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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이 아닌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청소년들의 마음을 담은 버튼(2005년 청소년 인터넷 언론 <1318 바이러스>에서 제작, 판매).
ⓒ 임정훈
학교 급식 파동의 여파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학교 급식과 '엄마표 도시락' 사이에 식중독이 있는 형국이다.

뒤를 이어 '사랑의 매'를 가장한 교사들의 학교 폭력도 만만치 않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댓글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이를 두고 설왕설래한 사람들은 입과 혀가 얼얼할 지경이다. 바야흐로 학교(교육)의 수난 시대.

그러나 이 야단법석이 어떤 문제도 속시원히 해결해 줄 수는 없어 보인다.

CJ푸드시스템이 학교 급식업에서 손을 뗀다고 해서 학교 급식에서 식중독이 없어질 리 없다. 교사가 보란 듯이 아이를 닦아세우는 체벌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들이 상처받고 인권을 침해당하는 일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사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다. '학생'이기 전에 '사람'인 것이 먼저다. 학생을 사람으로 생각하고 사람의 먹을거리를 준비했다면 식중독 파동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아이들을 그저 학생이 아니라 저마다 소중한 가치를 지닌,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폭력은커녕 눈빛도 함부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학생을 장삿속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상술과 교권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의 그릇된 행위마저 정당화하려는 일부 교사들이 있는 현실에서 아이들은 늘 희생양일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아이들은 사람이 아니라 돈벌이의 대상이고 분풀이의 샌드백일 뿐이다. 아무리 사람의 가치를 말하는 인권의 경전을 읽어줘 봐야 듣지 못한다.

몇 해 전 받은 어떤 연수에서 강사는 이렇게 말했다.

"헌법 전문의 '국민'이라는 단어를 '학생'으로 바꾸어 아이들과 함께 읽어보라."

나는 그 말을 학생들도 당당한 국민으로서 자격과 지위를 가진 사람임을 알게 하라는 것으로 이해했다.

지금 우리가 할 일도 그와 같다. '학생'이라는 어른의 말, 차별의 말 대신 '사람'이라는 존중의 말, 인권의 말을 먼저 생각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다.

학생을 사람으로 존중하는 인권의식 없이는 오늘의 이 참담함은 영원한 기시감(deja vu)의 판타지와 도돌이표의 반복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 '학생'이라는 차별의 말 대신 '사람'이라는 존중의 말을 먼저 생각하고 이를 실천하는 일을 멈춰서는 안된다.
ⓒ 임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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