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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12일) 저녁 우리 집의 상 차림
ⓒ 정판수
위의 사진은 어제 저녁 우리 부부가 맞이한 밥상 모습이다. 특별한 일이 있어 차린 밥상이 아니라 일상적인 밥상의 모습이다. 그런데 솔직히 부끄럽다. 매일 매일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본다면 부유한 이의 자랑처럼 비칠 것이기에. 또 요즘 한창 각광받는 참살이(‘웰빙’의 고친 우리말) 열풍에 가세하려는 듯 보여서다.

그런데도 이런 글을 올림은 시골에 살면 그리 비싼 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주변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것들로 꾸민 밥상이기에 함께 생각해보자는 뜻에서다. 이제 사진을 한번 보자.

가운데는 배추쌈이 놓여 있다. 바로 우리 밭에서 약을 딱 한 번 치고(아내의 말) 키운 배추를 솎아내 살짝 데쳐 싸먹으려고 올려놓았다. 쌈이라면 무조건 좋아하는 내 식성을 아내가 배려한 것이리라.

다음은 반찬을 오른쪽 3시 방향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살펴보자.

① 도라지 무침 - 이 반찬의 재료인 도라지는 5일장인 입실장에서 사온 것을 무친 것이다. 단골이기에 늘 같은 장소에서 파는 할머니가 직접 재배한 도라지임을 잘 알아 중국산을 사먹을 염려는 없다.

② 열무 물김치 - 열무는 우리 마을 산음댁 할머니가 당신들 먹기에 남으니 우리더러 김치 담가 먹으라고 준 것이다. 낯선 마을에 이사 온 우리 부부에게 가장 많은 도움을 아낌없이 주신 분들이시다. 그 마음만큼 맛이 별나다.

③ 계란찜 - 계란은 울산에서 사시다 3년 전에 이웃인 늘밭마을에 터를 닦은 이 사장댁에서 사온 유정란을 찐 것이다. 집 뒤 공터에 철조망을 쳐놓고 닭을 키우고 계시는데 아주 자유롭게 자연 속에서 자란 닭들이 알을 낳았다. 함께 곁들인 파와 양파는 우리 마을에서 얻은 것이고, 당근은 입실장에서 사온 것이다.

④ 총각무 김치 - 구어댁 아주머니가 갖다 주신 총각무를 썰어 담근 김치다. 몸이 좋지 않은 어른을 병원에 태워준 데 대한 보답인데 직장 가는 길에 모셔다 준 것이니 너무 마음 쓰지 말라고 하지만 매번 인사를 한다.

⑤ 젓국 - 쌈에 곁들이는 젓국은 집과 직장을 오가는 길에 있는 울산시 북구 강동동 유포마을에서 산 젓국이다. 울산 사람들은 이 유포 멸치젓의 명성을 익히 잘 알고 있다. 나는 이곳의 멸치액젓도 좋아하지만 통멸치젓을 더 좋아한다.

▲ 제핏잎(산초잎) 장아찌
ⓒ 정판수
⑥ 제핏잎 장아찌 - 봄에 아내가 뒷산에 올라가 딴 제핏잎(산초잎)을 고추장에 담아두었다가 밑반찬이 딸리거나 입맛이 없을 때 내먹는다. 산초잎 특유의 ‘알싸한’ 맛을 두려워하는 이들은 걱정 마시라. 그 맛은 사라지고 대신 입맛을 돋우는 맛이 가미돼 있다.






▲ 민들레 김치 - 요즘 끼니때마다 빠지지 않는 반찬
ⓒ 정판수
⑦ 민들레 김치 - 이른봄 아직 뭘 심기 전의 밭을 돌아다니며 캔 민들레잎과 뿌리를 재료로 하여 담가 놓았는데 처음 먹는 이들은 약간 쓴 맛이 느껴져 꺼리기도 하지만 우리 부부는 없어서 못 먹는다.

⑧ 호박볶음 - 올해 호박을 심어놓았지만 누런 호박은 다섯 개만 수확했을 뿐 결과가 형편없었는데, 가리늦게 꽃이 피더니 어느 새 세 덩이가 제법 먹을 만큼 자랐다. 하나는 우리가 볶아먹고 두 개는 울산에 있는 아는 이에게 갖다 주려고 가방에 넣었다.

⑨ 서리태밥 - 껍질은 검지만 속이 파랗다고 하여 속청이라고도 불리는 콩 서리태를 넣은 밥이다. 역시 입실장에서 산 것인데 요즘 밥 지을 때마다 넣어 먹는다. 맨밥보다 맛이 있고 건강에도 좋다하니 ….

⑩ 우거지된장국 - 우리 마을에서 전통 된장을 담그는 된장아주머니에게서 산 된장에다 솎아낸 배추를 넣어 끓인 국인데 그 구수함은 맛본 이만이 느낄 수 있다. 오늘 아침에도 밥상에 올라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어떤 이는 국 하나에 반찬이 여덟이나 되다니 하고 놀랄 것이고, 어떤 이는 찬이 여덟이나 되지만 달걀을 제외하곤 동물성이 없으니 열량 면에서 부족하지 않느냐고 할 것 같다.

그런데도 난 우리 집 밥상을 '황제의 밥상'이라 칭한다. 배부르기 위해서도 건강을 위해서도 아니고 오직 우리 부부가 즐겁게 식사할 수 있는 밥상이기 때문이다. 사온 것도 있지만 직접 캐온 것과 이웃이 준 것들로 맛있게 먹을 수 있어 매일 식사 때만은 황제도 부럽지 않으니 이만하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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