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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한 때 선거관련 글을 올리는 네티즌들에게 의무적으로 '전자서명'을 하도록 선거법을 개정하기로 했으나 '표현자유 침해'라는 누리꾼의 거센 반발로 이를 철회했다.
국회는 한 때 선거관련 글을 올리는 네티즌들에게 의무적으로 '전자서명'을 하도록 선거법을 개정하기로 했으나 '표현자유 침해'라는 누리꾼의 거센 반발로 이를 철회했다. ⓒ 오마이뉴스
플라톤은 대중을 믿지 않았다.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신 것도 중우(어리석은 대중) 때문이라 생각해서다. 그는 '철인'이 정치를 맡는 이상적인 '국가'론을 주장했고, 그의 철학은 2000년 동안 확고부동한 위치에 섰다.

그러나 칼 포퍼는 플라톤의 철학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의 철학은 곧 독재를 위한 변명이고, 그 탓에 2000년 동안 민주주의가 자취를 감췄다고 말이다. '절대진리'란 존재하지 않으며 '반증가능성'이 없는 이념이나 주장은 '도그마'일 뿐이라고 말한다. 진리는 끊임없는 비판과 부정으로 다듬는 것이지, 고정된 형태의 무엇이 아니란 얘기다. 포퍼에 따르면 필요한 정치 체제는 민주주의고, 사회 체제는 '열린사회'다.

'열린사회'는 공중이 다양한 의견을 표출하고 그 의견들을 수렴해 결론을 모색해가는 사회다. 따지고 보면 우리 역사에 요즘처럼 '열린사회'였던 적도 없다. 이미 언론은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각종 시민단체들의 사회 활동도 활발해졌다. 그리고 그 공론의 중심에 인터넷이 자리잡고 있다.

인터넷이 처음 나왔을 때 군사독재와 개발주의 망령 속에서 검열과 왜곡으로 억압됐던 시민들의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인터넷민주주의'란 말까지 생겨날 정도로 인터넷은 이 시대 최고의 '공론영역'으로 자리잡는 듯했다. 하지만, 인터넷을 '열린사회'를 위한 '공론영역'으로 보는 데는 무리가 있다.

'공론장'이라고 하기엔 이념과 세대의 스펙트럼이 너무 좁다. 젊은이 위주의, 진보주의자 중심의 의견이 오가고, 그 안에도 일종의 '위계'가 존재한다. 소위 '논객'으로 불리는 이들의 의제 설정과 '몰아가기'에서 인터넷도 벗어날 수 없다.

공론장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인터넷'

무엇보다 인터넷을 '공론영역'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건, 사이버 상에서 벌어지는 각종 테러 때문이다. 인터넷엔 요즘 '넷카시즘', '넷파라치', '성지순례' 등의 새로운 말들이 생겨났다. 최근 개똥녀, 철사마(서울대 도서관 폭행사건) 사건 등에서 보듯 인터넷은 대중 선동, 마녀사냥 등의 도구가 되고 말았다.

악플(악성댓글)이 악플을 낳고 무한 복제되는 이 공간엔 피해자의 인권도 가해자의 죄책감도 없다. 그저 파편적 감성의 이미지와 무책임한 감정의 배설만이 '희생양'을 향하고 있을 뿐이다.

이쯤 되면 인터넷을 '열린사회'를 위한 '공론영역'이라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리적으론 이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공론장'에 들어올 수 있게 됐지만 그만큼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지도 않고, 오히려 근거 없는 정보와 추측으로 '인민재판'만 성행한다.

하나의 사건이 터지면 그 진위가 가려지기도 전에 결론이 나고 만다. 논리와 이성이 없는 펌질과 댓글의 무한 복제 속에 애초부터 '반증 가능성'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최근 가수 전인권씨의 사례가 그렇다. 고 이은주씨에 대한 그의 감정이 어떤 것이었는지 제대로 밝혀지기도 전에 그에 대한 추측성 기사로 온 누리꾼이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내용도 잘 모르면서 말이다.

누리꾼들의 이른바 '성지순례' 기사가 된 <조선일보>의 가수 문희준씨 인터뷰. 2004년 7월 21일 기준으로 이 기사에는 36만 건 이상의 리플이 달렸는데 문희준씨를 비난하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누리꾼들의 이른바 '성지순례' 기사가 된 <조선일보>의 가수 문희준씨 인터뷰. 2004년 7월 21일 기준으로 이 기사에는 36만 건 이상의 리플이 달렸는데 문희준씨를 비난하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그 이전에 일어난 '자살한 딸'의 사연의 경우도 그렇다. 내막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인터넷에 올라온 어머니의 글만 보고 누리꾼들은 이른바 변심했다는 남성의 신상정보까지 공개하며 공격했다. 당사자의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않고 무작정 비난부터 하고 보는 누리꾼의 행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미국도 얼굴을 가린 누리꾼들의 무차별 활동에 따른 부작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백인우월주의를 내세우는 비밀극우결사체(KKK)는 인터넷을 통해 기존 회원을 규합하고 신규 회원을 영입하는 등 인터넷 상에서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2002년 9월 말 일부 누리꾼들의 '사이버 테러' 로 몸살을 앓은 이대 총학 홈페이지. 당시 게시판에는 여성에 대한 욕설과 비난이 주류를 이뤘다.
2002년 9월 말 일부 누리꾼들의 '사이버 테러' 로 몸살을 앓은 이대 총학 홈페이지. 당시 게시판에는 여성에 대한 욕설과 비난이 주류를 이뤘다. ⓒ 이대총학
또 극단적 낙태반대론자들이 낙태 시술을 한 의사들을 전범 재판과 같이 재판에 회부할 목적으로 웹사이트를 만든 '뉴렘버그 파일(Nuremberg File)' 사건도 있다. 이들은 시술 의사들의 실명, 주소, 자동차 번호를 가족의 실명과 함께 웹사이트에 올렸다. 그 후 암살 대상자 명단처럼 보이는 이 파일로 인해 낙태 시술한 의사가 살해당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칼 포퍼가 이 상황을 본다면 뭐라고 했을까

인터넷에 '열린사회'의 기대를 걸었던 칼 포퍼가 이 상황을 본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이렇게 부정되고, 비판받으면서 제대로 된 '공론영역'으로 자리잡아가는 것이라고 했을까. 아니면 본인 스스로 재수없게 '넷카시즘'의 희생양이 돼 스트레스와 고통을 못 이겨 자살 기도라도 했을까.

뭐라 시원한 답을 내리긴 어렵지만, 인터넷을 중우들이 판치는 세상이라며 '철인'과 '국가'의 개입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또 다른 플라톤주의자들이 늘어나진 않을지 걱정이다. 그나마 지금 우리가 누리고 민주주의를 얻기까지 얼마나 큰 희생이 따랐는지 본전 생각이 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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