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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인봉 전 한나라당 의원이 기자들에게 행한 성접대 내용이 수록된 판결문.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오마이뉴스>가 최초 보도한 것이 아니다. 다 아는 내용 아니냐?"

지난 5일 '정인봉 전 의원, 16대 총선 앞두고 방송사 기자들에게 수백만원 성 접대' 기사를 출고한 뒤에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 중 하나다. 이 기사에는 '단독'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이를 두고 일부 기자들과 의원들은 "기자들에 대한 향응 제공 문제로 의원직을 상실한 것은 이미 다 아는 내용"이라고 했다. 혹자는 "2차로 단란주점에 가서 술을 마신 것도 성 접대냐"며 의아해했다.

"단순히 술만 마신 게 아니라 업소 여종업원들과 모텔에 가서 성 접대를 했다"는 설명을 해주고 나면 다시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 "아, 그랬구나! 정말 모텔까지 간 거야?"라는 반응과 "그래, 그것도 다 알고 있었다"는 반응이다.

사실 정인봉 전 의원에 대한 취재를 시작하게 된 배경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 때문이었다. 정인봉 전 의원의 송파갑 공천이 확정됐던 지난달 30일, 이경재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이 국회 기자실을 찾아왔다.

이 위원장은 정 전 의원이 2000년 4·13 총선에서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전력'에 대해 "언론인들과 식사를 한 것이고, 그 당시에는 가벼운 관례였는데 중대한 선거법 위반으로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의 설명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과 판이하게 달랐다. 기사를 쓰기 위해 당시 관련 기사를 검색했다. 그러나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보도된 기사를 찾을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기사는 '기자들에 대한 향응 제공' 정도로만 표현하고 있었다.

국민들만 몰랐던 '이미 알려진' 성접대

정 전 의원을 선거법 위반죄로 기소했던 박준선 변호사 역시 "검사 시절 수사 내용은 말해 줄 수 없다"며 입을 닫았다. 그가 판결문을 가지고 있을 리 만무했다.

다른 경로를 통해 판결문을 찾아 나섰고, 우여곡절 끝에 정 전 의원에 대한 1심 판결문을 손에 넣었다. 판결문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었다. '다 아는 내용'이었는데 왜 기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을까?

그랬다. '다 아는 내용'은 당시 정치부나 검찰을 출입했던 일부 기자들과 일부 국회의원들, 즉 '선수'들만의 것이었다. 당시 정 전 의원에 대한 기사를 썼던 한 기자는 "너무나 지저분한 사건이었고, 기자가 개입돼 있어서 '성 접대' 부분을 명시하기가 어려웠다"며 "그래서 당시 기자들은 '향응 제공'이라고만 표현했다"고 귀띔해줬다.

'선수들만의 것이었다'는 말은 곧 '다 아는 내용'을 정작 알아야 할 권리가 있는 국민이나 유권자들은 모르고 있었다는 말과 같다. <오마이뉴스>가 '단독'이라는 꼬리표를 붙여서 기사를 출고할 수 있었던 이유다.

파문은 예상보다 컸다. 기사가 처음 보도됐을 때만해도 당 지도부는 "우리도 금시초문"이라며 "이제와서 어떻게 하겠나, 국민들이 판단할 문제"라고 뒷짐을 졌다. 정 전 의원의 경우 "한 두번의 실수보다 당에 대한 공로가 더 크다"는 것이다. 지방선거 압승에 따른 '오만'으로 비춰졌다.

당이 정 전 의원에 대해 '음참마속'을 단행한 것은 기사가 나간 지 5일 만이었다. 비난 여론에 등을 떠밀려 내린 결정이었다. 이미 '성희롱당'에 데일만큼 데인 한나라당이다. '성접대당'이라는 불명예까지 감당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산너머 산이었다. 한나라당은 송파갑 재보선의 원인을 제공한 맹형규 전 의원에게 공천을 줬다. '후보 등록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불가피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이를 두고 한 소장파 의원은 "시간이 없었던 게 아니라 마음이 없었던 것"이라고 꼬집었다. 공천심사위원인 박형준 의원이 '대안 후보'를 만들어 제출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한 당직자는 "시간상 다른 후보에 대한 검증이 힘들었다면, 차라리 후보를 내지 말아야 했다"며 "'한나라당 때문에 재보선을 하게 된 지역이니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통큰 정치를 보여줬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한나라당, 의석 하나에 그리 목매야 하나

전체 299개 의석수 중 한나라당은 현재 123석이다. 4개 지역 재보선에서 모두 승리한다고 해도 국회 과반수와는 거리가 멀다. 1개의 의석을 더 얻는 것이 현재 한나라당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차떼기정당', '성희롱당'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깨기 위해서는 '통큰 정치'를 보여야 한다. 돌려막기식의 잔머리로는 부족한 2%를 채울 수 없다.

유권자는 봉이 아니다. 정인봉 전 의원의 가려져 있던 전력도 결국 드러났다. 재보선 원인 제공자의 이름이 버젓이 올려져 있는 선거 홍보물을 받아든 유권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11일 전당대회를 통해 새 지도부가 선출됐다. 50% 이상의 당 지지율이 진정 두렵다면 '버려야 얻을 수 있다'는 단순한 교훈을 새 지도부는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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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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