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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제작한 리얼리티 프로그램 중 하나로 최근 케이블 방송을 통해 국내에서도 방송되고 있는 치터스(cheater)란 방송 프로그램이 있다. 신청인과 연인관계에 있는 사람의 불륜 현장을 추적, 촬영해 방송함으로써 시청자들의 관음증을 유발하는 프로그램이다. 한국방송 문화 측면에서는 제작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 이러한 프로그램이 제작국인 미국은 물론 판권이 팔린 20여 개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전한다.

치터스가 떠오른 이유는 최근 인터넷을 후끈 달구고 있는 일명 '개똥녀'에 대한 누리꾼들의 융단폭격 때문이다. '애완견이 지하철 안에서 물똥을 싸자, 몇 명의 주변 시민이 애완견 주인에게 치우라며 다그쳤지만, 그는 오히려 욕을 하며 황급히 지하철을 빠져나갔다'는 확인되지 않은 요지의 글이 애완견 주인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함께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누리꾼들의 성토는 시작됐다.

성토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그가 다니고 있다고 전해지는 학교 홈페이지는 다운됐으며, 소속여부를 확인하려는 문의전화가 폭주했다고 전해진다. 사진 속 그의 의상이나 소품, 그리고 내렸던 역을 통해 그의 신원을 누리꾼들이 추정했고, 그게 정보의 형태로 누리꾼 사이에 유포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비슷한 차림을 한 한 여성이 다음 날 지하철에서 목격됐다며 인터넷 상에는 또 다른 사진 한 장이 누리꾼들 사이에서 펴지고 있다.

인권유린과 관음증 유발에서 개똥녀 파문은 치터스와 너무나 닮아 있다. 치터스에서 촬영 대상이 되는 사람은 철저한 타자(他者)가 된다. 그의 언술은 방송 내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시청자들은 보고 싶어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신청인의 순수한 표정과 시각만 화면 가득 비쳐진다.

바람피운 현장이 들통 날 때 피촬영인은 당황한 기색을 보인다. 그리고는 '왜 바람을 피우신거죠?'라며 여러 번 다그치는 진행자에게 '찍지 마라'며 언성을 높인다. 하지만 진행자는 우월한 존재인 양 질문들을 마구 쏟아낸다. 어떠한 권리로 그 사람을 함부로 찍을 수 있는지에 대해선 아무런 해명도 없다. 그저 방송이라는 권력과, 시청자들의 감성을 결부시켜 한 사람의 인권을 철저히 파괴시키는 행위만 고스란히 전파를 타고 방송된다.

일명 ‘개똥녀’ 파문을 보자. 공중도덕을 잘 지키는 한국의 모습을 동승한 외국인에게 보여주고 싶어 한 시민은 카메라를 들어 빅브라더를 찬양했고, 누리꾼들은 준열한 가르침을 마구 내뱉으며 동참한다. 치터스에서처럼 당사자의 진술은 중요하지 않다. 아니,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다. 그가 써서 올렸다는 확인불가능한 해명이라는 글에 누리꾼들은 서슴없이 난도질을 했다.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는 근엄한 충고만 남발했다. 애당초 그의 말을 듣고 싶었던 게 아니라는 방증이다. 이성이 마비된 광기의 향연장이다.

파시즘의 역한 냄새마저 풍기는 일부 누리꾼들의 댓글은 더욱 가관이다. 끔찍하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이번 기회에 단단히 혼을 내야 사회정화가 돼죠', 어느 누리꾼이 달아놓은 댓글 내용이다. 익숙하게 듣던 논리가 아닌가. 몇 명의 희생자가 나오면 사회가 정화된다는 것. 수천, 수만명 탱크로 밀어버리면 사회가 조용해진다는 과거 중정부장의 발언이나, 무고한 사람 가릴 것 없이 폭력전과가 있다는 것만으로 젊은이들을 끌고 가 군사 훈련을 시켰던 삼청 교육대가 떠오른 건 지나친 망상일까.

파문을 다루는 일부 언론의 행태 또한 기가 막히다. 이성이 결여된 철부지 누리꾼들에게 뒤지지 않으려는 몸부림일까.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호재를 만난 걸까. 객관 보도라는 가식적인 몸짓으로 이번 파문을 단순한 흥밋거리로 다룬다. 이쯤 되면 한국사회가 집단최면에라도 걸린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교육은 그래서 필요하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인권교육에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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