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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그 속을 뒤집어 보지 않고서야 알 수 없는 것이 사람 마음인지라 사람을 만날 때마다 섣불리 상대방을 판단하지 않으려고 조심, 또 조심하지만, 한 번 만나고도 생각은 벌써 한 달음에 앞서 달려가는 경우를 경험하곤 합니다. 그러한 판단은 시간이 지나면서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혼란을 겪기도 합니다.

지난주 저는 이주노동자의 '자발적 귀국과 사회재통합 프로그램 컨소시엄'의 지원을 받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중부 자와 출신의 귀국 이주노동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들과의 만남에 앞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Jakarta)와 스마랑(Semarang)에서 로니 등 노동운동을 하는 두 명의 지인과 함께 인도네시아 이주노동부 해외인력송출담당 부서장과 그 직원들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인도네시아 정부의 송출비리 근절 노력 등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정책 담당자들과 인력송출 브로커들과의 연계 고리를 끊을 수 있도록 시민사회단체에 의한 계속적인 모니터링과 행정절차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 인도네시아 이주노동부 송출담당 관계자들과의 만남 후
ⓒ 고기복
참 세상이 좁아졌다는 것을 느낀 건 그날 저녁 한국에 전화를 하였을 때, 우리가 이주노동부 관계자들을 만났다는 사실이 이미 다른 누군가에 의해 한국에 전해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소식을 접한 우리 쉼터 인도네시아 공동체 고문에 따르면 전화 건 사람이 "용인쉼터에서 온 사람이 한국말을 하는 사람과 함께 이주노동부를 방문했다. 그 사람(한국말을 하는 인도네시아인)은 브로커라는 말이 있다. 이용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는 급하게 끊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전화를 하며 '픽'하고 웃고 넘겼습니다. 당시 이주노동부에 함께 들어간 사람 중에 우리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뻔한 노릇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날 자카르타에서 일을 마치고, 야간열차를 타고 인도네시아 전국노조(SPN, Serikat Pekerja Nasional)의 쁘라보오(Prabowo) 변호사와 함께 중부 자와의 스마랑으로 향했습니다.

열차를 타기 전, 비행기를 예약했는데 성수기인 줄 모르고 예약확인을 하지 않아 예약이 부도나고, 낮에 표를 끊었던 열차도 놓치는 등 우여곡절을 겪고 겨우 출발할 수 있었던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허물없이 하며 밤을 새웠습니다. 그 와중에 자연스럽게 전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전화를 한 사람은 로니가 브로커라는 말을 한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요?"
"이미 알고 있겠지만 사실 그런 소리 많이 듣습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전화를 한 사람이 의심스럽거든요."

"어떤 면에서 그렇지요?"
"우리가 만났던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먼저 이주노동부 공무원들에게 로니가 무슨 말을 했습니까? 한국에 가기 위해 대기하는 예비 이주노동자들에게 근로계약이 성사되면 송출비리를 없애기 위해 신문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공개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공무원들은 공개를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공무원들은 송출과정의 모든 일을 투명하게 하겠다는 약속을 할 수 있다고 하자, 로니가 한 말이 뭡니까? '약속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증거가 필요하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에게 로니는 시시콜콜 시비를 거는 껄끄러운 사람인 것입니다."

"그럼 노동부 직원 중에 한 명이 전화를 했다는 말인가요?"
"단정 지어 말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의 커넥션은 있겠지요? 사실 더 의심 가는 사람은 인도네시아인들이 아닌 한국인들입니다. …1년 동안 한국으로의 인력송출이 중단되면서 인도네시아에서 송출비리에 연계된 피해사례를 살펴보면 너나 할 것 없이 한국에서 나온 자료를 갖고 다니면서 큰소리친 사람들에게 당한 것입니다.

지난 6월에 로니를 통해 제가 송출비리 피해자로부터 확보한 자료는 한국 관계자들만 볼 수 있는 자료였는데, 어떻게 인도네시아 구석구석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인들 손에 쥐어져 있는지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입니다. 그런 이유들이 한국인들에 의해 로니가 모함을 받는다는 증거입니다."
"로니가 이미 거추장스런 거물이 됐군요."

▲ 출국을 앞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사전 교육 중
ⓒ 고기복
쁘라보오는 로니와 오랫동안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인지라, 로니를 두둔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야간열차를 타고 스마랑에 도착한 것은 연착으로 예정보다 늦은 다음날 새벽 5시경이었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차를 타고 이동했던 로니는 우리를 마중 나와 주었습니다.

약간의 휴식을 취한 후, 식사를 하며 다시 전화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셋 모두 모였습니다.

"로니, 우리가 어제 재미있는 이야기 했어요. 로니도 직접 들었을 법한 이야긴데…." 살짝 웃으며 건네는 말에 쁘라보오가 거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자네가 돈 많이 벌었단다."
"하하, 그런 소린 한국에서 돌아와서 이 일 할 때부터 들었는데, 예전에는 인도네시아 정부측 공무원들로부터 들었는데, 이젠 인도네시아 사람들 중에도 그런 말하는 사람들이 있고, 한국 사람들 중엔 더 많은 것 같습니다."

"혹시 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는 거 아닌가요?"
"공무원들은 처음에 제가 이 일을 할 때, 'TKI(이주노동자) 주제에 무슨 일을 하겠다고 설치냐'고 애당초 무시했어요. 그런 시각은 인도네시아가 해외인력 송출업이 성행한 지 한 세대가 지나고 있는데도 이주노동자들에 의한 시민운동이 제대로 뿌리를 못 내린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한다는 위기의식에서 출발합니다."

"같은 운동을 하는 단체에서도 말이 나오던데. 가령 에꼬(Eko)건 같은 경우는 의심 살 만한 사건 아닌가요?"

에꼬는 이주노동자 출국 전 교육을 기획하다, 교육비용을 낸 수백 명의 사람들의 돈을 갖고 사라졌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현재 그는 미국에 있다고 합니다. 그 일로 로니는 에꼬와 가까웠다는 이유로 다른 NGO 단체 활동가들로부터도 자주 공격을 당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짐짓 물었습니다.

"에꼬와 제가 한통속이라면 제가 여전히 이곳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잘못이 있었다면 경찰조사라도 받았겠지요."
"그럼 로니가 말하는 출국 전 한국어교육은 어떤가요? 귀국 이동노동자들과 함께하는 한국어교육이 다른 송출브로커들과 다른 점이 무엇이지요?"
"지금 인도네시아에서 행해지는 한국어 교육은 어딜 가나 부실합니다. 반면에 비용은 예비이주노동자들에게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이윤을 목적으로 끼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고위 공무원 하던 사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출국 전 한국어 교육을 KOICA(한국국제협력단) 같은 단체에서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운영하는 교육 기관에 봉사단을 파견해서 가르치면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들이나 브로커들이 사라진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합니다. 그런 제가 브로커들에겐 자기들 밥줄을 끊으려는 사람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치 경찰이 취조라도 하듯 물었지만, 로니는 막힘이 없이 자신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로니는 한국 정부가 인도네시아의 비리 운운하며 일 년 동안 인력송출 제한을 했던 것도, 찬찬히 살펴보면 엄연히 '가진 자의 횡포'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예로 인도네시아 정부는 인력송출 제한이 걸렸던 지난 2005년부터 올 초까지 송출을 빌미로 한 인도네시아 사기꾼들을 소탕한 반면, 한국정부는 브로커에게 이용될 수 있는 중요한 문건들을 인력시장 뒷골목으로 빼돌리는 현실에는 눈감았다는 것입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던가요? 로니는 자신을 두고 시민운동가가 아닌, 브로커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속속들이 아는 것 같았습니다. 덕택에 우리 쉼터에 전화를 했던 사람이 의도했던 바와 달리, 로니는 목소리를 높여 말합니다. "이주노동이 한 세대가 가고 있는데,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면 이 땅엔 소망이 없습니다"라고.

▲ 출국을 앞두고 쌓아둔 이주노동자들의 가방들
ⓒ 고기복

덧붙이는 글 | *로니는 정부관계자나 여타 기관을 방문할 때 언제나 자신을 NGO 활동가라고 소개했다.

*4편으로 탐방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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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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