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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받고 무단결석하면 학생회장 출마도 못해

▲ 어느 학교의 학생회장 선거 공고문
ⓒ 임정훈
시기의 차이는 다소 있지만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무슨 선거냐, 하면 중·고등학교 학생회장을 뽑는 선거다. 학생회란 학생들의 의사를 민주적 절차에 따라 수렴하고 이것이 학교 정책에 반영되도록 하는 학생들의 자치 기구이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민주주의의 절차와 과정을 체험하게 되고 논리를 갖춘 토론을 하며 자신들의 삶의 방향과 영역을 만들기도 한다.

물론 학생회가 정상적으로 기능을 한다는 가정 아래 그렇다는 뜻이다. 지금처럼 학생들의 의견 수렴과 반영은 고사하고 학생회의 성립 자체가 형식에 불과한 상황에서는 꿈같은 이야기다.

비록 학생회가 제 기능을 하고 있지는 못할지라도 학생회장을 뽑는 일은 학생들에겐 매우 즐겁고도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학생회장 후보의 자격 기준이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많아 문제다.

이로 인해 학생회장이 돼 보겠다고 출마를 꿈꾸던 아이들은 크고 작은 상처를 받거나 학교를 불신하는 등 트라우마(trauma, 정신적 외상)에 가까운 후유증을 겪게 된다. 효율성만을 좇는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교칙 내세워 '사람 대접' 아닌 '학생 취급'만 해서는 안 돼

▲ 학생들의 피선거권을 침해하는 차별적 학생회장 출마 규정
ⓒ 임정훈
일선 중·고교의 학생회장 선거에서 오래 전부터 가장 크게 문제 제기가 된 것이 성적과 관련한 규정이었다. 성적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지 않으면 후보로 출마를 할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다.

즉, 공부를 못 하면 학생회장으로 나설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공부를 잘 하고 선생님들의 의견에 잘 따르는 '범생이'에게만 기회가 있었다.

이를 두고 성적을 기준으로 출마의 자격조차 주지 않는 것은 차별 행위에 해당한다는 문제 제기가 계속되었다. 그 결과 다수의 학교들이 이를 받아들여 성적 규정을 없애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반인권적 규정은 여전히 학생들의 피선거권을 제한하고 있고 이것은 차별을 통한 권리의 제한이라는 문제를 낳고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징계'나 '무단결석'과 관련한 규정이다. 경기지역 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대다수 학교에서 학생회장 후보 출마 자격 기준에 징계나 무단결석과 관련된 조건을 내세우고 있었다. 얼핏 보면 매우 합당한 듯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시행되는 '교칙'은 민주적·합리적 과정을 거쳐 구성원(학생, 교사, 학부모) 모두가 함께 만든 규정이 아니다. 학생을 통제와 억압의 대상으로 보고 일방적으로 강제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들이다.

이러한 교칙을 지키지 않아 징계를 받았다고 해서 문제아의 낙인을 찍고 기본적인 권리마저 박탈한다면 학교가 말하는 "민주 시민 양성"은 불가능하다.

또 교칙이 최선의 합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어겼다는 이유로 학생에게 교육적 위로와 격려 대신 체벌과 징계를 통해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학교는 학생에게 기회를 주는 것을 우선으로 삼아야지 그것을 박탈하는 것을 앞세워서는 안 된다.

무단결석을 했다면 충분히 해명을 듣고, 만약 그것이 적절하지 못한 행동이었다면 그에 대해 '교육적 치료'를 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학교와 교사의 몫이다. 징계와 무단결석을 이유로 '사람대접'은 고사하고 '학생 취급'만 해서는 안 된다.

학교는 학생의 상처 치료하는 '할머니의 약손' 같아야

▲ 진해 세화여고의 투표 모습
ⓒ 진해선관위
학생회장의 출마 기준은 해당 학교의 재학생이면 족하다. 1학년이든 2학년이든 학생회장이 되고자 하는 학생은 실천가능한 공약을 준비해 학우들 앞에 나서면 되는 것이다.

유권자인 학생들은 후보자들의 공약과 됨됨이를 살펴 기꺼이 한 표를 행사하면 된다. 후보로 나온 학생이 학생회장으로서 적절치 않다면 그 역시 유권자인 학생들이 판단할 몫이다.

후보로 나온 학생이 이미 교칙 위반을 이유로 합당한 징계를 받았다면 그로써 용서를 받은 셈이다. 그것을 3년 동안 전과 기록처럼 아이들에게 주홍글씨로 새겨 넣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학교가 먼저 나서서 반인권적 기준으로 차 떼고 포를 뗀 나머지 후보 등록이 아예 안 되거나 겨우 조건에 충족하는 단일후보가 얼떨결에 낙점되는 비극이 당연한 것처럼 돼서도 안 된다(물론 가장 시급한 일은 학생회를 법제화하여 그에 맞는 권한과 역할로 자치력을 갖게 하는 것이다).

학생회장에 입후보하려던 아이가 지나간 징계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상처받은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원망과 분노의 빛깔이 먼저일 것이다.

학교는 그것을 치료해 주는 할머니의 약손이 되어야 한다. 거친 듯하지만 한없이 따뜻한 바로 그 약손 말이다. 그래야 아이가 자신의 지난 잘못을 깨달을 수 있고 너그러이 품어주는 학교의 모습에서 참다운 삶의 가치를 배울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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