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살해하였다니? 다 늙은 이 몸으로 사람을 죽인다구?"

"사람을 시켜 죽일 수도 있잖아요. 안 박사님은 동북공정을 추진하는 중국 측에서 볼 때는 큰 장애물이 되었겠죠."

류허우성 교수가 호흡을 가다듬으며 짤막하게 물었다.
"이보게 자네 이름이 채유정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자네도 안 박사의 제자라면 역사를 공부하는 학도이겠구먼. 학자는 감정에 치우칠지언정 그것을 폭력이 아니라 논리로 무장해 상대를 쓰러뜨리는 법이야. 나도 학자라 말일세."

그 말에 채유정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들었다. 그녀는 엷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손을 들어 어깨 너머로 머리칼을 넘겼다.

"죄송합니다. 제가 무례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여 정식으로 사과를 했다. 하지만 김 경장은 달랐다. 그는 어떡해서든 류허우성 교수로부터 어떤 단서를 얻어내야만 했다. 그는 슬쩍 거짓말을 하며 교수의 반응을 떠보기로 했다.

"박사님이 살해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났던 분이 교수님이라고 들었습니다."

류허우성 교수가 채유정을 돌아보며 물었다.
"안 박사가 직접 그런 말을 하던가?"

순간적으로 당황한 채유정은 김 경장이 가늘게 눈짓을 해 보이자 능숙하게 대답했다.
"교수님과 함께 어디를 다녀왔다고 들었습니다."

류허우성 교수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걸 자네에게 이야기하더라 말이지?"

채유정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럼 어딜 갔는지도 알고 있겠군."

"그걸 알고 싶어서 여기에 온 것입니다."

"안 박사가 살해당하기 전에 어디에 다녀왔는지 알면 그를 죽인 범인을 알 수 있단 말인가?"

이번에는 김 경장이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류허우성 교수는 잠시 망설이는 듯 했다. 그는 가늘게 입술을 실룩이며 희디흰 공백 상태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다가 매우 경직된 표정으로 힘들게 말문을 다시 열었다.

"범인을 잡을 수 있다면 굳이 내가 숨길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말해놓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어디로 갔냐 하면 말야……."

그렇게 말하는 순간이었다. 유리창이 와장창 깨지며 엄청난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그와 동시에 채유정이 날카로운 소리로 비명을 내질렀다. 그녀의 얼굴과 두 손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이어 류허우성 교수가 앞으로 퍽 쓰러졌다. 김 경장이 얼른 교수를 일으켜 세웠다.

그의 이마 정통에 구멍이 뚫어져 있고, 거기서 피가 솟아나고 있었다. 누군가 총으로 그의 이마를 맞춘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도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는 작자가 가까이 있다.

"어서 몸을 숙여요."

둘은 고개를 숙인 채 소파 뒤로 몸을 숨겼다. 하지만 더 이상 총알은 날아오지 않았다. 김 경장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밖을 내다보았다. 주위로 높은 건물이 늘어서 있는 게 보였다. 저 많은 건물 어디에서 누군가 총을 쏘아 교수를 죽인 것이다.

밖을 살핀 김 경장은 얼른 소파 뒤로 달려갔다. 채유정이 몸을 웅크린 채 이빨이 부딪히도록 심하게 떨고 있었다. 얼굴은 벌겋게 상기된 채였다. 두 팔을 벌려 그녀의 양어깨를 잠시동안 감싸안았다. 그리고는 탁자 위로 걸어가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그의 손 또한 심하게 떨고 있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