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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르또노가 이탈신고가 돼 있음을 알려주는 문서.
ⓒ 고기복

20일 늦은 저녁. 외국인등록증 문제로 이날 오전에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갔던 하르또노(Hartono)와 아낭(Anang)이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거리면서 사무실에 들어섰다. 사무실에 들어서던 아낭이 하르또노를 가리키며 뜬금없이 "부론한"이라고 말했다.

"부론한?"
"부론한! 여기 부론한 사람." 아낭의 말이었다.

둘이 사무실에 오기 전인 이날 점심 때를 막 지날 무렵, 하르또노가 다니던 회사에서 상식 밖의 전화를 받았던 터라 두 사람이 출입국에 갔던 일이 잘 됐는지 궁금했다.

"그나저나 많이 늦었네요? 외국인등록증은 받았어요?"
"출입국에서 두 시간 보호실에 있었어요. 거기서 외국인등록증 기다렸어요."

그제야 나는 두 사람이 퇴사한 회사에 압류된 외국인등록증을 돌려받느라 출입국관리사무소 보호실에서 기다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부론한"이 "불온한"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불온한"이라는 말은 외국인들이 쉽게 접하는 단어가 아니다. 하르또노가 누군가에게서 "불온한" 사람으로 취급받으며 배운 단어였던 것.

두 사람에게 물었다. "불온한이 무슨 말인지 알아요?" 그러자 아낭이 다시 키득거리며 답했다. "알아요. 회사에서 하르또노에게 '불온한'이라고 했어요." 굳이 어떤 사람이 그렇게 불렀는지 물어보지 않았지만, 아낭은 상황으로 미뤄볼 때 "불온한"이 일종의 욕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르또노는 1년 넘게 일하던 회사에서 프레스 작업 도중 오른손 중지손가락을 잘리는 사고를 당했다. 그런데 입원 치료 중이던 그에게 회사에서 "걸어 다닐 수 있으니 일을 시작하라"며 퇴원시켰다. 그러나 하르또노는 손가락이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프레스만 봐도 겁이 난다"며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하지만 일손이 필요했던 회사에서는 하르또노에게 "회사 옮길 생각하지 말고 그냥 일하라"며 퇴사 처리를 해 주지 않았다.

결국 하르또노는 퇴사 문제로 수원지방노동청 고용안정센터를 찾아갔다. 고용안정센터에서는 "하르또노의 경우 퇴사 사유에 해당된다"면서도 "회사에서는 하르또노가 퇴사하면 산재도 받을 수 없다'고 하는데 그래도 사업장 변경을 할 건지 하르또노에게 물어봐 달라"고 나에게 전화했다.

산재 처리 거론하며 퇴사 막고, 거짓으로 '이탈신고'까지

전문 직업상담원이 산재 관련 규정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아, 난 "퇴사해도 산재처리를 하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해주면서 "하르또노가 굳이 퇴사하겠다고 하는 건 프레스 사고를 당했던 입장에서 다시 프레스 작업을 하는 것이 겁이 나서 그러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서 "그런 건데, 회사에서 굳이 일을 시키겠다고 하다가 다시 사고라도 나면 서로 손해겠지요"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그렇게 해서 고용안정센터를 거쳐 퇴사 처리가 된 하르또노의 여권과 외국인등록증을 돌려주지 않았다. 이에 대해 고용안정센터를 통해 돌려줄 것을 요청했으나, 회사는 여권만 돌려주고 외국인등록증은 돌려주지 않았다.

퇴사했지만 외국인등록증을 돌려받지 못한 하르또노는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외국인등록증을 새로 발급받으려 했다. 하지만 나는 분실한 것이 아닌 이상, 재발급 받는 것보다는 출입국의 도움을 얻어 돌려받는 것이 상책이라고 안내했다.

그 와중에 적법한 절차를 거쳐 퇴사한 하르또노에 대해 회사에서 임의로 '이탈신고'를 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노동부 고용안정센터에서 발급한 '구직필증'을 제시해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이탈신고나 외국인등록증 압류 등 문제에 대해 출입국에서 회사에 연락해줬는지, 내게 하르또노가 다니던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전화상으로 사장 부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람은 억지를 부리며 막말을 퍼붓기 시작했다.

"당신, 어느 나라 사람이야. 대체 돈 얼마 처먹고 그 짓 해? 세금은 내고 살아? 가서 다 뒤집어엎을 거야. 나, 그 사람들 데려온다고 백만원 넘게 들었어."

불행하게 산재를 당해 퇴사하겠다고 한 하르또노에게 "퇴사하면 산재 처리 안 된다"고 강변하고, 적법한 절차를 거쳐 퇴사했는데도 "이탈했으니 불법"이라고 억지 부르는 것 정도는 양반이었다.

그러니 회사 측에서 보기에 평소 외국인등록증이나 여권 등 신분증을 회사 소유인 양 갖고 있다가 나중에 돌려주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곧이곧대로 말을 듣지 않는 하르또노는 그야말로 "불온한" 녀석이었던 것.

게다가 옆에서 편드는 사람 또한 그 사람들 입장에서 불온하게 보이는 건 당연지사. 그들이 나를 불온한 외국인이나 진배없다고 치부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온한" 사람 하르또노와 그 친구 아낭은 그 말이 어린아이가 떼쓰듯 억지 부리는 것인 줄 아는지 우리말로 "이거 부론한"이라며 키득거린다.

덧붙이는 글 |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제 20조 3항에 의하면, 출입국법 위반업체는 사실발생일로부터 3년간 외국인 고용을 제한받게 돼 있다. 최근 전국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는 출입국관리법 제 33조 2에 의하면 '외국인 등록증' 등의 신분증은 반드시 본인이 소유하게 돼 있음을 홍보하고 있다. 만약 이를 위반할 시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94조)에 처하게 돼 있는데, 위 업체는 외국인력 고용제한 업체임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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