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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오그라시아 카윰바 르완다 인권위 위원장
데오그라시아 카윰바 르완다 인권위 위원장 ⓒ 인권위 김윤섭
카윰바 위원장은 르완다 인권위원회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1994년 4월 르완다에서 일어난 대량학살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1994년 4월 후투족 출신의 하비아니마나 대통령이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했다. 르완다 사태는 이 사건의 배후에 투치족이 개입했다고 간주한 극우 후투군 조직이 투치족 출신의 총리와 벨기에 평화유지군 11명을 살해하고 투치족을 무차별 학살하면서 시작됐다.

이 사태의 결과는 참혹했다. 약 150만명이 학살되고 814만명의 국민 중 240만여명이 난민이 되어 주변국을 배회해야 했다. 르완다 난민의 대량 유입에 의해 주변 부룬디와 자이르의 내전이 악화되면서 난민들도 피난국의 내전에 휩쓸려 또다시 수십만이 학살당하는 등 세계 최악의 인권 유린 상황이 벌어졌다.

“약 100일 동안 적어도 100만명의 사람이 나이를 불문하고 학살당했다. 이 사건 이후 르완다는 인권의 보호와 신장에 대한 남다른 신념을 갖게 되었다. 대량학살의 배경이 된 부족간, 계층간 갈등의 해소를 위해 설립된 것이 르완다 국가인권위다.”

르완다의 인권위는 그 특수한 탄생 배경에 힘입어 1999년 아주 강력한 권한을 가진 헌법기구로 설립됐다. 행정권과 사법권, 법령 제정권까지 갖춘 인권위는 그것 자체로 작은 정부라고 불리기도 한다.

인권위 설립 과정에서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의 전문가들이 르완다에 상주하면서 법률, 조직 등을 수립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으며 현재도 상주하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밖에도 아프리카 인권헌장(Banjul Charter, 아프리카 통일기구가 1981년 6월에 채택한 개인 및 인민의 권리에 관한 헌장)의 실현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민법의 개정을 통한 남녀 평등의 실현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빈곤으로 인해 거리로 내몰린 아이들을 보호하고 정규교육을 받게 해 빈곤을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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