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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암태와 자은을 연결하는 은암대교 아래 한 무리의 갈매기들이 회의라도 하듯이 모여 있습니다. 아니면 할머니 갈매기의 생일을 맞아 모처럼 갈매기 친척들이 모여서 아침식사라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들은 모두 고개를 서쪽으로 돌리고 뭔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이들 갈매기들이 기다리는 것은 아침 일찍 배를 타고 나와 정치망(어구를 일정한 장소에 부설해 두고 어획하는 어법)을 걷어 올리는 어부가 떨어내는 부산물이라는 것을. 이러한 물때에는 그물에 고기가 들고 어부가 배를 타고 나올 것이라는 것을 이들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갈매기들로부터 20여 미터 쯤 떨어져서 한 어민이 선외기(엔진이 배 본체 밖에 매달려 있다고 해서 불리는 이름)를 타고 정치망을 걷어 올리고 있습니다. 녀석들이 노리는 것은 이 어부가 던져주는 고기였습니다. 어부는 그 동안 쓸 만한 녀석들을 제외하고는 갈매기에게 주어왔던 것입니다.

생계 걱정하는 어부들, 그리고 실뱀장어

ⓒ 김준

ⓒ 김준
갓 고기(육지 근처에서 잡히는 고기)들이 잡히지 않으면서 생계 걱정을 하는 것은 어부들만이 아닌 모양입니다. 이맘때면 숭어는 물론, 떼를 지어 몰려오는 실뱀장어와 이들을 노리는 크고 작은 고기들이 다리 밑에 가득했습니다. 갈매기도 어민도 봄철이면 다리 밑에 앉아 주워 담을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하루 종일 기다려도 주린 배를 채우기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래도 갈매기들은 마음씨 좋은 어부가 있어 다행입니다. 어부도 생계가 쉽지 않을 텐데, 그물을 보고 곧잘 갈매기들에게 생선을 던져줍니다.

이 어부는 실뱀장어를 잡기 위해서 띄워놓은 바지선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실뱀장어는 봄철에 신안은 물론 해남의 화원반도, 무안반도, 김제, 부안, 군산 등 서남해안 전 해역에서 건져 올리는 제법 짭짤한 계절 수입원입니다. 실뱀장어의 값이 좋을 땐 마리 당 천원이 넘었으며 한때는 이천 원에 거래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장사꾼들은 실뱀장어도 가만 두지 않았습니다. 중국에서 대량으로 수입한 것입니다. 돈이 된다는데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 김준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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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깊은 바다에서 산란한 새끼 뱀장어들이 봄철 부모들의 고향 강 하구나 연안으로 들어온다고 합니다. 이들이 이동하는 거리가 수천Km라고 합니다. 도요새도 그렇지만 작은 몸짓으로 먼 거리를 이동해 오는 녀석들의 집념도 대단합니다. 찬 겨울바람을 보내고 남쪽에서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군산, 김제, 부안, 함평과 무안, 해남과 신안 등 서남해역 어민들은 분주해집니다. 묵혀 놓았던 바지선을 손질하고 실뱀장어를 잡기 위해 그물도 새로 마련해야 합니다.

실뱀장어는 조류를 타고 이동하기 때문에 잡는 방법도 정치망과 유사합니다. 바다에 바지선을 띄우거나 갯벌에 말목을 박아 그물을 걸어서 잡습니다. 바지선 안에는 생활을 할 수 있는 방과 요리를 할 수 있는 시설을 해 두고 하루에 4번씩 그물을 걷어 올리기도 했습니다. 한두 달 조업에 그치는 일이지만, 중국산 실뱀장어가 수입되기 전까지 어민들에게는 대목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천 단위를 넘어 갑니다. 갯벌에 말목을 박아 그물을 걸어 잡는 경우에도 수백만 원의 소득을 올렸습니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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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라도닷컴-섬섬옥섬'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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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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