한 번쯤은 가난 때문에 모퉁이 한 구석에 쪼그려 앉아 울고 있는 아이나, 가난 때문에 한숨 섞인 속울음을 삼켜야 하는 사람들을 한 번쯤은, 한 번쯤은 돌아봐야 하는 때입니다. 나와 우리의 이웃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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