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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리에 눈을 뜬 사내는 천장의 낯선 사방 연속 무늬를 올려다보며 몸을 일으켰다. 미색 커튼이 드리워진 창으로부터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거리는 의외로 조용했으며 로렐라이 언덕에서 전해져 온 새소리만 높았다.

소파에 걸터앉은 채 손바닥으로 얼굴을 서너 번 문질렀다. 낯선 사람의 피부 같았다. 검붉은 얼굴에 퉁퉁 붓고 충혈 된 두 눈. 그리고 입술은 마르고 갈려져 있었다. 여기 독일에 와 물이 바뀌면서 몸이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외국에만 가면 그의 몸은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곤 했다. 어서 중국으로 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창문을 열자 라인강의 오른쪽 절벽에 위치한 로렐라이 건너편으로 보였다. 높이가 100미터가 넘는 언덕이 수면 위로 깎아 세운 듯했다.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하지만 사내의 눈에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 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침부터 운행하는 유람선이 라인강을 따라 흘러가는 모습이 아득히 보였다.

한참 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사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게 전화를 걸어올 사람이 없는 것이다. 수화기를 드니 놀랍게도 그의 목소리가 전해져 오는 것이 아닌가?

"여기 일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무슨 말씀이신 지……."

"자네 사람들이 그 교수를 살해하고 말았다.

사내가 얼른 수화기를 바꿔 쥐고는 소리를 높였다.

"그를 죽였다면 그럴 만한 급박한 사정이 있었을 겁니다."

"물론 그의 입에서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이 튀어나오려 했다. 그걸 막기 위해 일을 치른 것 같다. 하지만 죽이는 건 너무 성급한 짓이었다."

"우린 오랫동안 그를 지켜보아 왔습니다. 어쩌면 그게 더 좋은 해결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그가 살해당함으로서 여기가 무척 시끄러워. 우리뿐만 아니라 한국언론에서도 호들갑을 부리고 있다. 그 한국인 경찰도 덩달아 날뛸 것이야."

"제가 이쪽 일을 빨리 해치우고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빨리 올수록 좋지만 그쪽의 일 또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사내는 힘없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문득 마음이 급해졌다. 얼른 여기 일을 처리하고 중국으로 가야만 한다. 하지만 그쪽보다 여기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조직에게 맡기지 않고 자신이 몸소 여기까지 온 것도 그만큼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천천히 침대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베개 밑에 놓아둔 사진 한 장을 꺼내어 들었다. 한참동안 그 사진을 들여다보며 사내는 이죽거리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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