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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 의사소통 수단으로 자리잡았지만, 네티즌들의 비방댓글과 언어폭력이 위험수위를 넘어섰다는 우려도 높다. 인터넷에서 무차별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됐던 일명 '개똥녀'와 '덮녀'도 그중 한 예이다.
인터넷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 의사소통 수단으로 자리잡았지만, 네티즌들의 비방댓글과 언어폭력이 위험수위를 넘어섰다는 우려도 높다. 인터넷에서 무차별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됐던 일명 '개똥녀'와 '덮녀'도 그중 한 예이다. ⓒ 오마이뉴스
"'못생겼다', '오바한다'는 등의 비난글이 인터넷에 많이 오른다. 나를 비난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내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에까지 피해를 주는 것 같아 속상하다." (탤런트 빈우)

"'마야, 사실은 남자다, 무대서 보니 남자 맞더라'라는 글이 올라와 고생한 적이 있다. 오죽하면 내가 직접 나서서 해명까지 했겠냐." (가수 마야)

"아무리 익명성이라지만 자기 이름을 걸고 말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요즘은 무조건 비방하는 글만 있는 것 같다. 그 사람들은 무조건 글 한 번 올리면 끝이지만 그것이 사실처럼 인식된다." (개그맨 김태현)


지난 18일 저녁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는 SG워너비, 장윤정, 윤도현, 쥬얼리 등 인기가수들이 대거 참가한 콘서트가 열렸다. <스타뉴스>와 사이버명예시민운동부 주최로 열린 'u클린콘서트-따뜻한 디지털세상 만들기'가 그것이다.

콘서트에 나온 연예인들은 행사를 주최한 <스타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인격살인'을 방불케 하는 인터넷문화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들이 불특정 네티즌을 겨냥해 공공연히 쓴소리를 던지는 것은 흔치 않은 모습이었다.

가수 성시경씨의 경우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익명성을 악용해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너무 많다"며 아예 인터넷실명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입장까지 밝혔다.

일반시민도 안심 못하는 네티즌 언어폭력

네티즌들의 눈에 띄어 순식간에 스타가 될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음해성 댓글과 루머로 인해 그만큼 빨리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인터넷의 위력을 가장 잘 느끼는 사람들이 연예인이라고 할 수 있다.

2년 전 케이블방송에서 부른 팝송의 영어발음 때문에 최근 또다시 네티즌들의 우스갯거리가 된 댄스그룹 '쥬얼리' 멤버 이지현씨의 사례는 애교로 치부할 수 있다. 지난 2월 자살한 배우 이은주와의 생전 관계를 '털어놨던' 가수 전인권씨는 이은주의 팬들로부터 말 그대로 사이버 뭇매를 맞았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일부 네티즌들의 댓글은 그야말로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며 "연예인 하려는 사람은 웬만한 수준의 인격살인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배포가 있어야 한다"고 푸념했다.

"여자 연예인치고 성형수술 시비 안붙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외모가 빠지면 '그것도 얼굴이냐'는 식의 비방글이 올라온다. 남자연예인들의 경우 특별히 흠잡을 게 없으면 '언제 군대가냐'는 리플이 달리고, 군대 다녀오면 '예전만 못하네'라는 비아냥이 따라붙는다. 아무리 인기를 먹고사는 사람들이지만, 한번 네티즌들의 눈 밖에 나면 이 바닥에서는 구원받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표적은 연예인들에 그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지명도를 갖춘 사람은 국적과 직업을 불문하고 외모에 대한 인상비평부터 미확인 소문까지 온갖 비난여론을 마치 통과의례처럼 감내해야 하는 현실이다.

이 때문에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언론에 언급되는 것 자체를 꺼리는 사람들이 많다. 일단 인터넷에 기사가 올라오면 기사 내용과 상관없이 이른바 '악성리플(이하 악플)'이 붙게 되고, 그 순간부터 당사자는 일부 네티즌들의 '노리개'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스포츠신문에 익살스러운 필치로 '한국통신' 칼럼을 써온 일본인 리포터 가네코 메구미씨는 최근 그의 글이 한 인터넷매체에 소개된 후 네티즌들의 비방에 몸살을 앓아야 했다. 그는 비난여론을 진정시키기 위해 뒤늦게 눈물의 사죄 인터뷰까지 했지만 "이제 와서 '사죄쇼' 하냐?",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매몰찬 반응만 돌아왔다.

최근 네티즌들로부터 '덮녀'라는 별명이 붙은 신원미상 여성도 이같은 피해자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20대로 추정되는 이 여성이 벤치에 앉아 정면을 응시하는 사진에는 "추천 안 하면 덮친다", "저번에 안 한 옵하들(오빠들) 각오해"라는 글이 적혀 있었는데, 이 여성은 자신의 사진에 우스꽝스러운 문구가 달려있다는 이유만으로 불특정 네티즌들로부터 모욕을 당한 셈이다. "생긴 것 가지고 뭐라고 하지 맙시다"라고 점잖게 댓글을 쓴 사람은 도리어 "그럼 저게 예쁘냐", "덮녀와 사귀냐"라는 폭언 세례를 받아야 했다.

문제는 이들의 사진과 거주지,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가 인터넷에 무분별하게 유포되면서 온라인상의 폭력이 오프라인으로까지 이어질 위험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른바 '개똥녀' 파문 이후 비슷한 외모의 20대 여인이 지하철에서 애완견을 안고있는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온 것도 누구라도 사이버 폭력의 희생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최근 MBC 드라마 <제5공화국>의 시청자 게시판에는 방송이 끝날 때마다 광주민중항쟁의 의미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그런데 일부 네티즌들이 "XX지방 사람들은 상종하지 말아야 한다", "광주사태 원인은 지역감정"이라는 식으로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의견을 집중적으로 올리면서 항쟁에 대한 진지한 평가는 온데간데 없이 네티즌들의 감정적인 설전만 남게 됐다.

인터넷 토론 문화의 찌꺼기 정도로 간주되는 '악플'이 사람들의 감정에 불을 지르고 결과적으로 전체 분위기를 뒤흔든다는 점에서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몰아낸다"는 그레샴의 법칙이 인터넷에도 그대로 통용되는 셈이다.

다시 떠오르는 인터넷 실명제, 하지만...

이같은 분위기에서 '인터넷 실명제'에 공감하는 여론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최근 실시한 네티즌 설문조사에서는 실명제 도입에 찬성하는 의견이 66.6%에 이르렀다. 그동안 실명제 도입이 이슈화될 때마다 '실명제 도입 =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등식이 우위를 점했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조사 결과였다.

그러나 인터넷 실명제의 시행방식과 실효성으로 논점을 옮기면 얘기가 복잡해진다. 법이나 제도만으로 악플을 근절시킬 만한 대책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민경배 경희대 사이버대 교수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개인 신상정보 유포는 인터넷 실명제로부터 촉발됐다는 점에서 오히려 실명제의 폐해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네티즌들이 미니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자신의 정보를 스스럼없이 올리는 상황에서 당사자가 어느 순간 화제의 인물이 되면 일정 수준의 개인정보 유포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명제를 운용하고 있는 웹사이트에서 악플을 다는 네티즌들이 실명공개를 주저하지 않고 되레 즐기는 것도 실명제 도입의 효과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PC통신 시절부터 'pctools'라는 아이디로 유명한 IT 컨설던트 김현국씨도 "지금도 인터넷에 글을 쓰려면 회원가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실명제가 이뤄지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더욱 강력한 제재 조치를 찾는다면 악성 네티즌들은 한층 음성적인 방법으로 사건을 저지를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김씨는 "한적한 시골이 급격한 도시화 과정을 거치면서 왜 부작용이 없겠냐?"고 반문한 뒤 "내가 속한 모 팬클럽 커뮤니티는 회원 수가 5만명에 이르도록 실명 인증을 거치지 않았지만 룰과 분위기에 의해 문제가 전혀 발생하지 않고 있다"고 소개했다.

결국 정부 차원의 단속과 같은 강제적 조치 보다는 네티즌 개개인의 자정 노력, 양화가 악화를 극복하는 문화 조성이 중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민경배 교수는 "실명제 도입이 별다른 효과를 볼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굳이 적용하려고 한다면 일괄적인 강제가 아니라 게시판 운영자에게 실명제 도입 여부를 맡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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