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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함평만을 찾았을 때 봄을 준비하던 어민들은 갑작스레 몰아친 두 차례 꽃샘추위에 다시 몸을 움츠려야 했다. 겨우내 조새 들고 석화를 까던 여자들의 눈살에 주눅이 든 남자들도 한시라도 빨리 갯벌에 박아놓은 말뚝에 실뱀장어 그물을 보고(걷고) 보란 듯이 돈닢이나 쥐어줄 텐데. 이놈의 날씨가 영 도와주질 않는다.

남보다 일찍 마을서쪽 포구에 자리를 잡고 세 곳이나 말뚝을 박아놓고 연신 일기예보에만 귀를 기울이던 손(62·돌머리)씨 며칠 전 실뱀장어 그물을 보고 몇 십만 원을 뚝딱 해치웠다. 오랜만에 보는 ‘돈 맛’이다.

▲ 실뱀장어 그물을 보는 손씨(본다는 말을 '걷는다'는 현지인들의 말이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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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 던지는 어부, 받아먹는 갈매기

말뚝 박고 봄 기다리는 갯마을 남자들

▲ 갯지렁이잡이에 나서는 여자
ⓒ 김준
사실 함평처럼 갯벌이 발달한 곳에서 남자들은 일을 찾아 하지 않으면 크게 할 일이 없다. 갯벌이 발달한 곳치고 논이 많은 곳이 없어, 농사일이라고 해야 밭일이 대부분이다. 쪼그리고 앉아서 해야 할 농사일은 황토밭과 갯바닥의 차이일 뿐 모두 여자들 몫이다.

게다가 집안일도 여자들 손이 가지 않으면 마무리가 되질 않으니 좋은 시어머니 만나 속이라도 알아주고 손이라도 거두어 준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으면 정말 ‘삼중고’다.

옛날 같으면 두말할 것도 없이 모두 여자들 일이라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요즘은 함평만 갯마을 남자들도 여자들 눈치를 보는 것 같다. 남자들 일이라 할 수 있는 고기 잡는 일이며, 농사짓는 일이 생활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역시 제일 큰 벌이는 10월부터 3월까지 갯벌에서 이루어지는 ‘석화작업’이다. 하루에 많이 까는 사람은 4kg 이상 작업을 하기 때문에 1kg에 1만5천원으로 계산하면 6만원에 이른다. 대부분 소매로 유통하기 때문에 실질 수입은 10여만원에 이르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수입에 1kg에 1~3천원씩 마을기금으로 적립하기도 한다. 함평만 돌머리의 석화밭은 가계수입만이 아니라 마을기금을 마련하는 알짜배기 재원이다. 이런 탓에 석화밭에 들어가는 시간과 나가는 시간도 엄격하게 어촌계에서 관리하고, 호(집)마다 1명씩만 작업이 허락된다. 뿐만 아니라 석화밭을 관리하는 사람도 고용해 외부인의 출입 등을 통제하고 있다.

▲ 구덕을 맨 여성 어민
ⓒ 김준
함평만 갯마을의 남자들이 봄을 기다리는 것은 갯벌에 나가 ‘자존심’ 회복하려는 속셈도 있다. 돌머리는 삼면이 갯벌로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북쪽 면에는 여자들이 주로 작업을 하는 석화밭이 있고, 서쪽 면에는 남녀가 함께 갯지렁이를 잡거나 요즘처럼 실뱀장어를 잡는 곳이다.

남서쪽에도 갯벌이 발달해 있는데 이곳에는 담장들이 있어 실뱀장어가 끝나면 시랭이(숭어)를 비롯해 각종 잡어들을 잡는 ‘덤장’이 시작될 것이다. 이것도 남자들 일이다.

이런 까닭에 이곳 갯마을 남자들이 말뚝 박고 봄을 기다렸던 것은 단순하게 고기잡이 차원을 넘어 ‘남성성’의 회복이라고 해도 될 듯싶다. 물론 그렇다고 정말 성대결을 해보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갯벌의 다양성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 물 속에 잠겨있는 실뱀장어 그물
ⓒ 김준

▲ 그물 주변에 모인 갈매기들
ⓒ 김준

▲ 아직 물이 빠지지 않는 목이 제일 좋은 실뱀장어 그물
ⓒ 김준

"만날 이렇게 잡으면 부자 되게..."

맘먹고 돌머리 근처 민박집에서 잠을 청했다. 광주에서 한 시간 거리도 안 되지만 그곳에서 하루를 묵는 것과 왔다 가는 것은 역시 다르다. 사실 완도 소세포 ‘해신’ 세트장에 가보려고 며칠부터 별러왔지만 주말을 제발 피하라는 지인의 말에 차를 돌렸다.

서울에, 인천에, 충남에 있는 가족들 모두 연락해서 이번에 자랑삼아 완도 구경도 하고, 소세포와 장도 등에 들러 장보고 이야기로 조카들 앞에서 우쭐대보려는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게다가 그 동안 돌아다니면서 사귀어놓은 지인들의 이야기도 듣고 부모님에게 자랑도 할 심산이었는데 영 틀렸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함평만이었다. ‘꿩 대신 닭’은 아니다. 또 다른 꿩을 준비해 놓았을 뿐이다. 단 순서가 바뀌었을 뿐이지.

새벽 4시. 돌머리민박집 앞 도로로 오토바이 소리가 요란해진다. 갯사람들의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이곳 여자들은 모두 오토바이 면허를 가지고 있다. 마을면허인지 고시면허인지 확인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들 갯벌에 나갈 때 오토바이를 타고 간다.

갯지렁이를 파는 사람은 긴 쇠스랑을 뒤에 매달고, 굴을 까는 사람은 조새와 그릇을 매달고, 실뱀장어를 잡는 사람은 모기장으로 만든 뜰바구니와 숟가락 그리고 그릇을 매달고 달린다.

부지런히 카메라 들고, 늘 차 안에 준비해둔 노란 목긴 장화를 싣고 갯벌로 달렸다. 얼마쯤 지났을까 동쪽 하늘엔 동이 터오려는지 하늘빛이 심상치 않다. 지난 2월에 갯벌에 말뚝을 박고 봄을 기다렸던 손(62)씨도 나와 있었다. 며칠 전에 한번 재미를 보고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번에 얼마나 벌었냐는 질문에 그냥 좀 했다며 웃는 모습이 정말 ‘재미’를 본 모양이다. 나중에 민박집 주인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40~50만원은 한 모양이다. 작년 같으면 진즉 끝났는데 날씨가 추운 탓에 이제야 시작이고 며칠 안 되어 끝날 것이라고 한다.

▲ 실뱀장어 잡이에 그물을 털고 있는 여성 어민.
ⓒ 김준

▲ 실뱀장어는 숟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떠내야 한다.
ⓒ 김준

여러 개의 그물이 말목마다 묶여 있는데 운이 좋았던지 내가 가서 본 그물에서는 실뱀장어 10마리가 들어 있었다. 바늘 정도의 두께에 길이는 10cm 내외이며, 투명하기 때문에 새우 혹은 부유물과 함께 섞여 있으면 하나씩 추려내야 한다. 그리고 숟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떠서 담는다.

"한 마리에 얼마씩 해요?"
"제일 잘 받을 때는 1400원까지 받았는데…."
"목포 뽄은 못 따라요."(목포로 가지고 가면 가격을 제일 잘 쳐준다는 말이다).

"금방 부자되겠네요."
"맨날 이러간디요. 며칠이제."

어느 틈에 아버님과 어머님 등 가족들이 모두 몰려나왔다. 아무래도 같이 나왔던 동생이 신기하다며 숙소에 가서 아이들을 깨워 데리고 오는 통에 같이 오신 모양이다. 초중고 학생들이 한 달에 한 번씩 토요일에 쉰다고 해서 맞춰 데리고 나왔는데 체면치레는 한 것 같다.

▲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 김준

▲ 고동 보고 도감 보고 아이들은 신이났다.
ⓒ 김준

어민들은 그물에 걸린 망둥어와 작은 새우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신나는 놈들은 갈매기와 아이들이다. 갈매기가 미처 주워 먹지 못한 것들은 아이들 차지이다. 그물 주인들도 내버려둔다. 내친 김에 늘 배낭에 넣어 가지고 다니는 책받침처럼 만든 갯벌생물도감을 아이들에게 건네주었다.

"바다야, 푸른아, 한울아."
"갈 때는 바닷물에 모두 놓고 와라."

바다와 푸른이는 딸아이들이다. 그리고 한울이는 동생 아들이다. 나이 차이가 크지 않은 탓에 곧잘 만나면 어울리고 갯벌이나 바다에 가는 걸 좋아한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막내 바다는 창문턱에 놓고 온 고동을 생각해냈다. 울상이다. 이럴 때 거짓말을 해야 한다.

"주인아줌마가 틀림없이 바다에 놓아주었을 게다."
"다음엔 잊지 말고 다시 놓아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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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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