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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온선전물 수거함”이 버젓이 똬리를 틀고 있는 학교의 정체는?
ⓒ 임정훈
눈앞의 저 빛! / 찬란한 저 빛 / 그러나 저건 죽음이다. // 의심하라 / 모오든 광명을!
-유하 '오징어'전문


# 중얼거림 1

대한민국의 불특정 일부 학교, 학생과 교사들이 늘 오가며 인사를 나누는 복도의 벽(壁).

옆구리에 녹슬어가는 자물쇠를 신앙처럼 혹은 신념처럼 굳게 잠근 채 이마에는 가로로 긴 구멍을 결연히 뚫고 '불온선전물 수거함'이라는 명찰을 단 ‘불온한 쇳덩어리’가 있다.

그 불온한 쇳덩어리를 볼 때마다 느끼는 불편함 혹은 못마땅함에 대해 중얼거려 보기로 한다.

# 중얼거림 2

아직은 국민학교라 부르던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불온한 것’을 가져가면 학교에서는 연필이나 공책을 선물로 주곤 했다. 가장 흔했던 것이 ‘불온삐라’. 저 무서운 곳에서 날아 온 것이라는 질 낮고 조악한 내용이 담긴 종이 쪼가리를 그렇게 불렀다. 친구들은 종종 그걸 주워 와서 연필이며 공책을 받아가곤 했다. 불온함으로 일용할 양식을 마련하던 시절이었다.

# 중얼거림 3

불온하다는 것은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뜻이다.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것은 ‘시키는 대로 순순히 잘 듣지 않으며 말이나 태도가 공손하고 부드럽지 않은 모양’을 말한다. 그러나 사전적 의미의 온순함(?)과는 달리 우리 사회에서 ‘불온하다’는 것은 이보다 크고 깊은 ‘어떤 혐의’를 갖는다. 그것은 이즘(ism) 혹은 이데올로기의 문제와 결합돼 있다.

# 중얼거림 4

‘불온’이라는 단어가 붙는 말 가운데 흔하고 익숙한 것에는 ‘불온서적, 불온문서, 불온잡지’ 같은 것들이 있다. 이 불온한 것들과 친해지면 마침내 ‘불온사상’을 갖게 된다는 추억의 개그도 있다.

역설적이게도 지나간 한 시절에는 ‘상아탑’이라 부르던 곳의 백성들이 불온해지기 위해 갖은 수고를 마다하지 않기도 했다. 그들은 정말 모두 불온한 사람들이었을까? 그래서 결국 그들은 불온한 ‘무엇’이 되고 말았을까?

# 다시 중얼거림 1 그리고...

처음으로 다시 돌아오자.

그렇다면 세기가 바뀐 지금 불온선전물 수거함이 버젓이 똬리를 틀고 있는 학교는 수거해야할 불온한 그 무엇이 그렇게도 많다는 것일까? 많고 적음을 떠나 있기는 한 것일까? 불온한 것들의 거처가 돼 버린 학교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불온선전물 수거함이라는 말은 안내나 설명이 아니라 명령이요 강요다. 명령과 강요의 대상은 당연히 학생이다. 학생들에게 학교 안의 불온한 무엇인가를 찾아내어 신고하라는 암묵적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한다.

억압과 통제의 대상인 학생들이 감시의 주체이자 명령의 수행자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구성원 모두를 감시의 주체이자 대상으로 만들어버리는 이 낡고 불온하기 짝이 없는 쇳덩어리의 감시 체제가 나는 몹시도 불편하고 못마땅하다.

‘수거’해야 하므로 ‘내’가 아니라면 ‘너’는 불온해야 한다. 불온선전물 수거함이 수거되지 않는 이상 우리 모두는 혹은 나와 너 가운데 하나는 불온하다는 무서운 묵계에 우리는 동의해야 한다. 학교는(세상은, 삶은 그리고 다른 무엇은) 그 동의를 전제로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삶의 중심과 주변 어딘가에서도 이런 감시 시스템이 작동되고 있을 지 모른다. 불온해지고 싶지 않다면, 어느 순간 수거당하고 싶지 않다면 “의심하라, 모오든 광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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