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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찍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며 얼굴을 돌려 가렸는데도 이를 찍어서 학교 사진게시판에 올린 경우다. 당사자의 고통은 외면한 채 재미있는 사진이라고 즐거워 할 수 있을까?
ⓒ 임정훈
김 선생님은 사진 찍는 것이 취미다. 쉬는 날이면 풍경이 좋은 곳으로 출사를 나가기도 하고, 학교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종종 카메라에 담기도 한다.

그런데 김 선생님은 아이들의 사진을 찍을 때 아이들이 카메라를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몰카'를 찰칵 찍어버린다.

자고로 사진은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것이 늘 불만이다.

그렇게 찍힌 사진은 어느 순간 여러 교실에서 대형 TV 화면을 통해 공개되기도 하고, 학교 누리집 사진게시판에 올라가 있기도 한다.

이쯤 되면 사진 속 아이들은 애가 탄다. 모델이 된 적도 없는 본인의 사진이 스스로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여기저기 미니 홈페이지며 학교 게시판 등에 공개되고 떠돌아다니는 것이 아이들은 몹시도 싫다.

최근에는 자신의 미니 홈페이지의 방명록과 사진첩을 특정인에게만 공개하는 형태로 바꾸는 아이들이 부쩍 늘어났다. 아무나 자신의 사생활을 들여다 볼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자신의 개인 정보와 인권을 지키려는 아이들의 적극적 의사로 읽는다면 지나친 오독일까?

@BRI@투정을 부리던 아이들도 찍은 사진을 인화해서 나누어주면 좋아하기 때문에 김 선생님은 그러한 아이들의 반응을 '귀여운 짓'이라고 생각한다. 본인도 즐겁고 아이들도 좋아하면 괜찮은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사진을 안 받아도 좋으니 '몰카'의 주인공만은 되고 싶지 않은 것이 아이들의 솔직한 마음이다. 감히 대놓고 이야기를 못할 뿐이다. 괜히 "선생님, 제 사진 찍지 마세요" 했다가 선생님의 눈 밖에라도 나면 저만 손해라는 걸 아이들은 잘 알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종종 아이들에 비해 자신이 가진 권력이 얼마나 크고 무서운 것인가를 잊는다. 은연중에 나는 교사이니까 당연히 그래도 되고 너는 학생이니까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교사와 학생의 소통을 막아서 학교가 인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공간이 되고마는 가장 근원적인 이유임을 교사들은 잘 모른다.

그러기에 나는 교사지만 이래서는 안 되는 것이 있고, 너는 학생이지만 그래도 되는 것이 있다는 것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아이들도 교육 과정을 겪으면서 교사들의 습성을 알게 된다. 때문에 교사들 각자의 성향에 맞추어 눈치껏 응대를 한다.

▲ 대부분의 학교 사진게시판에 있는 사진은 학생들의 동의없이 찍은 "몰카"인 경우가 많다. 물론 게시판에 올리는 것도 동의는 구하지 않았다. 학교 홍보를 위해 게시판에 올려놓은 '몰카'로 인해 속으로만 끙끙대며 상처를 받는 학생들이 있다는 걸 학교는 알기나 할까?
ⓒ 임정훈
진심으로 교사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 예의를 갖추어 '안전모드'를 설정해 두는 것이다. 사제관계가 형식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앞서 말한 김 선생님과 아이들의 관계 역시 그 틀 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진을 인화해서 주면 아이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아이들 몰래 사진을 찍고 그것을 공공연히 공개해도 괜찮은 것이 될 수는 없다.

아이들이 흔쾌히 사진 찍기에 동의를 하고 기꺼이 모델이 되었다고 해도 그것을 타인이나 인터넷 등에 아무렇게나 공개한다면 그 역시 교사라는 이름으로 가하는 폭력일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 학교에서 권력을 가진 주체는 학생이 아니라 교사다. 감히 겉으로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 하는 아이들의 불편한 속내를 읽고 이해하려는 노력에서부터 학교 인권의 물꼬는 트일 것이다.

교사는 언제든 마음 먹기에 따라 폭군이 될 수도 있고 인권운동가가 될 수도 있지만, 아이들은 한결같이 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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