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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명이 오늘날 산시성(山西省) 남부 및 허난성(河南省) 서부, 그러니까 중원 지역에서 발전하여 주변 지역으로 퍼져나갔다는 게 정통 학설이야. 이른바 '중원 문명 중심설'이지. 하지만 그는 이런 이론에 반기를 들며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더군."

채유정은 그의 엉뚱한 소리라는 말에 은근히 반감을 느끼는 듯했다. 미간을 찌푸리며 턱을 앞으로 내밀었다.

"돌아가신 안 박사님이 어떤 주장을 하셨다는 겁니까?"

"황하 중상류 지역 외에, 요하와 대릉하를 중심으로 한 동북 지역이 중원 지역보다 앞선 문화가 있었다고 우기는 거야."

"거기서 중원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만들어진 용 모양과 토기가 발견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사람 머리 크기의 두상을 직접 본 적도 있습니다."

류허우성이 한숨을 내쉬며 그 말을 받았다.

"설령 그쪽에서 발견된 유적이 중원보다 앞선다고 해도 요하와 대릉하 또한 우리 중국의 한 변방일 뿐이야."

"중국의 변방이라니요? 그곳은 엄연히 고조선이 지배하고 있던 곳입니다. 그 모든 문화가 고조선에서 만들어졌다 말입니다."

"자넨 안 박사의 제자라고 했나?"

채유정은 대답 대신 고개만 낮게 끄덕였다.

"그자 못지 않게 강단이 있군. 그렇게 억지를 부리는 것까지 똑같단 말야."

"이건 억지가 아닙니다. 엄연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길림성에서 발견된 유적지만 해도……."

류허우성이 그녀의 말허리를 자르며 문득 이렇게 물어 왔다.

"자넨 혹시 중국 신화를 알고 있는가?"

"대충은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럼 초인간적인 조건에서 신성한 존재가 출현하는 것으로 그려지는 중국 신화의 상황이 단군 신화와 거의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겠군. 이는 분명 중국 신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야. 중국 문화의 반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이지."

채유정이 손사래를 치며 그 말을 받았다.

"그렇지 않습니다. 단군 신화에서 가장 중요한 곰 숭배 신앙은 중국 신화와의 소재나 신화 구조가 전혀 연결되지 않잖아요. 오히려 한국의 신석기 문화를 일군 고아시아족의 곰 숭배 신앙과 관련된 것에 가깝습니다."

"조선(朝鮮)이란 명칭만 해도 그래. 이 명칭은 분명 중국의 신화에서 비롯된 것이야. 중국의 태양숭배신화인 탕곡부상십일신화(湯谷扶桑十日神話)에 근거한 것이지. 또한 <산해경>에는 ‘10개의 태양이 하나씩 동쪽 탕곡(湯谷)이란 계곡에서 목욕하고 부상(扶桑)하여 나무 위의 가지로 올라가 하늘로 여행을 떠나 서쪽 편에 도착해 하루가 된다’라는 대목이 나와. 여기 아침의 표현을 빌어 조선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이 분명해."

"탕곡이라는 명칭은 ‘사기’의 우이와 관련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의 동쪽인 산둥(山東)반도 일대 칭저우(靑州) 지역에 대한 표현인 것이죠. 이곳은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조선과 전혀 연결지어 설명할 수 없는 곳입니다."

류허우성 교수가 지지 않고 말머리를 돌리며 그 말을 받았다.

"그렇다면 기자 조선에 관해 이야기 해 볼까?"

채유정은 침을 크게 삼켰다. 옆에서 듣고만 있던 김 경장도 긴장이 되었는지 두 손으로 마른 세수를 하며 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은나라의 후예인 기자는 실재로 존재한 철학가이며 정치가였어. 주나라의 무왕이 은나라를 무너뜨리고 새롭게 왕이 되자 현인인 기자가 그를 섬길 수 없다며 조선으로 피난한 것이야. 그가 조선 반도에 나라를 세우면서 중국 동북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지. 물론 이 나라는 중국의 지방 정권이고 중국의 역사의 한 부분일 수밖에 없어. 우리가 자랑하는 상서대전(尙書大典)이라는 역사책에도 이 내용이 상세히 적혀 있어."

채유정이 고개를 내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무려 기원전 12세기에 일어났다는 그 일은 내용이 허구라는 사실이 이미 한국 및 일본 학자에 의해 이미 확인된 상태가 아닙니까? 방금 말씀하신 상서대전(尙書大典) 또한 중국이 가장 우월한 민족이란 인식을 담은 대표적인 기록에 불과합니다. 기자가 조선으로 갔다는 내용은 다른 역사서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고 오로지 이 사료에만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류허우성 교수가 지지 않고 그 말을 받았다. 교수의 목소리에는 그렁그렁한 쇳소리가 섞여 있었다.

"고대 동북 지구에는 3대 종족이 있었어. 숙신계(肅愼系)와 예맥계(濊貊系) 그리고 동호계(東胡系)가 있었던 게야. 이들 3계통은 민족 기원과 성장, 발전, 귀속 등의 내용을 볼 때 현재의 중국 영역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어. 이를 우리는 동북고민족(東北古民族)이라고 하지. 여기에 오랫동안 하나의 동일 운명 공동체로 유지되었던 것이지."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동북고민족’이라는 개념의 설정 자체부터가 모순입니다. ‘동북’이란 표현은 현재 중국에서 ‘동북 방향에 위치한 지방’을 의미하는 표현일 뿐이죠. 헤이룽장(黑龍江)성, 지린(吉林)성, 랴오닝(遼寧)성의 동북 3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현재 중국의 행정 구획에 의한 명칭일 뿐이지 하나의 동일 문화나 역사로 포괄해 설명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니라는 것은 박사님이 더 잘 아실 것 아닙니까?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은 이후 공간적으로도 중국사에서 완전히 제외된 지역을 이제 와서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것은 비겁한 의도일 뿐입니다."

류허우성 교수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뭐야! 비겁한 의도라니? 내가 말한 이야기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야. 연(燕) 나라에는 분명 현재의 요하나 혼하 부근까지 그 영토를 편입시키지 않았냐 말이다."

"이들 지역은 현재의 랴오닝성에 국한된 일부의 영역일 뿐입니다. 헤이룽장성이나 지린 지역은 포함되지 않아 동북 지역의 극히 일부에 한정된 것이지 않습니까?"

"그럼 그 땅이 모두 한국의 땅이라 말이냐? 어림도 없는 소리. 신라만이 한강 이남의 한(韓)인 세력으로 남아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졌지. 오히려 너희 나라에서 고구려와 고조선을 도용하고 있는 것이야."

채유정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혀를 내둘렀다.

"돌아가신 안 박사님과 많이 다투실 수밖에 없었겠군요."

"다툰 게 아니라 논쟁을 벌인 것이지. 그 자 또한 자네처럼 얼굴을 붉힌 해 마구 소리를 내지르더군. 나도 지지 않고 그와 맞서곤 했지."

"그래서 박사님을 살해하신 것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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