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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 살 때 아들놈을 업어 키웠던 사람이 연수생으로 한국에 왔다는 소문만 듣고 있었는데, 이번에 연락이 왔어요. 그런데 내일 저녁부터 휴가 시작인데 회사에서 기숙사에만 있으라고 하면서 외부 출입을 허락하지 않는대요. 그러면서 그 사람이 우리 애를 보고 싶은데 아쉽다고 하네요. 사람 미칠 노릇 아네요?"

10여 년 전 베트남에서 살 때, 어린 아들의 보모 역할을 했던 베트남 여성이 해외투자법인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했는데, 만나보지 못하다가 휴가 때나 만날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뜻밖의 소식에 놀랐다는 상담실장의 말이었다.

"완전히 인신 구속이네요. 휴가철에 기숙사에만 있으라고 하는 게 말이 되나요?"
"그게 베트남에서 출발할 때, 외부 출입 등에 관한 것을 계약하고 나왔다고 하네요."
"그렇게 계약 말하면서 법 잘 지키는 회사면 최소한 근로기준법이라도 지키라고 하세요. 그 사람들 어떻게 지내는지 안 봐도 비디오네요."
"참…, 외국인들 인권이 많이 나아졌다는 요즘도 버젓이 이러니, 환장하겠네요."

상담실장이 그런 일을 한두 번 겪는 것도 아닐 텐데도, 남다르게 분통을 터트리는 건 자식을 키워줬던 이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섞여 더욱 그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평균 12시간 2교대, 휴무에도 기숙사 생활 강요, 사내 CCTV로 일상생활 감시, 여권 등의 신분증 압류, 저임금, 강제노동의 위협에 시달리는 해외투자법인 연수생들이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일반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다.

상담실장 아들의 보모였던 이가 일하는 회사 말고도, 지지난 주부터 우리 쉼터에는 해외투자법인(해투) 연수생들의 강제적립금과 최저임금법 위반 등의 문제로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관련업체는 지방에서 상당한 규모의 사업체를 운영하며 금년의 경우 어떤 명목인지 모르지만 400억이 넘는 지원을 정부로부터 받았다고 하는데, 베트남 현지법인을 운영하며 연수생들을 데려 왔다고 했다.

그 회사는 해투 법인 연수생을 데리고 온 이유가 연수 목적이 아닌 노동을 시키기 위해서라는 데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해당업체는 국내 근로기준법과는 무관하게 급여를 지급하고, 위와 같은 행태를 시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해투 법인 연수생은 과연 어느 나라의 법적용을 받을까?

"국제법 질서에 있어서 각국의 법령은 그 영역내의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을 뿐이고 다른 국가의 영역내에서까지 적용·집행될 수 없다는 속지주의 법리가 일반적으로 승인되고 있다."- 노동 ok(한국노총상담자료) 인용

위의 말을 풀어 해석하면, 국내에 소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엔 당연히 우리나라의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역으로 우리나라 업체가 해외에 해외투자 법인을 세웠다면, 역시 현지법을 따라야 한다. 해외현지법인은 소재국에서 법인격을 부여받은 권리주체이기 때문이다.

해투 법인을 운영할만한 회사들은 보통의 경우 법 지식에는 도통한 변호사들을 통해 법인을 세우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지 않고, 해투 법인 노동자들에 대해 상식 밖의 처우를 하는 것은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악덕 자본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또한 이러한 악덕 자본의 배를 채울 수 있도록 눈 감고,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하는 해당부처 역시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그나저나 우리 상담실장의 아들은 이번 여름에 자신을 업어 키웠다는 보모를 만날 수 있을까? 당연히 그러길 바란다. 휴가 기간이 아니라도 업무 외적인 시간에 회사가 직원의 사생활을 구속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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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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