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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농부들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어민들에게도 봄은 ‘희망’이다. 특히 서해안 어민들에게 봄은 그렇다. 우수을 지나서일까. 다시 추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무색하게 함평만에는 이미 봄이 가까이 와있다. 석화를 까기 위해 갯벌에 나가는 어민들, 갯지렁이를 파기 위해 쇠스랑을 어깨에 맨 어민들, 실뱀장어를 잡기 위해 준비하는 어민들 모두 분주하다.

무안과 같이 바다를 놓고 마주보고 있는 함평만. 그러나 무안지역 갯벌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지만 함평지역은 습지보존지역은 고사하고 수자원보호구역에서도 풀렸다. 환경과 생태를 강조하는 함평군에서 산과 들, 건물, 도로 온통 나비로 덮어놓고 축제판을 벌리지만 함평만에는 환경과 생태를 찾기 어렵다. 침목을 이용해 만들어놓은 갯벌체험장만 있을 뿐이다.

▲ 무디어진 조새를 손질하고 있다.
ⓒ 김준
굴 모양도 마을 모습을 닮는다.

함평만의 갯벌은 찬바람이 나는 겨우내 갯살림으로 정신이 없다. 물때에 따라 어떤 날은 어둠이 가시기 전에 갯벌에 나서야 한다. 옷을 몇 겹 끼워 입었는지 꼭 우주비행사처럼 뒤뚱거린다. 책보에 그릇을 넣어 허리에 질끈 동여맸다. 머리에 쓴 채양이 넓은 모자는 턱밑으로 내려 맸다. 그리고 수건도 한 장 걸쳤다. 모두 여성들이다.

이곳 함평만의 석화는 마을에 따라 생김새가 제각각이다. 아니 갯벌의 모양에 따라 다르다고 해야 정확하다. 그런데 갯벌모양도 마을사람을 닮아간다고 하면 억측일까.

갯벌에 묻힌 석화, 갯골이 발달해 물이 들고 남이 좋은 곳에 서식하는 석화, 돌에 붙어 자라는 석화 등 갯벌의 환경에 따라 그 맛과 모양이 제각각이다. 이중 단연 으뜸으로 치는 것은 이름대로 돌에 붙어 자라는 석화라 할 것이다. 여기에 물이 잘 들고 잘 빠진다면 더 볼 것 없이 최고값에 팔린다.

▲ 갯살림을 하는 아낙들의 겉옷에는 계절이 없다.
ⓒ 김준
돌머리의 석화는 석화 모양새가 동글동글하고, 주포 갯벌의 석화는 길쭉하며, 해창의 석화는 갯벌에 묻혀있어 좀 멀겋다는 것이 주포 어민 박씨(68·주포리)의 이야기다.

“해창은 타동네 사람들은 한나도 못하게 하데, 여그는 타동네 돈 더 받는다고 돌머리 사람들 들어나서 굴 하나도 없어 다 까버려서, 그 사람들은 6천원도 내고 우리는 3천원 내고. 우리는 100만원 넣기 때문에.

돌머리 사람들이 40명 50명 와서 시안내내(겨우내) 여그치 다 까먹어버리고, 지그 밭은 인자 설 쇠고 까먹어, 차라리 우리한테 돈을 더 받고. 웬디(외부) 사람은 하나씩 못오게 해야제. 여그는 굴 하나도 없어라 차라리 우리한테 더 받고 그러면 굴이 늙을 것이 아니요. 늙어야 굴도 크고 여물고 그런디, 인자 새 굴 요만씩 헌디 언제 커서 깔 것이요.”


함평만에서 석화를 까는 곳은 돌머리(석두리), 일제강점기 간척되기 전까지만 해도 주막이 많고 엽삭과 황실이 등이 많이 들어왔던 주포, 돌꼬(고)지(석계리), 함평 일대의 밭곡식 조세를 보관했다는 해창리 등 세 마을이다.

이 중 주포 마을 앞 갯벌은 주포마을 뿐만 아니라 청학동 주민들도 이용하고 있다. 청학동 마을이 주포마을에서 석화를 깔 수 있었던 것은 주포어촌계에 가입금 100만원을 내고 가입하면서부터다.

갯벌을 이용하는 방식도 조금씩 다르다. 해창, 석계, 석두마을은 모두 각각 마을주민들만 석화밭에서 석화를 깔 수 있다. 마을공동어장을 어촌계 주민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석두마을의 경우에는 한 집에서 한 명만 석화를 깔 수 있다. 두 명이 나와서 작업을 할 수 없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이용하려는 사람은 많기 때문에 마을주민들이 골고루 자원을 이용할 목적으로 오래 전부터 만든 마을규칙이다. 외지인들이 와서 석화밭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주포의 경우 이미 어촌계에 가입한 청학동 주민들은 물론 인근의 돌머리 주민들도 수십 명이 석화밭을 이용하고 있다. 주포에는 넓은 마을어장이 있는 반면에 석화를 까는 사람은 10여 명을 넘지 못해 어촌계에서 인근 마을 사람들에게 개방하는 대신에 수수료를 받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외지인에게 개방하는 것이 아니라 인근 마을 주민들에게만 개방한다. 이렇게 이용할 경우 석화 한 되(2kg)를 깔 경우 어촌계에서는 6천원을 수수료로 제한다. 주민들은 3천원을 제하고 있다.

▲ 물이 빠지기 전에는 뭍 가까이서 작업을 한다
ⓒ 김준
김장철에 석화가 1kg에 3만원에 거래되고, 요즘에는 2만5천원에 거래되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는 결코 적은 액수는 아니다. 돌머리는 2천원을 수수료로 제하고 있다.

주포마을이 이렇게 외지마을 사람들에게 석화밭을 개방하는 것은 수수료 때문이라는 것이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이다. 다른 마을 사람들은 한 호(戶)에서 1명 만이 석화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노동능력이 있는 다른 가족구성원들이 주포와 같이 좀 높은 수수료를 제하고 석화를 까는 것이다.

여기에 금년에 돌머리 석화가 작황이 좋지 않아서 김장철에 수확을 하기 어렵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인근 주포 갯벌로 몰려들었던 것이다. 금년의 경우 주포갯벌의 석화밭에는 주포마을 주민 9명, 청학동 40여명, 돌머리 40-50여명이 석화를 깠다.

이런 탓에 주포갯벌에서는 상품성이 있는 석화가 동이 나 석화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주포마을 주민들이 수수료를 조금 높게 내더라도 외지인들이 주포 석화밭에 들어오는 것을 막아달라고 이야기도 해보았지만 어촌계에서는 수용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우선 석화를 까는 주포어민들의 수가 적을 뿐만 아니라 수수료 수입이 적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주민들의 이야기다. 어촌계에서 이번 설날 조기를 한 꾸러미씩 선물로 주었지만 어민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지는 못한 모양이다.

▲ 실뱀장어를 잡기위해 준비해둔 말목들.
ⓒ 김준
갯벌에 말뚝박고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

봄이 오면 서해안 어민들에게 반가운 손님이 있다. 그것은 실뱀장어다. 현지 어민들은 실뱀장어 잡이보다는 ‘시라시잡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

시라시(白す)는 일본말 표현으로 멸치·청어·은어 등의 고기를 말한다. 지역에 따라 실뱀장어를 잡는 방법도 다양하다. 군산과 김제 일대에는 큰 바지선을 지어서 대형 자루그물을 매달아 잡지만 부안 등은 정치망을 설치해 잡는다. 함평만도 말목을 박아서 그 사이에 작은 자루그물들을 매달아 실뱀장어를 잡는다.

실뱀장어는 아직 실용단계의 인공종묘 생산기술이 개발되지 않아 하천에 올라오는 치어를 잡아 사용하기 때문에 잡히는 양에 따라 그 가격이 달라진다. 작년에 가격이 좋을 때는 한 마리당 2천원을 호가하기도 했다.

함평만의 실뱀장어 잡이는 서천·군산·김제·부안과 달리 매우 제한적이다. 이들 지역은 금강·만경강·동진강 등 강이 있어 깊은 바다에서 자란 새끼뱀장어들이 회유하여 돌아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함평만은 이렇다 할 강을 갖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영산강마저 막혀 작업기간은 한 달 반짝하고 만다. 더구나 수심이 낮아서 보름 물때 중 실뱀장어 잡이를 하는 날은 며칠 되지 않는다.

▲ 십자가(말목)를 지고가는 어민의 모습이다.
ⓒ 김준

▲ 실뱀장어를 잡기 위한 그물을 묶기 위해 말목을 박고 있다.
ⓒ 김준
덴마크의 한 어류학자가 밝혀낸 연구에 따르면 성어가 된 뱀장어는 산란을 위해 5000km나 이동하며 작은 뱀장어 새끼들은 2-3년 자라다 다시 강어귀로 돌아온다.

어민들이 잡는 실뱀장어는 크기가 10cm 내외로 투명하며 두 눈이 까맣다. 강물과 바닷물을 오고가는 회유성 어종으로 알려져 있는데 7-9년 자라 성어가 되어 산란하기 위해 태평양 깊은 바다로 가 산란을 하고 치어(실뱀장어)들이 다시 강물로 돌아와 자란다. 실뱀장어는 동해안쪽으로 가지 않고 섬진강·동진강·만경강·금강 등의 하구로 올라와 자란다.

일찍부터 함평만 돌머리 갯벌에서 실뱀장어 잡이를 하는 손씨(62·돌머리)는 작년에 한철 작업으로 100여만원을 벌었다.

“여그는 바다가 째깐하고 사람이 많은 께, 바다가 깊고 그래야 많제. 늘 웬디사람이 와서 기(게), 소라 주서 먹어버리니까. 못들어가게 해도 소용없어. 굴양식장만 못 들어가게 하제. 시라시 한사람들 중 많이 한 사람은 돈 천만원씩하고 그랬제. 지픈데(깊은 곳)하는 사람들이 벌제. 그 옆에다 치면 쓰간디. 막보기로 하면 안되제.”

좋은 자리에 많은 그물을 쳐 놓은 사람들은 1000만원 내외의 소득을 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작년에 가격이 가장 좋을 때 실뱀장어 한 마리에 3000원을 하기도 했다. 일찍 좋은 자리를 잡은 어민들은 한 달 작업에 천여만 원이 넘는 고소득을 올리기도 하였다.

손씨도 맘 같아서는 좋은 어장 옆에다 그물을 치고 싶지만 한 마을에 사는 탓에 그럴 수는 없다. 갯벌에 금그어놓고 이름 써놓은 것도 아니지만 엄연히 규칙이 있다. 도시 사람들이야 계약서에 도장을 꽉꽉 찍어 놓고도 딴 소리를 하면 그만이지만 갯일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오직 할 수 있는 일이란 부지런히 그물을 칠 만한 곳을 찾아 말목도 박고 봄이 되어 실뱀장어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 갯벌에 실뱀장어를 기다리는 말목들이 빽빽하다.

▲ 갯지렁이를 잡기 위해서는 갯벌을 뒤집어야한다.
ⓒ 김준

▲ 갯살림을 하는 사람들에게 요긴한 운반수단인 구덕(다리끼)을 진 어민
ⓒ 김준
함평만의 또 다른 소득원은 보리새우잡이다. 돌머리에는 100여 호가 거주하는데 대부분 석화를 까고 있으며, 20여 호가 실뱀장어 잡이, 9호 정도가 건강망(덤장)을 운영하고 있다.

건강망은 바닥의 위치에 따라 15만원 25만원 30만원 등 차이가 있다. 밀물과 썰물에 관계없이 물이 빠지지 않는 깊은 곳에 위치한 건강망은 이용료가 비싸며 그렇지 않는 곳에 위치한 경우 이용료가 싸다.

돌머리의 어민들은 건강망을 이용해 망둥어·숭어·잡어 등을 잡지만 가장 기대를 하는 것은 보리새우라 할 수 있다. 7월 무렵에 시작해서 한 달 정도 많이 잡히는 보리새우는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어민들이 일 년 내내 기다란 말목을 갯벌에 박아두고 그물을 손질하며 기다리고 있다.

쇠스랑을 들고 갯벌에 들어간 여자들

돌머리의 여자들은 생활력이 강하다. 물론 타고난 것은 아니다. 마을을 아무리 둘러봐도 논을 찾기 어렵다. 뻘건 황토 밭에 마늘과 파뿐이다. 그리고 갯벌이다. 모두 쪼그려 앉아서 해야 하는 일이다.

남자라고 이 일을 하지 말라는 법이 없지만 그 일은 여자들이 하는 일로 되어 있다. 어렸을 때 ‘호미’라도 들고 나서면 할머니는 ‘삽’을 들려주며 남자는 삽질을 해야지 호미질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남자가 호미질하면 거시기가 없어진다’며.

밭일, 석화까는 갯일, 집안일 이 모든 일을 돌머리 여자들이 맡고 있다. 여기에 길이가 40cm가 넘는 쇠스랑을 들고 일년 내내 갯벌을 뒤집는다. 홍거시로 알려진 갯지렁이는 낚시꾼들에게 최고의 미끼다.

1kg에 4만5천원에 거래되는 갯지렁이는 잡기가 무섭게 팔려나간다. 특히 석화까는 일이 한 집에서 한 명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일손이 있는 집은 나이 드신 시어머니는 석화밭으로 나가고, 며느리나 아들은 갯지렁이를 잡으러 나간다.

석화까기는 날씨가 따뜻해지는 3월 무렵이면 중단되지만 갯지렁이는 계절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게다가 갯벌을 30-50cm 이상 파야하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석화를 까는 일은 칠순, 팔순의 할머니들도 하지만 갯지렁이를 잡는 일은 마을에서 젊은 축에 드는 여자들이 나선다. 물론 개중에는 남자들도 있다.

▲ 돌머리민박집
ⓒ 김준
돌머리는 최근 정부의 지원사업에 힘입어 변신을 꾀하고 있다. 정부의 ‘아름마을’가꾸기 대상지역으로 선정되어 민박집을 지어 운영 중이며, 실뱀장어 수집, 농수산물 냉동 보관창고를 지어 운영 중이다. 민박집은 마을 주민이 직접 운영하는데 수익금의 일부는 마을기금으로 활용되고 있다.

바닷가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에 민박집이 자리해 있다. 함평군에서는 돌머리 해수욕장 인근을 관광단지로 조성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최근 수자원보존지역에서 풀린 이곳은 이제 주민의 동의를 얻는다면 얼마든지 개발할 수 있다. 광주에서 가장 가까운 갯벌과 바다가 있는 함평만. 갯벌도 보존하고 주민들의 소득도 보장되는 지혜로운 관광모델을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가는 길 : 서울강남터미널에서 함평까지 직통 함평 - 돌머리행 완행버스 이용/ 자동차를 이용할 경우 서해안고속도로 - 함평IC - 대덕주유소 - 돌머리해수욕장

*함평만 인근의 볼만한 곳 : 함평해수찜, 고막천 석교, 영광불갑사, 함평나비 대축제, 장승허수아비축제(나산면 일대), 꽃무릇 축제(해보면 용천 사), 난공원, 갯벌생태학습장, 초가원두막, 자연생태학습장(신광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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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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